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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 한국행정연구원 규제연구센터 소장 |
지난 2019년 1월 17일, 정보통신융합 및 산업융합 분야를 시작으로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시행된 후 1년이 지났다. 현 정부의 규제혁신 정책 추진의 핵심적 과제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규제개혁의 수단으로서 규제 샌드박스에 대한 많은 관심과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2016년에 영국에서 최초로 규제 샌드박스 제도 운영이 시작되었으나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규제 샌드박스 1년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단순히 국내적으로 정부 정책의 성과를 논의하는 수준을 넘어 규제개혁의 선도국가로서 새로운 규제개혁 수단에 대한 가능성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또 그저 그런 한국식 규제개혁?
사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규제 샌드박스의 도입이 논의되는 과정에서부터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영국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와 비교할 때 대상사업에 대한 심사과정이나 모니터링, 사후관리 등에 있어서 충분한 제도설계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제도가 시행 후 6개월 만에 80건 이상의 사업을 승인하고 당초 예상한 연간 100건의 목표 수준을 훨씬 넘어 두 배 가까운 실적을 달성한 부분도 긍정적으로 판단되기보다는, 또 예전처럼 숫자놀음식의 한국식 규제개혁에 치우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 승인실적이 연간 4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며 우리는 제도 도입 1년 만에 5배에 달하는 제도운영 성과를 달성하였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새로운 기회 창출!
그러나 제도운영의 성과를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것에 비해,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들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산업현장에서의 애로를 직접적으로 해소하고 새로운 사업기회의 창출을 촉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규제개혁 방식과 차별화된 성과로 판단된다.
대표적으로, 지난 7월에 과기정통부 주관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에서 통과된 공유주방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기존에도 공유주방 서비스는 가능했지만 서비스의 개별 이용자가 개별 사업자로 영업을 하는 것은 ‘식품위생법’에 의해 제한되었고, 이로 인해 예비창업자는 공유주방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의 명의로 영업하거나 혹은 창업을 위해 공유주방 서비스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공유주방 서비스 이용자들이 개별적으로 창업을 하고 요식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향후 2년 후 공유주방을 통한 창업규모가 5000여개 이상에 달하고 그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도 1만명을 훨씬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편, 공유주방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 적용은 이를 계기로 다양한 공유서비스 분야의 규제개선 논의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예컨대, 공유미용실에 대해서도 공유주방과 마찬가지로 복수사업자의 등록을 허용하도록 하는 제도개선 요구가 제기되고 있으며 기존의 공유서비스가 플랫폼 사업자들의 이해관계를 넘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 되는 과정에서 규제 샌드박스의 효용성을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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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공유주방’이 탄생한 서울 만남의광장 휴게소. |
규제 샌드박스에 대한 기업의 높은 만족도와 그 원인은?
지난 11월, 한국행정연구원에서는 국무조정실과 공동으로 규제 샌드박스 승인기업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였다. 당시까지 승인된 148개 기업 중 102개에 대한 응답이 이루어졌으며 규제 샌드박스 제도운영에 대해 만족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90.2%를 차지했으며, 상대적으로 불만족한다는 응답은 9.8%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정부정책의 수혜집단에 대한 정책 만족도는 일반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한다는 응답의 강도 측면에서 매우 만족한다는 비율이 전체의 45.1%로 조사되었으며, 이는 다른 만족도 조사와 비교할 때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판단된다.
실제로 10년 전에 유사한 방식으로 추진되었던 한시적 규제유예에 대한 기업 설문조사에 따르면, 80.3%가 제도취지에 공감한다고 긍정적으로 응답하였으나 매우 공감한다는 응답은 7.9%에 불과하였다. 조사대상 중 한시적 규제유예에 따라 혜택을 받았다는 기업의 비율이 40%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규제 샌드박스 운영에 따른 기업의 만족도 수준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긍정적 태도의 가장 큰 원인은 기존 규제개혁 방식과 달리,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실제적인 기업활동을 먼저 고려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한시적 규제유예만 하더라도 당시 200여건의 기업관련 규제를 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규제가 실제 기업활동에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 포함되어 실효성의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에 비해 규제 샌드박스는 규제개혁의 본래 취지에 따라, 기업활동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 규제개혁의 논의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규제개혁의 수요자인 기업의 체감도가 현저히 높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또한 규제 샌드박스가 주로 신기술·신사업의 사업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부분도 규제개혁의 효과성에 대한 기업의 긍정적 인식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앞서 언급했던 한시적 규제유예의 경우에만 해도 정책성과의 가장 큰 부분을 영업비용의 절감에서 찾고 있는 것에 비해, 규제 샌드박스에 대한 이번 조사에서는 승인기업의 79.1%가 시장출시를 가장 큰 효과라고 응답하고 있다.
제도의 취지와 기업의 입장을 동시에 고려하는 한국식 규제 샌드박스
규제 샌드박스의 원래 취지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실증특례를 통한 실험과 사회적 안전성의 엄격한 확인 등을 강조하고 있으나 한국식 규제 샌드박스에서는 신속확인이나 임시허가를 통한 기업의 신속한 사업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영국식 규제 샌드박스를 기준으로 한국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 운영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기존에 우리가 채택했던 다양한 규제개혁 수단들과 비교할 때 규제 샌드박스의 성과를 비교할 경우, 현재까지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 샌드박스가 갖고 있는 원래 취지와 기업의 입장을 동시에 고려하는 제도 운영의 균형점을 모색하는 것은 앞으로 남겨진 숙제이다.
특히, 샌드박스 실험을 통해 탈락기업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제도적 취지를 감안하면 승인기준을 완화하고 사후평가를 강화하는 것이 적절하나 기업들은 승인기준을 강화하는 대신 승인기업의 안정적인 영업활동을 보장받고자 하는 의견이 많다. 제도시행 1년을 넘어 성숙기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추가적 개선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