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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의 팔짱을 풀다

[한국힙합의 결정적 노래들-25] 빈첸,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

2019.10.04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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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의 프로그램 <고등래퍼>가 시작했을 때를 기억한다.

긍정적인 반응은 별로 없었다. 걱정, 우려, 비난이 많았다. 일단 힙합 마니아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쇼미더머니>로 힙합을 망치더니 이제는 고등학생만 나오는 프로그램까지 만들겠다고?”

그리고 학부모들은 이런 식이었다.

“우리 애들이 랩이라는 나쁜 것에 빠져서… 벌써부터 돈 벌겠다, 성공하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걱정돼요”

지어낸 게 아니다. 당시 어떤 학부모 겸 소설가가 한 신문에 기고한 칼럼 내용이다.

이 글에서 힙합 마니아들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학부모들, 혹은 대중의 반응에 대해서는 간단히 짚고 넘어갈 수 있다.

<고등래퍼>가 한창 방영될 때 사람들은 빈첸과 김하온을 극찬하며 다른 한국 래퍼들을 싸잡아 깎아내렸다. 돈 자랑, 성공과시 말고 이런 게 진짜힙합, 진짜음악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빈약한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개인의 성취에서 좋은 영감과 기운을 나눠가지는 것이 힙합의 핵심 정체성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왜 A를 추켜세우기 위해 꼭 B를 폄하하는 걸까. 둘 다 각자의 의의와 매력이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다만 빈첸이나 김하온이 한국을 지배하는 도덕주의에 더 어울리는 래퍼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 역시 빈첸을 인상적으로 봤다.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는 고등래퍼가 세 번째 시즌을 마친 지금도 여전히 프로그램 최고의 노래로 나에게 남아 있다.

가수 빈첸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지털플라자에서 열린 ‘2018 엠넷 아시아 뮤직 어워’(MAMA) 레드카펫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가수 빈첸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지털플라자에서 열린 ‘2018 엠넷 아시아 뮤직 어워’(MAMA) 레드카펫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빈첸의 랩에는 ‘진짜’ 내 이야기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더 나아가 이 노래는 인간의 어두운 감정까지 어떤 음악보다 날 것 그대로 담아내온 힙합의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제 위치는 합정역 7번 출구 도보 4분 정도 거리 지하방 / 대각선 방향에는 메세나 폴리스 what / 거기 사는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

이 구절이 귀를 지나갈 때 내 머릿속에도 자연스레 풍경이 떠올랐다. 합정역 사거리는 나에게도 익숙한 동네다. 망원동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6호선이 없는 망원시장과 허허벌판 같았던 합정역을 기억한다.

때문에 빈첸 만큼 진지하진 않았지만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저게 메세나 폴리스라고? 저런 괴물 같은 건물이 여기 들어서는 게 말이 돼?’

그러나 빈첸의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따로 있다. 이 노래는 학부모들, 더 나아가 대중을 ‘납득’시켰다.

요즘 청소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아들이 랩에 빠진 이유는 무엇인지, 랩은 어떻게 청소년의 마음을 온전하게 세상에 내보이는지, 그리고 랩이 왜 청소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는지 사람들은 단번에 이해해버렸다.

따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긴 시간 생각해본 것도 아니다. 단지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를 들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직감했고 이해했으며 받아들였다. 왜 빈첸이 어린 시인인지도.

랩이 지닌 진실함, 랩과 청소년의 연결고리, 랩이 청소년에게 끼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까지, 빈첸은 혼자서 노래 하나로 이 모든 걸 보여줬다.

그리고 많은 학부모가 힙합을 향해 끼고 있던 팔짱을 조금은 풀게 됐다. 훗날 한국과 힙합의 관계에 대해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상징적인 순간으로 앞으로도 남을 것이다.

“엄마 아들은 자퇴생인데 / 옆방에 서울대 누나는 나를 보면 어떤 기분이신가요 / 동생이 못나 보이고 아들이 못나 보이고 / 어디서 얘기 꺼내기도 쪽팔리신가요

자퇴하지 않고 견딘 친구가 / 전교 몇 등을 했단 얘기들은 엄만 어떤 기분이신가요 / 애매한 표정으로 제게 그 얘기를 했던 / 엄마는 그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난 행복한대도 말이야 / 혼자 자주 울어 팔을 그어가며 / 분노를 삭이는 것도 말이야 / 이제 더 이상 내 팔을 보고 /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너무도 고마워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 /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 / 제 노래를 듣고 있는 당신들의 / 오늘 하루는 어땠고 지금은 또 어떤 기분이신가요”

김봉현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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