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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뜰’에서 만나는 <죽음의 개선>과 <죽음의 춤>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이탈리아/피사(Pisa)

2020.06.09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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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의 사탑’은 푸른 잔디가 융단처럼 깔려 있는 기적의 광장에 세워져 있다. 피사가 낳은 천재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 기울어진 종탑에서 물체 자유낙하운동을 실험했다고 하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 광장에는 이 종탑을 비롯하여 대성당, 세례당, 캄포 산토가 세워져 있는데 이 네 개의 건축물은 모두 중세 피사의 황금기를 증언한다. 참고로 이탈리아에서 도시 이름 Pisa는 ‘피자’, 또는 ‘삐자’에 가깝게 발음하고 먹는 pizza는 ‘핏짜’, 또는 ‘삣짜’에 가깝게 발음한다.

기적의 광장에 세워진 기울어진 종탑과 대성당.
기적의 광장에 세워진 기울어진 종탑과 대성당.

피사는 10세기와 11세기에 걸쳐 지중해의 해상공화국 중의 하나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제노바와 노르만의 해군과 함께 이슬람세력을 이탈리아 반도 서해에서 몰아내었다. 12세기에는 지중해 서쪽의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더욱 강대한 해상 공화국을 건설했고 스페인, 북아프리카와 교역하면서 황금기를 누렸으며 십자군 전쟁을 지원했다.

바로 이 시대에 피사는 대성당 옆에 종탑, 세례당, 캄포 산토를 착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1284년에 강력한 라이벌 해상공화국 제노바와의 전쟁에서 패하는 바람에 역사의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피렌체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적의 광장 북쪽에 좌우로 길게 자리 잡고 있는 캄포 산토(Campo Santo)는 ‘거룩한 뜰’이란 뜻으로 그 기능은 공동묘지이다. 이 묘지는 12세기 십자군 전쟁 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골고다 언덕의 흙을 배로 실어 와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묘지의 건물은 1278년에 건축가 조반니 디 시모네에 의해 육중한 직사각형 회랑 모양으로 설계되었고 1300년대에 들어서는 피사에 보존된 고대 로마의 석관들이 이곳으로 옮겨졌는데 그때 최후의 심판, 지옥, 죽음의 개선이라는 제목의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졌다. 그 후 캄포 산토의 건물이 모두 완공된 것은 많은 세월이 흐른 1464년이었다.

대성당(오른쪽)과 세례당(왼쪽) 사이에 보이는 캄포 산토의 외관.
대성당(오른쪽)과 세례당(왼쪽) 사이에 보이는 캄포 산토의 외관.

이곳에 있는 세 개의 벽화 중 <죽음의 개선>은 가로 15m 세로 5.6m의 거대한 그림으로 피렌체 화가 부팔마코의 작품이다. 이 벽화에는 여러 가지 장면이 담겨져 있다. 왼쪽 아래에는 사냥에서 돌아오는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와 기사들을 죽음이 짓밟으려는 장면이, 오른쪽 위에는 천사가 구원된 자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장면, 오른쪽 아래에는 악마가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의 영혼을 탈취하는 장면인데 영혼은 아기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섬칫하고 음침한 분위기 속에는 최후의 심판 날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며 신의 자비를 간구하는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러고 보면 이 그림은 중세의 성가 ‘진노의 날(Dies irae)’을 그대로 형상화 한 것 같다. 이 성가의 가사는 세상의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강림하여 죄를 심판하는 진노의 날에 죽은 이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구하는 내용이다.

이 벽화가 그려진 것은 1336년과 1341년 사이다. 그러니까 1347년 흑해에서 발생한 흑사병이 이탈리아에 대대적으로 창궐해 피렌체와 주변도시에서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던 매우 암울한 시기이다. 이 흑사병은 1350년까지 유럽전역에 퍼져 유럽 전체 인구의 약 1/3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죽음의 개선> 세부. 악마가 죽은 자들로 부터 영혼을 탈취하는 장면. 영혼은 아기로 묘사되어 있다.
<죽음의 개선> 세부. 악마가 죽은 자들로 부터 영혼을 탈취하는 장면. 영혼은 아기로 묘사되어 있다.

<죽음의 개선>이 그려진지 약 500년이 지난 다음의 일이다. 1838년에서 1839년에 걸쳐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리스트(F. Liszt 1811-1886)가 피사에 왔다.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수많은 독창적인 음악을 작곡한 19세기 유럽 음악계의 황제 같은 인물이었는데 이탈리아 여행 당시는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그는 이 벽화를 보고 깊은 충격과 영감을 받고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로 그린 ‘벽화'를 구상하게 되는데 이 곡이 바로 <죽음의 춤(Totentanz)>이다. 이 곡은 중세 성가 ‘진노의 날’의 선율을 주제로 한 변주곡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악마적인 힘과 서정적인 매력뿐 아니라 강력한 표현과 극적인 박력도 갖추고 있다. 이 곡을 들으면 마치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듯하다. 그것은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투쟁하는 삶의 모습이리라.

캄포 산토의 중정. 골고다의 흙을 깔았다고 전해진다.
캄포 산토의 중정. 골고다의 흙을 깔았다고 전해진다.

한편, 캄포 산토에는 1779년까지 피사의 유명한 인물들이 묻혔는데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묘소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이탈리아어로 ‘갈릴레오’란 ‘갈릴리 사람’이란 뜻이고 ‘갈릴레이’는 그 복수형이니 그의 이름은 매우 기독교적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죽어서 기독교식으로 장례가 치러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고수했다는 이유로 로마에 소환당해 종교재판소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1633년부터 피렌체 근교에서 가택연금 당한 상태에서 1642년에 죽음을 맞이했는데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정식사과’를 받은 것은 죽은 지 자그마치 350년이나 지난 1992년이었다. ‘죽음의 개선’이었을까?

정태남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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