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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역할은 솜사탕 막대기 같은 거였죠”

[임시정부, 그 길을 가다 ⑫] 항주 임시정부 유적지 탐방

2019.04.09 정책기자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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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항주(항저우), 소주(쑤저우)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항주는 중국 내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하지만 피난길에 올랐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에게 항주는 어떤 곳이었을까?

윤봉길 의사의 의거 여파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급히 상해에서 항주로 옮겨간다. 임시정부가 항주에서 머문 시기는 1932년 5월부터 1935년 11월까지. 앞서 김구 피난처에서 살펴봤듯, 지도자 따로, 청사 따로인 시기이기도 했다. 이봉창, 윤봉길 의사가 속해있던 한인애국단 단장이 김구였던 터라, 김구 선생은 일제의 눈길을 피해 제 몸 숨기기조차 버거웠을 것이다.

중경에 이르기까지 8년여 기간은 살아남는 게 목표였던 시기였다. 항주 시기는 밀정의 눈길을 피해다니는 것도 버거운 시기였다. 그 시절, 항주 임시정부 청사로 떠나보자.

청태 제2여관, 현 군영호텔 정문.
항주 첫 임시정부 청사였던 청태 제2여사. 현재는 호텔로 바뀌었다.


위 사진의 건물은 항주에 도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다. 군영반점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호텔로 바뀌었다.

항주 첫 임시정부 청사는 현재 현지인 전용 호텔로 사용을 하고 있어 외국인들은 숙박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같이 임시정부 답사나 탐방을 하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에 또 하나의  작은 아쉬움을 안고 가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첫 청사가 여관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면서 기밀 유지에 문제가 많아 오래 머물지는 못하고 호변촌에 두 번째 청사를 마련하게 된다.

항주 임시정부 청사.
항주 임시정부 청사.


청태 제2여사에서 항주의 랜드마크인 서호에 인접한 호변촌 23호로 이동해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중국 국민당의 도움으로 마련한 새 청사였다.

무엇보다 많은 세대가 살고 있던 주택가라 외부의 눈길을 피하기에 용의했다. 하지만 워낙 일제의 감시가 심했던 터라 회의는 가흥이나 남경(난징) 등에서 열었다. 

중국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이 세 곳에 있는데, 상해, 중경, 그리고 이곳 항주다. 유일하게 항주 청사만 국가급 유물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중국 항주 정부는 2002년부터 건물을 보수, 정리해 2007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구지 기념관’으로 정식 개관했다.

사흥방
사흥방 한국독립당 사무소터 골목 안.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함께 대한민국 정당들도 항주로 이전을 하였는데 한국독립당은 김구 선생 등 임시정부 요원들이 만든 임시정부의 기초세력이자 여당과 같은 역할을 했던 조직이었다. 항주에서의 한국독립당의 흔적은 ‘사흥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호수가 적혀 있는데 ‘사흥방 40호’는 한국독립당 사무실로 사용을 하였고 ‘사흥방 41호’에서는 한국독립당 기관지 ‘진광’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현지인이 살고 있는 가옥으로 내부로는 들어가 볼 수 없었다.

한국독립당 기관지 ‘진광’을 만들던 곳(사흥방 41호).

 

한국독립당 사무실로 사용되었던 곳(사흥방 40호).


항주에서만 세 차례 청사를 옮겨다녔다. 1934년 11월 국무회의 결정을 통해 마지막으로 청사를 옮긴 곳이 바로 아래 오복리 2가 2호다.

당시에 임정 요인과 가족들은 항주 시내 곳곳에 머물거나, 다른 지역에서 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일본 밀정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감시가 심했고, 피난 생활이 힘들었음을 암시한다.

항주에서의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가 있던 오복리 2가.


항주에서의 3년여 간의 임시정부 활동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 시기에 역사적으로 떠올릴만한 굵직한 업적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임정 요인들의 목표는 ‘생존’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그 다음 일을 모색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그 와중에 김구 선생은 1933년 5월 장개석(장제스)과의 회담을 통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약속받게 되고 그해 11월 임시의정원에서는 민족문제의 해결은 오직 군사행동에 있을 뿐이라고 선언, 중장기적으로 장교 양성과 군사교육 강화, 무기 및 군비 확충을 준비했다.

1934년에는 외교대표부 성격을 띤 ‘외무부 행서’를 국내외 요충지역에 설치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력을 강화하고 재무부 포고를 통해 미주 한인사회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독려하는 등 나름의 독립운동을 진행해 나간다.

함께 동행한 박광일 역사작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할을 이렇게 비유했다. “솜사탕 보면 막대기 있잖아요. 임정의 역할이 그 막대기였어요. 막대기가 없으면 솜사탕이 부풀어오를 수 없잖아요. 광복 때까지 중심을 계속 잡고 있었던 거죠.”

항주의 랜드마크 ‘서호’
항주의 랜드마크 ‘서호’.

항주 임시정부 청사 지척에는 아름다운 호수 ‘서호(시호)’가 있다. 중국 고대 4대 미녀 중 한 여인인 서시 보다 아름답다는 서호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이 아름다운 호수를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아름다움을 느낄 겨를이라도 있었을까?

상해에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하고 중경에서 광복군을 만들고 해방이 되기까지 항주 임시정부는 그 매개체이자 연결고리였다. 임시정부의 명맥을 이어나갔던 항주 시기. 과연 항주 시기를 빼고 이후의 임시정부를 말할 수 있을까? 그 고난의 시기를 꿋꿋이 버텨줬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이상윤 lsy50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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