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 절절한 심정이 흩뿌려진 국립서울현충원. 그곳에서 배우 김혜수 씨가 전사자의 아내 김차희 씨 편지를 읽었었는데요.
문득 비슷한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6.25 참전 전몰용사셨거든요.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아마 똑같은 마음을 띄워 보내고 싶지 않으셨을까요?
2년 전 국가보훈처에서 아버지 앞으로 온 현충일 추념식 초대장. 올해도 어김없이 받으셨다. |
어릴 적, 할머니 옷장에서 빛바랜 편지를 발견한 기억이 납니다. 또박또박 써내려간 편지는 전쟁터에서 할아버지가 보낸 단 한 장의 마음이었는데요. 투박하지만 간결한 문장 속에는 “지금쯤 아들(저희 아버지)이 걸음마를 걷고 있는지”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어린 제 기억에도 그 문구가 깊이 남은 건, 전쟁에서 보고 싶은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그리움 때문이었을까요.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삶을 알지 못하고 쓴 애절함 때문이었을까요?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이제는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다. 더 강한 우리나라가 돼 더욱 좋은 일을 많이 하길. |
6.25전쟁이 일어난 지, 어느덧 69년이 흘렀습니다. 오가며 집 근처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을 볼 때마다 남다른 생각이 듭니다.
십여 년 전, 아버지는 외손자 걸음마 연습을 시키신다며 전쟁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굳이 전쟁기념관을 택한 건, 혹시 할아버지가 원했던 걸음마를 보여드리고 싶은 까닭은 아니었을까요? 우거진 녹음처럼 한 발자국을 떼는 아이의 발을 보며 유독 흐뭇해하시던 그날의 아버지 표정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할머니의 국가유공자유족증과 국가보훈처에서 새로 제작한 명패 견본.(명패 사진 출처=국가보훈처)
국가보훈처는 올 1월부터 시작한 명패 달기를 확산하고 국가유공자와 가족의 예우와 복지를 실질화하며, 보훈의료 인프라 확충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약 21만 명의 국가유공자 명패 보급사업을 추진하며, 1만5000명의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조사를 할 예정입니다.
올 10월이면 괴산호국원이 개원하며 8월에는 제주국립묘지를 착공합니다. 또 경기·강원권 국립묘지를 신규로 조성하고, 수유리 애국선열 묘역을 직접 관리한다고 합니다.
일생을 바친 이름 모를 젊은 용사들에게 더더욱 절절하고 먹먹한 마음이 든다. |
나라를 위해 삶을 바친 국가유공자와 가족에게는 여러 혜택이 주어지는데요. 올해는 저소득 보훈가족 대상을 확대하고 생활조정수당 단가를 5만 원 인상했으며, 고령 국가유공자를 위해 중앙보훈병원에 치과병원을 2.8 배 정도 확대해 증축한다고 합니다.
더불어 지방보훈병원 재활센터를 확충하고 보훈요양원 건립을 지속적으로 추진합니다. 이외에도 보훈가족 심리재활, 무료 법률구조상담, 이동통신, 고궁 및 휴양지 할인등과 같은 혜택이 있습니다.
전쟁기념관에 휘날리는 참전국 깃발. 6.25전쟁에는 병력 지원 16개국, 의료 지원 5개국 등 많은 국가가 도움을 주었다. |
얼마 전, 6월을 맞아 다시 아버지와 전쟁기념관을 찾았습니다. 나부끼는 참전국 깃발과 용맹스러운 조형물들은 변함이 없었는데요. 어쩐지 그곳에서 보는 소나무들은 더욱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생전 제게 말씀하셨지요. 자신은 말솜씨도 글재주도 없어 제대로 전하지 못했지만, 할아버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할머니 마음속에는 이런 답장을 쓰고 싶지 않으셨을까요?
맑게 흐르는 연못에는 내 얼굴도 전쟁기념관도 함께 담겨 있다. 이 말을 할아버지께 들려주고 싶다. ‘모두가 당신 덕분입니다’ |
전쟁기념관 앞 나무들. 이렇게 더운 날, 묵묵히 그늘이 돼주는 이름 모를 고마운 존재를 우리는 가끔 잊어 버린다. |
‘6월이면 더욱 그리운 당신, 무엇이 되셨을까요? 언제나 남을 배려하던 당신이기에 전쟁기념관에 그 넋이 있다면, 또 누군가를 위해 살고 있겠지요. 당신은 나무가 돼, 오늘같이 더운 날 많은 이에게 그늘이 돼주고 있나요? 기념관 앞 연못처럼 맑게 흘러 모든 이를 비추고 있을까요? 당신 눈에 비친 마지막 모습은 어떤 것이었나요? 당신의 머릿속에 품었던 단 한 가지 생각은 무엇이었죠?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어디에 계시던 여전히 우리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으리라 봅니다…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만나서 행복합니다…’
경찰서에서 나부끼는 현수막. 이름 모를 장병들께 더더욱 감사하다. |
요즘 경찰서와 공공기관 등 여러 곳에서 호국보훈 현수막이 나부낍니다. 또한 참전자를 포함한 독립유공자 관련한 혜택들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전쟁기념관에서 전사자검색시스템으로 할아버지를 찾아보았다. 계급과 사망 장소 등이 나오는데 저절로 숙연해진다. |
누구보다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크셨던 할아버지, 이젠 답장 대신 직접 할머니와 만나셨겠죠? 두 분이 더욱 그리워지는 6월.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용산역 국군장병 라운지에서 본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 유전자 시료 제공으로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확인되면 심사를 거쳐 최대 1000만 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유해 소재 제보,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 참여 문의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표전화 1577-5625
국가보훈처 심리재활집중센터(마음나눔터)
대상 :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8명 내외
문의: 02-786-7935~7
비용: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