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이었습니다. 텔레비전 각 채널은 시상식과 1년 동안 이슈들로 가득했습니다. 그중에는 지난 7월 응급실 의료인 폭행 사건도 있었습니다. 위험했던 사건이 다시 상기된 것도 잠시, 곧이어 의사가 사망했다는 뉴스가 들렸습니다. 순간 먹먹해졌습니다. 제가 겪었던 응급실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긴급환자에게 응급치료는 단 하나 잡을 수 있는 생명선이다. |
급성 위경련으로 실려갔던 한밤 응급실은 경황이 없었습니다. 화상을 입고 우는 어린 아이, 교통사고로 피를 흘리는 사람, 응급처치를 하는 의료진. 통증을 가라앉히는 링거를 맞고 나서야 비로소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응급실은 걱정스러운 보호자들과 아픈 환자들, 열성을 다하는 의료진들로 분주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만취한 남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의료진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진료를 방해했습니다. 의료진은 취한 남성을 피해 다른 환자 진료를 봐야했고요. 일순 놀란 환자들은 조용해졌다가 화상을 입은 아이의 울음과 함께 더욱 시끄러워졌습니다.
흥분한 남성에게 의료진 한 명이 붙어 있는 바람에 모자란 인력은 더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요. 겨우 아픈 위가 나아지나 싶었는데, 다시 통증이 밀려왔습니다.
적어도 응급실만큼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
“종종 만취해서 욕설을 하거나 방해를 하는 분들이 계시죠. 저희도 신경이 곤두서는데다 정작 심각한 응급환자를 놓치게 되니 참 힘드네요.” 지친 기색이 역력한 간호사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초를 다투며 생명을 구하는 곳이 응급실입니다. 의료진은 진료만으로도 벅차고, 응급환자들은 고통과 생명 사이에서 사투를 벌입니다. 위급한 환자를 치료하기도 벅찰텐데 방해와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니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는 경찰청과 합동으로 응급실 폭행방지대책을 마련했고, 12월 27일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현행 응급의료법은 응급의료를 방해했을 때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하지만 앞으로는 의료진에게 상해를 입혔을 때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내게 됩니다.
의료진에게 중상해를 입혔을 경우 3년 이상 유기징역,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이 내려집니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른 경우에도 주취 감경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의료진, 환자 누구하나 생명은 소중한 건 같다. |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니 몇 가지가 눈에 띄는데요.
응급실 폭행범 형량 하한제가 도입돼 폭력 행사시, 현행 벌금형에서 일정 형량 이상 반드시 처벌하도록 바뀝니다. 또한 응급실의 보안 인력 배치가 의무화 되고요. 지역 의료응급기관 혹은 소규모 의료기관일 경우는 응급실 전담이 아니라도 보안 인력이 배치되도록 검토합니다.
응급실 진료환경 안전성 평가도 강화됩니다. 현재보다 세부지표를 추가하고 배점을 조정합니다. 빈번한 주취자 관리를 위해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이 협력해 응급치료 지원을 강화합니다.
응급실 내 폭력이 있을 경우 신속한 출동과 집행이 더 엄격해집니다. 앞으로는 공무집행방해에 준한 구속수사 등을 담은 ‘응급의료현장 폭력행위 대응지침’을 시행하는데요. 단순 폭언 등에도 재범 위험성과 상습 방지를 위해 조사를 하며, 심각할 때는 전기충격기 등을 사용해 검거하는 등 적극대응을 합니다.
지난 7월 열린 ‘의료기관 내 폭력 근절 범의료계 규탄대회’.(출처=뉴스1) |
예방 차원의 조치도 강화합니다. 응급실 환자 응대요령에 대한 교육과 CCTV 같은 응급실 내 보안장비 확충을 지원합니다. 장시간 대기와 정보 부족으로 인한 환자들의 불만을 감소하고자 응급진료 관련 안내 및 상담 책임자를 지정, 보다 친화적인 응급실 환경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12월 31일 사망한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사건과 관련,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회의를 갖고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한 개선방안과 의료인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롯이 치료에 집중하는 환경이 조성되길. |
제가 경험했던 응급실 모습과 함께 2018년 마지막 날 세상을 떠난 의사 선생님이 겹쳐집니다. 저는 그 분을 알지 못하지만, 내내 가슴이 저려왔는데요. 더욱이 많은 분들이 그 분의 선행을 기억하기에 더 쓰라립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말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 해도 한 번 더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는 의료진이 온전히 의료에 전념할 수 있기를, 응급실에서 올바른 응급진료를 받을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촌각을 다투는 곳에서 의사가 환자에게만 집중해야 생명을 구할 수 있으니까요.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윤경 otter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