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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의 항거, 그 현장에 가다

[대한민국 곳곳서 찾은 101년전 만세 함성 ②] 서울 성수동

2020.02.29 정책기자 서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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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은 서울에서 꽤 알려진 동네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넘쳐난다. 흔히 말하는 핫플레이스다. 왜 그럴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서울숲이 있다. 숲은 아름답다. 한강이 있고 청계천, 중랑천이 있다. 골목 곳곳에 카페들이 즐비하다. 개성이 넘친다. 미국의 유명 커피집이 성수동에다 1호점을 냈다고 해서 매스컴에서 요란했다.

사실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공장 건물들이다. 투박하지만 묘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볼거리가 된다. 여기에 예술가들이 있다. 이들은 성수동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아파트에서 바라본 뚝섬.
아파트에서 바라본 뚝섬.


몇 년 전 서울에서 최고가였던 아파트가 있다. 반면에 재개발이 시급한 주택들도 있다. 최근엔 오피스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것들이 혼재하는 곳이 성수동이다. 무언가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동네다. 이런 매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수동을 찾는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정작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독립만세운동이다. 성수동에서 역사적인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101년 전, 노동자들이 독립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1919년 3월 26일의 일이었다.

왕십리에서 중랑천을 건너 뚝섬으로 건너가는 살곶이다리. 1910년대 무렵.(출처=성동역사문화연구회)
왕십리에서 중랑천을 건너 뚝섬으로 건너가는 살곶이다리. 1910년대 무렵.(출처=성동역사문화연구회)


1919년 그 무렵, 뚝섬

역사적 사실을 발굴한 이들이 있었다. 성동역사문화연구회다. 그날의 상황을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다. 성동역사문화연구회 최창준 회장이다. 서울숲지구대 앞 한 카페, 최창준(65) 회장을 만나 뚝섬만세운동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들었다. 

뚝섬은 한성(경성) 동남부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뚝섬나루가 있어 한강을 이용한 물류 이동이 많았다. 뚝섬 주변은 채소 재배지였다. 그리고 땔감이 뚝섬나루를 통해 경성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사람들과 채소, 땔감 등 여러 물자가 뚝섬나루를 통해 경성에 들어갔던 것이다.

강원도나 경기도 쪽에서 들어온 땔감은 달구지나 지게로 경성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사람과 물류가 모여드니까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하역작업을 하는 노역꾼, 지게꾼, 마차꾼이 있었고 밥장수, 술장수 등 장사꾼이 있었다.

이들이 주도하여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그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뚝섬만세운동은 양상이 달랐다. 뚝섬나루에 기대어 살았던 노동자들이었다.

1915년 뚝도면 일대 지도에 만세운동 관련 장소를 표기했다.(출처=성동역사문화연구회)
1915년 뚝도면 일대 지도에 만세운동 관련 장소를 표기했다.(출처=성동역사문화연구회)


3월 26일 그날, 뚝섬은 태극기 물결  

성동역사문화연구회에서 발간한 자료(2016년)를 바탕으로 그날의 거사를 살펴보면 이렇다. 

3월 23일 서뚝도리(뚝섬)에 유인물이 뿌려진다. 음력 2월 25일(양력 3월 26일) 오후 7시 30분에 우물터에 모여서 만세운동을 하자는 것. 조직적으로 준비했다고 추정되는 대목이다.

3월 26일 저녁에 뚝도리(뚝섬)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펼쳐진다. 동뚝도리의 이뭇개(지금 3수문 앞), 야소교 교회(지금의 성수동 교회로 추정) 앞, 서뚝도리의 밥집 앞 등 여러 곳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진다.

경성에서 자동차를 타고 달려온 헌병 15명이 뚝섬에 도착한다. 이들은 시위 군중에게 무차별 발포를 한다. 사망 1명, 부상 12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고, 103명을 체포한다.

103명 연행자 중에 시위 주동자로 체포, 기소된 12명은 마차꾼, 소달구지꾼, 짐차꾼, 단순노동자 등 노동자가 10명이다.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뚝섬의 민초였던 것이다. 당시 고양군에서 일어난 시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격렬했다.

성동역사문화연구회에서 발간한 ‘뚝섬삼일운동’ 자료.(출처=성동역사문화연구회)
성동역사문화연구회에서 발간한 ‘뚝섬삼일운동’ 자료.(출처=성동역사문화연구회)


동네마다 있었을 만세운동

성수동에서 있었던 만세운동이 뚝섬만의 일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3.1만세운동은 온 국민이 떨쳐 일어난 민족의 거사였다. 한반도 곳곳에서 크고 작은 만세운동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은 성수동의 독립운동을 알게 된 것이 2018년이다. 그 전까지 그렇게 피 흘려 지켜낸 땅을 딛고 다녔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 부끄러웠다. 

성동역사연구회 최창준 회장은 성수동 거주자다. 오래전부터 뜻이 맞는 이들과 역사 기행을 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함께 답사를 한 최창준 회장.
함께 답사를 한 최창준 회장.


“마을의 과거를 잘 아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구술 채록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뚝섬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는 걸 들었지요.”

의미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단다. 100년 전의 일이어서 진실을 밝혀낸다는 게 쉽지 않더란다.

“뚝섬만세운동의 현장이 생생한 민주주의와 자주독립운동 교육의 현장이 되도록 해야 해요. 성동구청이 나서서 의지가 있는 민간과 함께 지역주민에게 생생한 민주주의와 자주정신의 교육 현장이 될 수 있도록 기념사업을 추진해야지요.”

19년 왕십리광장, 시민들 앞에서 선보인 성동구립극단의 창작뮤지컬 형식의 뚝섬만세운동. 오른쪽 첫 번째는 기자 본인임. 사진: 성동구청 제공
2019년 왕십리광장서 선보인 성동구립극단 창작뮤지컬 형식의 뚝섬만세운동.(사진=성동구청 제공)


성동구는 뚝섬만세운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주민이 주체가 되어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단이 구성되었다.

성동구립극단은 ‘190326 뚝섬만세운동’이란 제목으로 뮤지컬 형식과 연극 형식으로 3번에 걸쳐 공연을 했다. 성동구립극단 황정원 예술감독은 “뚝섬만세운동은 성동구를 대표할 만한 문화 콘텐츠예요. 세련된 연극으로 발전시켜야 되겠죠. 나중에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확장할 가치가 있다고 봐요. 성동구의 중요한 문화 자산이죠”라고 소감을 밝혔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서성원 it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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