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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신치, 그리고 파오차이

2021.09.10 엄익상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교수/한국중국언어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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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익상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교수/한국중국언어학회 고문
엄익상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교수/한국중국언어학회 고문

요즘 문화 산업의 성장에 따라 다른 나라의 문화 콘텐츠를 접촉할 기회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래문화에 대한 이해가 중요해졌다. 국가마다 자국 문화의 전파과정에서 그 고유성과 정체성을 올바로 유지하려는 노력은 당연하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에서 발표한 김치의 중국어 번역인 ‘신치’(辛奇)도 그 일환이다.

그동안 김치는 중국어 관용에 따라 ‘한궈파오차이’또는 간단히 ‘파오차이’라고 번역해왔다. 하지만 파오차이는 사실 절임 음식의 통칭이다. 발효음식인 김치와의 본질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일부 네티즌들은 김치가 중국의 파오차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소식은 중국의 문화공정으로 인식되면서 다소 민감한 사안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방탄소년단이 최근 제작한 김치 담그기 체험 영상의 중국어 자막에 김치가 ‘파오차이’로 번역되자 중국의 전략에 역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김치와 비슷하게 발음되는 중국어 표기가 있다면 불필요한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어에는 ‘치’ 음은 있지만 ‘김’ 음은 없다. 한국어 ‘김’과 가장 가까운 중국어 발음은 ‘진’이다. 경상 방언에서 김치를 ‘짐치’라고 하듯이, 중국어에서도 김(金)자를 ‘진’으로 발음한다. 아쉽게도 ‘진’으로 발음되는 한자 중에 김치의 속성까지 잘 드러내는 마땅한 한자가 없다. 그런 점에서 김치의 중국어 표기 ‘신치’(辛奇)는 표음의 유사성을 어느 정도 살리면서도 김치의 매운맛을 잘 표현한 번역이다.

일각에서는 외국인들이 김치라는 명칭을 신치로 아예 바꿨다고 오해할 것을 우려한다. 신치는 중국어 명칭으로 김치의 영어 표기 Kimchi나 일본어 표기 キムチ(기무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인들이 스스로 결정할 사안을 왜 우리가 관여하느냐는 지적도 있다. 신치는 중국어 어휘를 당장 바꾸고자 하는 의도보다 김치의 고유성을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노력일 따름이다.

또 김치가 ‘신치’나 한자음인 ‘신기’로 바뀔까 염려하여 ‘한궈파오차이’를 그대로 쓰자는 주장도 있다. 중국어권에 수출하는 김치의 품명을 辛奇로 표기한다고 해서 한국어에서 김치란 말이 사라지는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다. 이 단어를 주로 접하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어 신치가 한국어 김치를 대체할 수 있다면, 파오차이나 포채 (泡菜)같은 의역어 또한 김치를 대체할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한다.

그러나 1992년 한중수교 이후 빈번한 인적 교류에도 불구하고 중국어가 한국어에 유입된 단어는 지우링허우, 유커, 마라탕, 중국몽, 일대일로 등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들 가운데 한국어 단어를 교체한 경우는 없다. 한자가 서사 수단이었던 과거와 달리, 한글 전용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중국어가 한국 고유어를 교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국내 공공 시설물의 한자 표기는 이제 정자체가 아니라 중국 현지에서 사용하는 간자체로 표기된다. 한국인을 위한 한자 병기가 아니라 중국인을 위한 중문 표기이다. 간체로 쓰여진 중문을 누가 굳이 한국 한자음으로 읽어서, 한국어에 간섭을 일으키거나 고유어대체까지 야기하겠는가?

필자가 ‘한청’(漢城)이었던 서울의 중국어 명칭을 2003년 ‘서우얼’(首爾)로 처음 제안하고, 이듬해 서울시가 공모를 통해 선정 작업을 진행했을 때도 비슷한 이유로 반대 목소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초 공식 발표 이래 전 세계 중국어권에 매우 성공적으로 보급 정착됐는데, 한국을 포함한 비중국어권에서 서울을 ‘서우얼’이나 한자음 ‘수이’로 부르는 경우는 없다.

김치를 중국어로 신치(辛奇)로 표기하는 방안은 사실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이미 제안됐으나 그동안 전파는 지지부진했다. 이제는 신치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보급과 확산에 노력할 때이다. 중국어 화자들이 김치를 신치로 부를 때 한국 김치와 중국 파오차이 간의 원조 논쟁은 무의미해지고 문화적 차이에 대한 상호 존중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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