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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2021.02.26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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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엄혹한 코로나 시련 속에서도 아동학대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해 국민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아동학대나 아동학대 치사 사건은 이제 국가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

1월 8일에는 국회가 ‘부모가 자녀를 보호하거나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한 이른바 자녀징계권을 민법에서 삭제했다. 자녀에 대한 가혹한 체벌을 훈육으로 합리화하는 데 악용된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2월 25일 ‘아동인권보호 특별추진단’을 발족시켰다.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각종 대책에도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계속 발생해 국가 대응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국민적 공분과 불안이 증대되고 있다. 아동을 구하고 국민을 안심시킬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한때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는 말이 풍미했다. 배우 김혜자는 전쟁과 가난과 굶주림과 학대와 성폭행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부녀자들을 찾아 10년 넘게 구호활동을 하고나서 2004년 이 제목의 책을 썼다.

이 문장의 연원은 스페인의 저명한 교육자 프란시스코 페레(1859∼1909)에게 맞닿아 있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2002년 페레의 삶과 교육철학을 다룬 평전을 펴냈는데 그 책의 제목이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다. 제목은 저자가 붙였는데 페레가 생전에 이 말을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종교박해에 저항해 처형당한 순교자는 역사에 많고,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교육자도 많지만, 교육에 대한 신념으로 목숨을 앗긴 이는 페레가 유일하다. 그래서 그를 ‘교육 순교자’라고 부른다.

그는 세계 최초로 아이들의 자율과 창의를 우선하는 진보적인 ‘자유학교(모던 스쿨)’를 세운 사람이다. 그의 교육철학은 한 마디로 아이들에게 권위에 의한 억압이 아닌,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무엇보다 가장 반대한 건 폭력이었다. 폭력의 배제가 교육의 방법이자 목표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육현장에서 모든 종류의 체벌뿐 아니라 평가, 경쟁, 상벌제도를 폐지했다. 오직 친자연, 자연과학, 도덕적 합리주의에 근거한 커리큘럼을 만들고 종교적 도그마와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교육을 시행했다.

그가 남긴 말 중에 “우등생과 열등생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미술 또는 음악 혹은 다른 무엇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을 뿐”이라는 말은 유명하다.

스페인 정부는 자유학교의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페레를 위험한 정치적 인물로 여겼다. 그래서 그의 나이 오십에 군사반란 배후 혐의로 정치적 누명을 씌워 총살했다.

왜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일까. 꽃 앞에서 욕을 하거나 침을 뱉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꽃은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다. 그 누가 꽃밭에서 폭력을 휘두르겠는가. 페레와 김혜자가 던진 메시지는 결국 같을 것이다. 아무리 좋고 선한 도구나 명분일지언정 그것을 억압이나 폭력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내 선친은 매우 엄하셨다. 난 70년대에 대학에 다닐 때조차도 학점을 보고해야 했고 당신이 흡족하지 않으시면 종아리를 걷게 했다. 중·고교 모두 입시 세대인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체벌에 익숙해져 있었다. 석차 순에 따라 자리를 배정받았고 1등이라도 석차가 떨어지면 책상에 꿇어앉아 그 여린 허벅지에 회초리를 받았다. 고등학교 체육선생님 별명은 ‘O빠다’였다. 그 때는 대걸레자루와 야구방망이가 “퍽퍽”거리는 소리가 교실에서 난무했지만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생 때도 아버지의 체벌에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70년대는 ‘사랑의 매’라는 표현 앞에서 사회도, 학부모도, 학생도 모두 폭력을 용인하던 시절이었다.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말은 훌륭한 부모인 양 돋보이게 했다. 지금은 ‘교편(敎鞭)’을 잡는다는 표현이 사라졌지만, 그때는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일종의 경외적 표현이었다. ‘편(鞭’)은 가죽채찍을 말한다.
 
페레로부터 1세기가 훨씬 지났다. 지금의 학교 교육 현장에서 체벌은 거의 사라졌다고 본다. 법적으로는 2011년 3월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정으로 금지됐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남이 볼 수 없는 가정에서는 다시 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꽃은 고사하고 달군 프라이팬, 쇠사슬, 여행가방, 물고문까지 나온다. 많은 아동학대 사건의 피해자가 입양아나 의붓자식이라는 점은 학대를 이해시키는 정황이 아니라, 우리를 더 슬프게 만들고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가해자들의 일관된 변명은 아이 훈육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체벌이 아무런 효과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아이를 망친다는 연구가 교육학의 대세다. 폭력의 피해자가 성장해서는 폭력의 가해자가 되기 쉽다는 것은 많은 실증 연구에서 입증됐다.

미국 텍사스 대학 엘리자베스 거쇼프 교수는 50년 동안의 추적을 통해 체벌과 아동발달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문을 5년 전에 발표했다. 체벌을 많이 경험한 아이일수록 범죄와 반사회적 행동 빈도가 높아지고 평생 우울과 불안감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체벌 효과는 제로이며 결과는 일관되게 부정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80%는 부모다. 그런데도 여론조사를 보면 여전히 적지 않은 부모들이 말을 안 듣는 아이한테는 어느 정도의 훈육 차원의 벌이 필요하다고 대답한 것을 보았다. 벌을 세우거나 집밖으로 잠시 내쫓거나 자로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때리는 정도는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초록우산재단이 2019년부터 벌인 캠페인 제목은 “change 915,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다. (부모의 자녀징계권 조항이 들어있던 민법 915조를 칭함)

부모징계권 삭제 기사에 달린 어떤 학부모의 댓글을 보았다.
“체벌은 부모에게 가장 안이한 훈육법이다. 아이 손바닥을 자로 한 번 때린 적이 있는데 날이 갈수록 나도 모르게 빈도와 강도가 높아졌다.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후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대화로 풀어나가는 법, 감정을 자제하는 법 등을 육아책과 강연 등을 통해 스스로 터득했다. 일체의 체벌 없이 키우는 게 체벌하며 키우는 것보다 훨씬 쉬워졌다. 우리 모녀는 정말 행복하다.”

한기봉

◆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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