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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부패한 사회를 개혁해 새로운 세상을 이루려 했던 꿈

[문인의 흔적을 찾아서] 강릉 허균 생가

2021.03.23 이광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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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경포호 옆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기념관을 빙 둘러 공원과 생가가 잘 조성되어 있다.
강릉 경포호 옆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기념관을 빙 둘러 공원과 생가가 잘 조성되어 있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는 귀한 집 자식이라고 하여 풍부하게 주고 천한 집 자식이라고 해서 인색하게 주지는 않는다. 옛날 어진 임금은 이런 것을 알고, 인재를 초야에서도 구하고 항복한 장수중에서도 뽑았으며, 더러 도적 중에서도, 또는 창고지기를 등용하기도 했다. 하늘이 부여한 재주는 균등한데 명망가와 과거 출신들로만 한정 짓고 있으니 마땅하구나! 항상 인재가 적다고 괴로워하는 것이’ 

허균의 「유재론(遺才論)」의 부분이다. 서얼 출신과 어머니가 천출이나 개가한 자식들의 벼슬길을 막아놓고 인재가 없다고 탄식하니, 평양 가는 수레를 남으로 모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는 말이다. 조선의 신분차별에 대한 강한 비판이되, 오늘날의 ‘금수저-흑수저’ 혹은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과 판에 박은 듯 닮았다. 

다음은 「호민론」. ‘항상 눈앞의 일들에 얽매이고, 법이나 지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이 항민(恒民)이다. 항민은 두렵지 않다. 살이 벗겨지고 뼈골이 부서지며, 집안의 수입과 땅의 소출을 다 빼앗기고는 탄식하면서 지주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원민(怨民)이다. 원민도 두렵지 않다. 자취를 푸줏간 속에 숨기고 몰래 딴 마음을 품고서, 천지간을 흘겨보다가 혹시 시대적 변고라도 있다면 자기의 소원을 실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호민(豪民)이다. 대저 호민이란 몹시 두려워해야 할 사람이다’

항민은 순응하는 무지렁이 백성이다. 원민은 시비는 가리되 나서지는 못하는 국민이고, 호민은 때를 기다려 행동하는 인민이다. 오늘날의 ‘시민’이라고 할 수 있는 호민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시대가 부조리 할 때 호민이 깃발을 들고 일어나면, 원민이 참여하고 항민이 합류하는 민중의 대열, 시민혁명이 일어나는 모습에 대한 5세기 전의 통찰이다.  

기념관에 전시된 <홍길동전>. 소설과 만화 등으로 오랜 세월 다양하게 간행된 책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에 전시된 <홍길동전>. 소설과 만화 등으로 오랜 세월 다양하게 간행된 책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허균(1569~1618)은 초당 허엽의 막내아들이다. 아버지는 서경덕·이황을 사사한 문신이자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다. 이조판서를 지낸 이복 큰형 허성, 시인이자 문신이었던 둘째형 허봉, 천재 여류시인 누이 허난설헌, 그리고 <홍길동전>을 남긴 본인에 이르기까지 글로 일가를 이룬 명문가였다. 12세에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형들 밑에서 배웠다. 14세인 1582년 형의 친구였던 손곡 이달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그의 철학과 문학은 단단한 뿌리를 내린다. 이달은 양반과 관기 사이에서 태어난 서얼이라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고 울분을 시에 쏟았다. 

「외로운 학이 먼 하늘을 바라보며/ 밤이 차가워 다리를 하나 들고 있네/ 서녘바람에 대숲도 괴로운데/ 몸은 흠뻑 가을이슬에 젖어있네」 당시(唐詩)를 모두 외워 훗날 최경창, 백광훈과 더불어 ‘삼당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이달의 시, 다리를 하나 들고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학에 자신을 빗댄 걸작이다. 이달은 허균에게 시의 묘체를 깨닫게 해주었고, 제자는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을 지어 스승을 기렸다.

허균은 30세(1597)에 문과 중시에 장원을 하면서 관직에 나갔다. 이듬해 황해도도사가 되었으나 서울의 기생을 끌어들였다는 탄핵을 받고 6개월 만에 파직된다. 이어 35세에 수안군수로 부임했으나 불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또다시 벼슬에서 물러난다. 37세에 명나라 사신 영접관이 되어 중국에 누이의 책을 출판하고, 글과 학식으로 이름을 떨친 공로로 삼척부사에 부임하지만 역시 불교가 꼬투리가 되어 석 달을 못 넘기고 쫓겨난다. 뒤에 공주목사로 기용되었으나 서얼출신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칠서지옥(七庶之獄)’ 사건 후유증으로 또다시 파직 당한다. 

허균의 <한정록>. 이 작품을 비롯해 교산시화, 성소부부고, 성수시화 등 여러 문집이 전한다.
허균의 <한정록>. 이 작품을 비롯해 교산시화, 성소부부고, 성수시화 등 여러 문집이 전한다.

부안으로 내려가 산천을 유람하며 황진이에 비견되는 기녀이자 시인인 매창과 사랑을 나누고, 천민 출신의 시인 유희경을 벗하며 살았다. 1609년 조정에 복귀하여 형조참의로 일하던 중 전시 시험을 주관하면서 부정합격 시켰다는 이유로 또다시 탄핵을 받는다. 1617년 좌참찬으로 복귀했으나 인목대비 폐비를 주장하는 진영에 합류하면서 정치적 무리수를 두게 된다. 결국 이듬해(광해군 10) 창덕궁 인정전 앞에서 살벌한 국문이 열려 광해군의 스승이자 친구이기도 했던 허균은 ‘영창대군 옹립’의 역모혐의를 벗지 못하고 사지가 찢기는 참형을 당하게 된다.  

허균의 삶은 숱한 정치적 부침을 거듭한 만큼 평가에 있어서도 포폄(褒貶)의 극단을 달린다.  한편에서는 총명하고 영민하며 ‘시를 아는 사람’으로 인정하며 탁월한 문장과 식견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사람됨이 경박하며 주색을 밝히고, 인륜도덕을 어지럽히는 이단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세간의 평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수차례 파직 이유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는 시대의 금기에 도전하며 파격적이고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불교신봉을 이유로 사헌부 탄핵을 당한 후에도 “내가 불교의 진리를 접하지 않았더라면 한평생을 헛되이 보낼 뻔했다”고 술회하고 있으며, 도교의 양생술과 신선사상에 깊이 빠져들기도 했고, 중국에서 천주교 기도문을 가져오면서 서학(西學)에 관심을 보이는 등 종교를 자유로이 넘나들었다. 

또 사랑에 관하여 “남녀의 정욕은 하늘이 준 것이고 남녀유별의 윤리는 성인의 가르침이다. 성인은 하늘보다 한 등급 아래이니, 성인을 따르느라 하늘을 어길 수는 없다”면서 스스로 세운 기준과 철학을 바꾸지 않았다. 특히나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서얼출신들과 깊은 친교를 맺으면서 차별철폐를 주장하고, 호민론을 통해 미래의 혁명을 내다본 점 등은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의 면모를 보인다. 

허균·허난설헌 생가. 허균의 호가 교산(蛟山)이다. 교(蛟)는 용이 못된 이무기를 뜻하는 말로 그가 태어난 사천진해수욕장 앞 야트막한 산 이름이다. 혁명을 꿈꾸었으되 결국 참형으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을 상징하는 듯하다.
허균·허난설헌 생가. 허균의 호가 교산(蛟山)이다. 교(蛟)는 용이 못된 이무기를 뜻하는 말로 그가 태어난 사천진해수욕장 앞 야트막한 산 이름이다. 혁명을 꿈꾸었으되 결국 참형으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을 상징하는 듯하다.

<홍길동전>은 그의 사상이 응축된 작품이다. 부패한 사회를 개혁해 새로운 세상을 이루고자 했던 허균의 꿈은 한글로 쓰인 최초의 소설이면서 최초의 사회소설이자 영웅소설이기도 한 조선의 대표적 걸작, <홍길동전>에 잘 나타나 있다. 

강릉 경포호 옆에 아담하게 잘 조성해 놓은 허균·허난설헌 기념관과 공원,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오대산 줄기가 서쪽으로 내려오면서 바다에 이르러 융기한 조그마한 야산, 그것이 허균이 호로 삼은 교산(蛟山)이다. 교(蛟)는 용이 못된 이무기라는 뜻이니,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과 부합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작품으로 <교산시화> <성소부부고> <성수시화> <학산초담> <한정록> <남궁선생전> 등이 있다.

이광이

◆ 이광이 작가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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