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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생각하며

2021.05.10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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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버이날에 아버지를 생각하게 된 건 어머니의 얼굴에 어느 한순간 아버지의 표정이 얼핏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는 20년 전에 먼저 가셨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어버이날이 와도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게 됐다. 홀로 사시는 노모도 이제 기일이 아니면 아버지 이야기를 안 꺼내신다. 

밥을 먹다가 어머니에게 물어봤다.
“아버지가 안 보고 싶어요?”
어머니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을 흐렸다.
“손주들이 이렇게 잘 자란 걸 보면 참 좋아하실 텐데…”

오늘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존재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되었거나 아버지가 될 남자들에게 아버지는 하나의 ‘벽’ 같은 존재다. 내게도 그랬다. 넘어서야 할 벽이면서도 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 그 벽이 무너졌을 때 남자는 비로소 남자가 된다. 난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빗속에 아버지를 땅에 묻고 온 날, 차창에 비치는 한 40대 남자가 문득 낯설게 보였다.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남자가 거기 서 있었다.

모든 남자들의 성장사는 아버지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아버지와의 경쟁이 아니다. 아버지를 따르든, 반항하든, 아버지의 우산 또는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무의식이 잠재해 있다.

아버지를 보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도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 아버지가 나에게 벽이었듯이, 이제 나도 벽이 됐다는 것을.  

카프카가 36세에 쓴 책 한 권 분량의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는 엄격하고 강압적이었던 아버지로부터의 정신적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 ‘사랑하는 아버지께’로 시작하는 이 편지글은 카프카가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한테 하지 못한 말들, 평생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낸 것이다. 작가로서의 그의 성장사에는 자수성가했던 아버지의 빛과 그림자가 공존했다.
     
1,400만 명이 본 영화 ‘국제시장’(2014년, 윤제균 감독)의 마지막 장면은 덕수(황정민)가 아버지 사진 앞에서 하는 독백이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자식과 손주들이 거실에서 즐겁게 웃고 떠들 때 덕수는 슬그머니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아버지의 빛바랜 흑백 사진 앞에서 이렇게 말하며 속으로 운다. 아버지는 흥남부두에서 어린 덕수의 손을 잡으며 엄마와 여동생을 꼭 지키라고 부탁했다.

아버지의 대물림이다. 이게 바로 한국 아버지들의 자화상이다. 덕수는 온갖 고생을 겪으며 제대로 집안을 일으킨 후 비로소 아버지의 벽을 넘어선 자기를 본 것이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울 곳이 없다. 같이 울 사람도 없기에, 우는 걸 들켜서도 안 되기에 몰래 혼자 가슴으로 운다. 나는 내 아버지가 우는 걸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우람한 느티나무 같던 아버지가 운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도 아버지와 남편과 가장이 되면서 비로소 내 아버지도 혼자 숨 죽여 운 날이 많았으리라 짐작하게 됐다.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새끼들을 잘 공부시키고 식구들에게 밥을 제대로 먹이고 있는지 늘 자책하듯이 내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새끼를 위해 여러 번 자존심을 버렸듯이, 그리고 아무 내색도 안 했듯이, 내 아버지 또한 생전에 얼마나 많은 치욕의 순간을 겪었을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 마음속에 다르게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어도 늘 어쩔 수 없는 엄마다.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늘 챙기고 걱정한다. 자식으로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엄마라는 존재뿐이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내도 자식도 아닌 엄마다. 엄마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엄마일 뿐이다.

엄마의 사랑은 늘 말과 표정에 실려 왔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는 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2015~2016년 방영돼 복고 열풍을 몰고 온 명품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아버지 성동일. 소시민적 아버지인 그는 사실 여리지만 무뚝뚝하다. 딸에 대한 애정 표현은 서툴기만 하다.

“아빠가 미안하다. 잘 몰라서 그런다.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잖아.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다. 우리 딸이 조금만 이해해 주라.”

똑똑하지만 까칠했던 서울대-사법고시의 자랑스런 딸 성보라(류혜영)는 신혼여행을 떠나며 그런 아버지에게 이런 편지를 남기며 오열한다.
 
“아빠가 ‘보라야’ 라고 부르는 게 아빠를 봐달라는 말인 것도 알았고, 괜시리 밥에 반찬 얹어주는 게 사랑한다는 뜻인 것도 알았는데 나는 왜 모른 척만 했을까. 그게 제일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 아빠.”

엄마의 사랑은 꽃 같으나, 아버지의 사랑은 나무다.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알게 되었다//나무에 기대어 흐느껴/울 줄 알게 되었다//나무의 그림자 속으로/천천히 걸어 들어가//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정호승 시, ‘아버지의 나이’)

엄마의 존재는 ‘눈’으로 오지만, 아버지는 ‘등’에서 온다.

“아버지의 등에서는/늘 땀 냄새가 났다//내가 아플 때도/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아버지는 울지 않고/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나는 이제야 알았다/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그 속울음이/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하청호 시, ‘아버지의 등’)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엄마’는 눈물 나는 말이지만, ‘아버지’는 목이 메는 말이다. 오늘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다. 내가 대학생일 때도 종아리를 걷게 했던 아버지, 힘이 빠진 후로는 동구 밖에서 뒷짐 지고 자식을 기다리던 그 굽은 등이 목이 메게 그립다.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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