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전자정부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뉴스

콘텐츠 영역

당신에게 ‘님’은 누구입니까

[문인의 흔적을 찾아서] 홍성 한용운 생가지

2021.05.24 이광이 작가
목록
홍주읍성 앞에 세워진 만해 한용운선사상.
홍주읍성 앞에 세워진 만해 한용운선사상.

「나는 당신의 옷을 다 지어 놓았습니다/ 심의(深衣)도 짓고 도포도 짓고 자리옷도 지었습니다/ 짓지 아니한 것은 작은 주머니에 수놓는 것뿐입니다 … 나는 마음이 아프고 쓰린 때에 주머니에 수를 놓으려면 나의 마음은 수놓는 금실을 따라서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고 주머니 속에서 맑은 노래가 나와서 내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아직 이 세상에는 그 주머니에 넣을 만한 무슨 보물이 없습니다/ 이 작은 주머니는 짓기 싫어서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는 것입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일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란히 실린 한용운의 시 두 편. 앞은 <수(繡)의 비밀>, 뒤는 유명한 <님의 침묵>의 부분이다. 이 시들은 1925년 내설악 백담사에서 쓰여져 1926년 회동서관에서 간행된 시집 <님의 침묵>에 들어있다.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한용운 생가 터. 인근에 김좌진 장군 생가와 홍주읍성 등 두루 둘러보면 좋을 곳들이 많다.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한용운 생가 터. 인근에 김좌진 장군 생가와 홍주읍성 등 두루 둘러보면 좋을 곳들이 많다.

시집에는 이 두 편을 포함하여 <알 수 없어요>, <자유정조(自由貞操)>, <복종> 등 모두 88편의 시가 기승전결의 연작시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사랑하는 님과의 이별을 제시하는 기(起), 이별의 고통과 슬픔을 나타내는 승(承), 슬픔이 희망으로 바뀌는 전(轉), 그리고 다시 만남을 향해 가는 결(結)의 과정. 시집은 첫 시 <님의 침묵>의 첫 구절은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라는 이별로 시작하여, 88번째 끝 시인 <사랑의 끗판>에서 ‘…홰를 탄 닭은 날개를 움직입니다. 마구에 매인 말은 굽을 칩니다. 네 네 가요 이제 곧 가요’라고 끝을 맺는다. 먼저 님이 떠나고, 슬픔을 극복한 뒤에 나중에 내가 님을 만나러 가는 구조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챔발로 곡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진행과 흡사하다. 주제곡 아리아로 시작하여 30개의 변주를 거친 뒤에 다시 주제곡 아리아로 돌아오는 이 작품은 낱개의 변주들이 이유 없이 나열된 것이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수학적 구조를 통해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다.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하여 ‘이제 곧 가요’로 끝을 맺는 <님의 침묵>은 그 독특한 전개방식에서 불면의 밤을 극복하기 위해 썼다는 바흐의 걸작을 떠오르게 한다. 

사당에 전시된 만해 초상화.
사당에 전시된 만해 초상화.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아명은 유천(裕天).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萬海, 卍海)이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 ‘나는 왜 중이 되었나’라는 그의 술회대로 넓은 세계에 대한 관심과 생활의 방편으로 집을 떠나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입산하여 처음에는 절의 일을 거들다가 백담사에서 연곡(連谷)을 은사로 출가, 승려의 길로 들어선다. 

교학에 관심을 갖고 대장경을 공부했으며, 한문 불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불교의 대중화 작업에 주력했다. 1910년에는 불교의 유신을 주장하는 논저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했다. 그해 ‘경술국치’를 당하자 중국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의 훈련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독립정신과 민족혼을 심어주는 일에 전력했다. 1918년 불교포교와 민족정신 고취를 위한 월간 <유심(惟心)>을 간행했다. 

1919년 3·1독립운동 때 백용성 등과 불교계를 대표하여 참여했다. 그는 독립선언문의 내용을 둘러싸고 최남선과 의견이 충돌했다. 내용이 더 과감하고 혁신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행동강령인 공약 3장만을 삽입시키는 데 그쳤다. 1920년 만세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3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만해 한용운 생가 옆에 우리나라 민족시인들의 저항시를 돌에 새겨놓은 ‘민족시비공원’도 함께 꾸며 놓았다.
만해 한용운 생가 옆에 우리나라 민족시인들의 저항시를 돌에 새겨놓은 ‘민족시비공원’도 함께 꾸며 놓았다.

1926년 우리 근대시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했다. 이듬해 일제에 대항하는 조직 신간회(新幹會)를 결성하는 주도적 소임을 맡았다. 1938년 그가 직접 지도해오던 민족투쟁비밀결사단체 ‘만당사건(卍黨事件)’이 일어나 많은 동지들이 검거되고 자신도 고초를 겪었다. 해방을 한 해 앞둔 1944년 성북동의 심우장(尋牛莊)에서 중풍으로 별세했다. 미아리 화장장에서 다비된 뒤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다. 

시집 <님의 침묵>은 특이하게도 앞에 ‘군말’과 뒤에 ‘독자에게’라는 설명의 글이 붙어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더냐. 너에게도 님이 있너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군말’의 전문이다. 

당신, 또는 님은 누구인가? 기룬 것은 다 님이라 했는데 기룬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이 국어 수능시험의 단골출제 문제이다. ‘기룬’은 만해 특유의 시어로 초판에는 ‘긔룬’으로 되어있었다. 기룬은 그립다, 기릴만하다, 안쓰럽다, 기특하다 등으로 해석된다.(최동호)   

‘‘님’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다. 한용운이 승려이며, 시인이며, 독립투사인 점을 생각하면 님은 부처와 민족과 조국이라고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보편적으로 ‘절대자’라고 할 수도 있다.’ 참고서의 설명이 적절하다.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라.’ 만해가 옥중에서 집필한 글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중에 나오는 말을 새겨놓은 어록비.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라.’ 만해가 옥중에서 집필한 글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중에 나오는 말을 새겨놓은 어록비.

총독부로부터 생계비와 연구비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전향한 최남선이 탑골공원 근처에서 마주 오는 한용운을 향해 “오랜만이오. 만해”라고 먼저 인사하자 그는 “당신이 누구요?”라며 냉정하게 지나쳤다. 최남선이 “나 육당이오. 나를 몰라보겠소?”라고 하자 “뭐, 육당? 내가 아는 육당은 죽었다! 그 사람은 내가 장례 지낸 지 오래인 고인이오.”라고 일갈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 잘 조성해 놓은 한용운 생가 터가 있다. 우리나라 저항시들을 돌에 새겨놓은 ‘민족시비공원’도 함께 꾸며 놓았다. 인근에 김좌진 장군 생가와 홍주읍성 등 두루 둘러보면 좋을 곳들이 많다.       

이광이

◆ 이광이 작가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이전다음기사

다음기사코로나19 예방접종, 일상회복 위한 확실하고 위대한 실천

히단 배너 영역

추천 뉴스

2024 정부 업무보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화
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많이 본, 최신, 오늘의 영상 , 오늘의 사진

정책브리핑 게시물 운영원칙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게시물은 삭제 또는 계정이 차단 될 수 있습니다.

  • 1. 타인의 메일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 또는 해당 정보를 게재하는 경우
  • 2.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경우
  • 3.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시키는 경우
  • 4. 욕설 및 비속어의 사용 및 특정 인종, 성별, 지역 또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용어를 게시하는 경우
  • 5. 불법복제, 바이러스, 해킹 등을 조장하는 내용인 경우
  • 6.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광고 또는 특정 개인(단체)의 홍보성 글인 경우
  • 7. 타인의 저작물(기사, 사진 등 링크)을 무단으로 게시하여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글
  • 8. 범죄와 관련있거나 범죄를 유도하는 행위 및 관련 내용을 게시한 경우
  • 9. 공인이나 특정이슈와 관련된 당사자 및 당사자의 주변인, 지인 등을 가장 또는 사칭하여 글을 게시하는 경우
  • 10. 해당 기사나 게시글의 내용과 관련없는 특정 의견, 주장, 정보 등을 게시하는 경우
  • 11. 동일한 제목, 내용의 글 또는 일부분만 변경해서 글을 반복 게재하는 경우
  • 12. 기타 관계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 13. 수사기관 등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