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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시가 된 노래, 노래가 된 시] ⑧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2021.12.21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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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 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 넌 도대체 무어란 말이냐. 한 해를 떠나보내는 세모의 쓸쓸한 저녁, 이 노래의 오리지널을 귀에 꽂는다. 한 가닥 찬 바람이 훅 가슴을 가로지른다. 콧등은 왜 이리 시큰해지고 가슴은 왜 이리 먹먹해질까. 이 쓸쓸함, 이 허망함. 이 슬픔…. 그 사람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잊어야 한다.

정말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그것이 사랑이란 말이다. 분명한 한 가지는 그것이 ‘참 쓸쓸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 사랑으로 흘린 눈물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마치 해산의 죽음 같은 고통을 기억하면서도 또 다른 잉태를 준비하듯, 우리는 왜 또 새로운 사랑에 빠지는가. 이별이 예비돼 있으므로 사랑은 존재하는가. 조용필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이라 했거늘.

사랑은 짧고 슬픔은 길다. 사랑은 짧아서 강렬하고 슬픔은 길어서 쓸쓸한가. 사랑은 시나리오가 없다. 즉흥의 막무가내다.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다. 그 사랑이 끝나면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 버리’니 사랑은 정녕 신기루 같은 헛것이란 말인가.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들으며 ‘쓸쓸함’이란 단어를 생각한다. 그건 외로움과는 다른 색깔이다. 이 노래 제목이 <사랑, 그 외로움에 대하여>가 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외로움은 나에게 말하지 않는 너를 바라보는 일이고, 쓸쓸함은 나에게 말하지 않는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림태주 산문집 ‘관계의 물리학’에서)
“외로움이 타인과의 관계, 외부적 관계에서 오는 감정이라면 쓸쓸함은 나와의 관계, 내부적 관계에서 오는 단절이다.” (그의 다른 산문집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에서)
“외로움은 문득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고, 쓸쓸함은 울어도 변하는 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것.” (조진국 소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에서)

결국 쓸쓸함은 내 안의 문제요, 숙명적인 거란 말이다. 사랑이 그런 건가 보다. 이별 후에 오는 건 외로움이 아니고 쓸쓸함이다. 그래서 사랑은 종국에는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다 가진 듯했지만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그 사랑의 불가해함에 대해 김훈 작가만큼 쓸쓸하지만 또렷하게 말한 이가 있을까.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에세이집 ‘바다의 기별’에서)

이 노래의 가사를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기억하지만, 막상 누가 썼는지는 잘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작사가는 바로 양희은 자신이다. 양희은은 숨은 글쟁이다. 요즘 한겨레신문에 생활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양희은의 어떤 날’을 연재하고 있다. 23년째인 MBC 라디오 ‘여성시대’ 진행의 내공이 만만찮다. 노랫말이 빛나는 양희은의 다른 명곡 <한계령>은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가, <아침이슬>은 김민기가 썼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실린 앨범 ‘양희은 1991’. 양희은이 뉴욕에 있을 때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이병우를 불러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만들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실린 앨범 ‘양희은 1991’. 양희은이 뉴욕에 있을 때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이병우를 불러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만들었다.

양희은은 1991년 데뷔곡 <아침이슬> 20주년을 기념해 <양희은 1991>이란 명반을 낸다. 이 앨범에 실린 8곡의 뛰어난 노래 중 7번 트랙에 실린 곡이 이 노래다.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서글프기 딱 좋은 나이다. 체념을 아는 나이다. 노래는 처음에는 그리 알려지지 못했지만 1997년 SBS 16부작 드라마 <달팽이>(이정재 이미숙 이경영 전도연 출연>에 삽입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왔다.

이 음반은 뉴욕에서 만들어졌다. 1971년 데뷔 이래 한국 포크 음악의 선두에 있던 양희은은 1980년대 후반 침체기에 빠졌다. 포크는 더 이상 시대를 선도하는 음악이 아니었고 그는 더 이상 청춘의 우상이 아니었다. 건강에도 이상이 생긴 그는 한국을 떠났다.

당시 스물아홉의 빼어난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명곡을 만나지 못했다. 양희은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학 중인 이병우를 뉴욕으로 불렀다. 이 음반에 실린 8곡 중 7곡이 이병우 작곡이다. 아이유가 리메이크해 유명해진 노래 <가을아침>도 여기 실린 곡인데 이병우가 작사·작곡했다. 양희은은 이병우가 만든 노래 중 6곡에 가사를 붙였다.

한 인터뷰에서 양희은은 이렇게 회상했다.
“1987년 결혼하고 뉴욕으로 가서 살림만 했어요. 심심해서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났어요. 때마침 ‘아침이슬’ 20주년이 돼서 병우야 이리로 와, 했죠. 둘이서 노래 만들어 연습하고 딱 하루 만에 앨범 전 곡을 녹음했어요. 한국에서 유통 좀 해보려니까 ‘장사 좀 되는 음악을 해보쇼’라며 거절했어요.”

양희은과 이병우의 만남은 한국 포크 음악의 축복이었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이병우의 담백한 기타 연주 하나만에 기댄, 종전의 청아한 고음 대신 슬픔을 꾹꾹 눌러 담는 듯 담담하게  노래하는 양희은의 성숙한 음색은 포크 미니멀리즘의 진수였다. 이병우 기타 선율과 양희은의 목소리, 그 조밀하고 단호한 대화에 다른 악기나 목소리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기타 하나와 목소리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심연의 최고 깊이다. 처연하되 청승은 없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작곡한 클래식 기타리스트 이병우. 가수 이하나가 이 노래를 부를 때 반주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작곡한 클래식 기타리스트 이병우. 가수 이하나가 이 노래를 부를 때 반주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이병우(56)는 1986년 서정적 포크 듀오 ‘어떤 날’을 결성해 활동했던 탁월한 뮤지션이다. 한국 포크의 거장 조동진(2017년 사망)의 동생 조동익(61)이 베이시스트로 듀오를 이뤘다. 이병우는 20대 초반 조동진의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둘은 명반으로 꼽히는 앨범 두 장을 내고 이병우가 돌연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로 유학을 떠나며 헤어졌다. 이병우는 세계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로 성장했고 국내의 수많은 영화에 음악감독으로서 재능을 보이고 있다. 여전히 작곡가,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조동익은 평생의 음악적 동료이자 소울메이트 장필순(58)과 효리네 민박이 있는 제주도 애월읍 소길리에서 살며 음악을 만들고 농사와 목공을 한다.

이 노래는 외국 가수도 진가를 알아봤다. 2002년에 내한공연을 한 포르투갈 가수 베빈다는 우연히 이 노래를 듣고 파두(Fadu, 포르투갈의 슬픈 민요)의 느낌이 있다며 <Ja Esta>(이젠 됐어요)란 제목으로 번안해 히트곡으로 만들었다. 또 2009년에 스웨덴의 대표적 재즈 가수 잉거 마리가 <Even When>이란 제목으로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국내 가수들도 웬만큼 가창력 있다 하는 이들은 앨범에 리메이크했다. 조수미(가요앨범), 이은미, 최백호, 한영애, 웅산, 나윤선, 이수영, 김호중 등등 수도 없지만, 역시 오리지널이 가장 가슴을 울린다는 평을 받는다.

우리는 어떤 노래를 듣다가 그 가수가 마치 내 이야기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 노래가 특히 그렇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은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을 했을 테니.

유튜브에 누군가 이렇게 달았다. “이제 운명 같은 만남과 잔인한 결말을 몇 번 겪고 나니 참으로 이 노래가 인생곡이 되고 말았네요. 이 노래는 노래가 아니라 철학입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2004년 문학계간지 시인세계가 설문조사한 ‘시인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에서 <봄날은 간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북한강에서>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표를 받았다. 5, 6위도 모두 양희은의 노래다. <한계령>과 <아침이슬>이다.

“오래된 노래를 듣네/오래 전 시간이 귀를 여네/양희은의 목소리가 사방에 벽을 세우네//기억은 언제나 감옥 같아/하늘도 풀밭도 수의(囚衣)로 감기네//사랑, 그 쓸쓸함//글자를 써놓고 보니/한글 자음 ㅅ이 다섯 개나 들어있네//시옷, 이라고 발음해 보네/‘시’를 발음할 때의 스산함이/‘옷’에 가서 갇히네//시옷은 한자로 사람 人과 닮은꼴이네/사람이 갇히네//그곳은 감옥이네//쓸쓸함이란 수인번호가/문패로 걸리네//조용하게 슬프네/다시”…
(서석화 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연재물의 간판을 ‘노래, 시를 만나다’에서 ‘시가 된 노래, 노래가 된 시’로 바꾸었습니다.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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