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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그 무엇’

[클래식에 빠지다] 슈만과 로스코

2022.07.15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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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봄, 60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자신의 마지막 앙코르 곡으로 슈만(R.Schumann)의 ‘트로이메라이(Traumerei)’를 연주했다.

이 곡을 듣고 있는 나이 지긋하신 청중들 중 몇 명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장면은 모스크바 공연실황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으며 이후 호로비츠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호로비츠와 같이 러시아계 유태인 출신이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추상화가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의 그림은 추상적 화풍을 띄고 있지만 로스코 자신은 추상화가로 불리기를 거부했다.

미국의 한 내셔널 겔러리에서는 흥미로운 설문을 진행했는데 “미술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렇다”고 대답한 응답자 중 70%가 이 작가의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는데 그가 바로 마크 로스코다.

슈만의 음악과 로스코의 그림은 우리의 마음을 오묘하게 움직이는 매력이 있다. 단순한 눈요기와 귀 호강으로 끝나는 표면적 감각이 아닌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그 무엇’이 있다.

그들의 음악과 회화 작품을 감상하면서 느껴지는 서로 비슷한 공통점, 그것은 무엇일까.

독일 스트라우스 15번지에 있는 클라라와 로버트 슈만의 이전 집(오른쪽에서 두 번째). 2021년부터 슈만 컬렉션은 박물관을 갖게 된다. (사진=저작권자(c) d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독일 스트라우스 15번지에 있는 클라라와 로버트 슈만의 이전 집(오른쪽에서 두 번째). 2021년부터 슈만 컬렉션은 박물관을 갖게 된다. (사진=저작권자(c) d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이성에서 감성으로,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과학자들은 우리 인간행동의 90%는 무의식이 결정한다고 한다. 우리는 꽤 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감정과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다.

무의식의 욕구는 예술가가 작품을 표현하기 위한 중요한 동기 중 하나이다. 슈만과 로스코는 정형화된 소통방식에서 벗어나 감정의 표출을 통한 직접적인 방식으로 관객과 교류하는 예술가라고 볼 수 있다.

슈만은 고전에서 낭만으로 옮겨가는 시기에 태어나서 낭만주의 대표적인 음악가가 된 인물이다. 고전주의는 정형화된 형식과 질서, 균형, 조화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으며 인간의 지성과 이성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낭만주의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불확실성이 가득한 자연과 개인의 창의성을 기반으로 감성적이고 내면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세기초 클래식음악은 시대적 요구와 슈만 개인이 갖고 있는 성격적 특성이 맞물리며 낭만주의를 꽃피우게 된다.

화가 로스코의 시대적 상황은 슈만과는 다르지만 점점 복잡해지며 기교적으로 되가는 기존 현대미술의 소통방식에 그는 회의를 가졌다.

점, 선, 면을 통한 이성적인 접근방식이 아닌 색상을 이용해 관객과 직접적이며 무의식적인 소통을 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관객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작품과 관객 사이에 형식적인 방해물을 없애고자 시도한 점은 슈만과 로스코의 공통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성보다 감성, 의식적 사고에서 무의식으로의 접근이 그들의 소통 방식이라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도구로 사용한 예술적 언어는 무엇일까.

◆ 슈만과 로스코의 언어

슈만 음악의 언어는 그의 문학적 감성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로스코의 언어는 극도로 명료화되고 단순화된 색채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먼저 슈만의 예술적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알아야 할 듯하다.

슈만의 아버지는 서점을 운영하며 출판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종종 번역가로도 활동하며 영국의 바이런등 유명시인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해 소개하는 일을 했다.

열 살이 조금 넘은 어린 나이의 슈만도 아버지 일을 도와 출판교정을 보거나 일부 항목의 집필을 하는 등 문학적 소양을 키워나갔다.

슈만은 15살에 자서전과 10대 후반 <시와 음악의 밀접성에 대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가 가진 문학적 소양은 이런 가정환경과 아버지로부터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을 꿈꾸던 슈만은 고등학교 졸업 후 뮌헨에서 시인 하이네(Heinrich Heine)를 만나게 되는데 후에 그의 시집 중 리더크라이스(Liederkreis) ‘시인의 사랑’ 등은 슈만의 가곡으로 재탄생됐다. 

특히 시와 음악의 결합이라 볼 수 있는 가곡은 슈만이 클라라와 결혼하던 해 수많은 작품을 쏟아내며 슈만의 음악적 생애에서 ‘가곡의 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후 그의 음악에서 문학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로스코의 예술적 언어 또한 그를 둘러싼 시대적 환경과 관련이 있다. 당시 미술계를 양분하던 피카소의 입체파와 마티스의 야수파는 다양한 미술적 실험을 통해 여러 사조들을 낳았는데 마르셸 뒤샹으로 대표되는 다다이즘이나 추상주의도 그들로부터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소더비 경매장에 전시된 마크 로스코의 <No. 7>을 관람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소더비 경매장에 전시된 마크 로스코의 <No. 7>을 관람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반 이성, 반도덕, 반 예술을 표방한 예술사조인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는 그를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초창기 그의 작품을 보면 초현실주의 영향도 느껴진다.

하지만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들을 표현하며 새로운 예술세계를 모색하던 로스코에게 색상 덩어리라는 도구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그림 속 크고 모호한 경계의 색 덩어리들은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서로 관계를 만들며 거대한 드라마를 만들어 주고 있다.

그를 도와준 어시스턴트들은 그가 색상의 명료함과 단순함, 뉘앙스의 표현을 위해 0.1m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색 덩어리의 조합은 그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언어이자 ‘키(key)’라고 볼 수 있다.

슈만과 로스코의 예술은 우리에게 직접적이며 감성적이지만, 그들의 예술적 언어는 이성적이며 수 없이 많은 지적 도전 끝에 태어난 결과물인 것이다.

◆ 드라마(DRAMA)

드라마의 어원은 ‘행동하다’라는 뜻으로 인간행위의 모방을 통한 서사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극(劇)으로 정의 된다.

드라마, 즉 서사적 이야기는 슈만과 로스코 예술에서 빠질 수 없는 정수이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슈만은 비단 그의 가곡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그의 표제음악들은 청자로 하여금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그의 심포니 1번 <봄>을 포함해 초기 피아노 연곡 <카니발(Carnaval)>, <크라이슬레리아나(Kreisleriana)>, <나비(Papillon)>, <다비드 동맹 춤곡 집(Davidsbundlertanze)> 등은 모두 문학적 이야기가 있는 작품이다.

하나의 스토리를 갖고 있지 않지만 <어린이 정경(Kinderszenen)> 또한 그의 문학적 재능이 잘 나타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화가 로스코 역시 이야기꾼으로서의 작품 속 자신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드라마’라고 언급했으며 그림 안의 형태들은 ‘연기자’라고 했다.

또한 자신의 작품에 시간성을 부여해 관객들의 자발적 몰두를 유도했고, 그 안에서 나타나는 비극, 황홀, 숙명, 파멸과 같은 원초적 감정을 활용해 관객과 소통하고자 했다.

◆ 코다(Coda)

두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였던 것은 무엇일까? 그들 삶에서 정신적 분열, 혹은 우울증은 슈만의 음악과 로스코의 회화를 이해하는 통로로 볼 수 있다.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던 슈만은 유작이 된 <유령변주곡>을 작곡한 후 스스로 라인강에 투신했다. 다행히 구조된 슈만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아내 클라라와 제자 브람스의 극진한 간호를 받았지만 2년뒤 세상을 떠나고 만다.

우울증과 항우울제 중독을 앓고 있었던 로스코 역시 빨간 피로 물든듯한 유작을 남기고 자신의 작업실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무리했다. 내면의 세계를 찾아 여행하던 그들의 삶에서 예술은 극복하고자 했고 위로하고자 했던 자신이었을 것이다.

니체의 철학에 심취했던 로스코는 인간실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고자 했다. 아마도 실존과 위로는 두 예술가를 설명하는 단어가 아닌듯 싶다.

로스코는 “침묵은 그만큼 정확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침묵하며 그들의 작품을 감상할 때 한 인간의 고통과 고뇌,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들이 받았던 위로를 우리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추천음반

슈만의 피아노 작품집은 개인적으로 브렌델(Alfred Brendel), 마리 조앙 피레즈 (Maria Joao Pires), 백건우 선생님의 연주를 들어보시길 권한다.

<시인의 사랑(Dichterliebe)>등 가곡집은 피셔 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와 프리츠 분덜리히(Fritz Wunderlich)의 목소리로 들어보시길 추천 드리겠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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