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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지렛대 삼아 ‘혁신’을 추구한 예술가들

[클래식에 빠지다] 브람스와 터너(Brahms & Turner)

2022.08.17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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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에게 브람스(Johannes Brahms) 음악은 항상 많은 에너지와 강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의 음악은 고전의 탄탄한 기반 위에 짙은 낭만성을 지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존경하는 음악가가 바로 베토벤이었으며 스승은 슈만이었다. 고전의 정점에 올라와 있는 베토벤과 낭만의 선두에 서있는 슈만은 브람스 음악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바로 이런 두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작곡되었다고 볼 수 있는 그의 음악은 그가 존경하는 베토벤과는 사뭇 다른 음악적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그것은 스승 슈만의 영향이었을 수도 있고 시대적 사조였을 수도 있는데,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베토벤과 달리 브람스 작품은 오랜 기간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진득하게 말하고 있다.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베토벤 같은 강약의 대비가 확실한 느낌은 아니지만 또 다른 강렬함과 여유가 있다.

영국이 사랑하는 화가 윌리엄 터너(J.M.William Turner)의 그림도 브람스의 그런 에너지와 열정이 작품에서 느껴진다.

변화무쌍한 바다를 주제로 그린 터너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브람스 음악에서 다가오는 에너지와 낭만성 또한 느껴지는데 평생 독신이었던 그들의 작품에서 서로 공유되며 인식되는 요소는 어떤 것일까.

◆ 열정과 광기

윌리엄 터너의 <Snowstorm, Avalanche>. (출처=저작권 만료 무료 내려받기 ‘아트비 artvee’)
윌리엄 터너의 <Snowstorm, Avalanche>. (출처=저작권 만료 무료 내려받기 ‘아트비 artvee’)

예술가에게 열정과 광기는 마치 종이 한 장 차이와도 같다. 열정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필수동력과도 같지만 그 자체로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마스터 피스(Master Piece)가 나오기 위해선 단순한 열정 이상의 영감과 그 무엇이 필요한데, 혹자는 그것을 ‘광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브람스의 교향곡과 협주곡을 듣고 있으면 느린 악장, 특히 2악장에서 나타나는 그의 순수함과 아름다운 화성에 빠져들게 된다.

브람스는 친분이 깊었던 드보르작(Antonin Dvorak)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가 모차르트처럼 작곡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처럼 순수하게 작곡하도록 노력합시다”라고.

그가 음악을 대하는 순수한 태도는 각 악기들을 심포니라는 캔버스 안에서 조화롭게 만들어 주고 있다. 하지만 조용함이 지나가고 마지막 클라이맥스 악장에 이르면 휘몰아치는 듯한 그의 강한 에너지와 감성이 드러나곤 한다.

결국 이성에 의해 계획적으로 통제되지만 열정과 광기 사이의 한 끗 차이가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폭풍우 치는 바다를 그리고 싶었던 윌리엄 터너 또한 광기라 부를 만한 열정이 작품 속에 드러난다.

폭풍이 무섭게 다가오는 밤 바닷가에 간 그는 한 어부에게 날이 밝을 때까지 갑판에 자신을 묶어달라고 부탁하고 어두움 속 폭풍우를 직접 체험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된 작품이 ‘폭풍(Snow Storm)’ 인데, 바다의 거침과 무자비함, 온화함 물과 하늘의 다양한 빛깔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 속 큰 스케일은 그가 직접 경험한 시선이 아니라면 완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브람스와 터너 두 예술가는 열정 그 이상의 무엇을 작품으로 표현해주고 있는 것이다.

◆ 외골수와 완벽주의

보통 ‘한 가지에만 매달리는, 편협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을 외골수라고 하지만 예술가에게 외골수란 깊은 사색을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위한 하나의 성향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들의 외골수적인 성향은 개인적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또는 시대나 기존의 틀을 깨기 위해, 고독을 승화시키기 위해 작품에 몰두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완벽주의적인 성향으로 변형된다.

브람스와 터너에게도 외골수적인 완벽주의는 그들 작품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공통된 요소다. 어린 시절 재능이 넘쳤던 브람스는 11살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스승 슈만으로부터 베토벤을 이을 작곡가라고 기대를 받았던 브람스는 작품 완성에 대한 많은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첫 교향곡은 15년에 걸쳐 완성됐으며 공식적인 첫 현악사중주 곡이 나오기까지 약 20여곡의 현악사중주 곡들은 파기되었다. 브람스의 지독한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바이올린 소나타 역시 완성되기 전 많은 작품들이 파기되었는데 그 중에는 유명 바이올리스트인 멘델스존의 친구 페르디난트 다비드(Ferdinand David)나 레메니(Ede Remenyi)가 연주한 소나타도 포함되어있었다.

반면 터너는 작품생활을 한 60여년동안 2000여점의 회화와 1만9000점 이상의 스케치를 남겼다. 많은 수의 작품을 남겼지만 스케치가 작품보다 10배 가까이 많다는 점은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도들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반증이기도 하다.

터너는 괴테의 ‘색채론’과 19세기 발전하고 있는 광학에 큰 관심을 갖고 빛과 색채에 관한 탐구에 몰두 하였는데, 그의 연구가 심화될수록 그림은 점점 단순하며 추상화 되었다.

평론가들로부터 많은 비평과 조롱을 당했고, 심지어 그를 비꼬는 연극까지 공연되었지만 자신만의 확신을 갖고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한 터너의 완벽주의는 당대 최고 예술평론가인 존 러스킨(John Ruskin)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후 그의 작품은 많은 영국인들로부터 사랑 받았으며 현재와 같은 위치를 갖게 되었다.

◆ 전통과 혁신

전통을 따르느냐 새로운 물결에 편승해 혁신을 이루느냐는 모든 예술가들에 화두와도 같다. 전통을 따르는 순간 고리타분해지기 쉽고, 새로운 시도는 설득력을 쉽게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간혹 새로우면서 설득력을 갖는 예술가들이 있지만 보통 그들은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면에서 브람스와 터너는 현대의 예술가들이 눈여겨볼 만한 롤모델이다. 

논어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은 “옛 것을 익히고 그것에 미루어서 새로운 것을 앎”이라는 뜻인데 브람스와 터너는 이 고사성어에 아주 잘 어울리는 예술가라고 볼 수 있다.

브람스의 음악을 두고 20세기 대지휘자인 푸르트뱅글러(Wilhelm Furtwangler)는 “빈 고전파의 마지막 음악가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바그너는 “전통에 갇혀있는 인재”라고 언급했다.

그만큼 당대 그의 음악적 스타일은 소나타형식이나 대위법에 충실한 고전주의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음악 속에는 시대를 반영하는 낭만적인 요소들이 적절히 내재되어있다.

또한 낭만파의 거장 슈만의 제자답게 고전주의 형식을 지키면서도 낭만주의 정서를 결합해 자신만의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윌리엄 터너 역시 전통적인 기법을 유지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시켜 나아갔다. 초창기 그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대가들인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푸생(Nicolas Poussin), 로랭(Claude Lorrain)등의 그림들을 모사하면서 학습해나갔다.

대가들의 영향이 그의 초기 작품 속에 나타나 있는데, 특히 르네상스의 천재화가 라파엘로를 존경했다. 터너의 작품 <바티칸에서 바라본 로마>에는 라파엘로가 그려져 있는데, 그가 라파엘로 작품에서 받은 영감과 존경심이 작품에 드러나있다.

전통적인 기법을 익힌 후 그는 빛과 색채에 몰두하며 여러 실험들을 했는데, 빛은 색이고 그림자는 빛의 결핍으로 보았던 그의 생각과 철학은 자연의 변화가 민감하게 나타나는 바다를 만나며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탄생되었다.

즉, 브람스와 터너의 예술세계를 정의해 보자면 “전통을 지렛대 삼아 혁신을 추구했던 예술가”라고 말 할 수 있겠다.

◆ 레퀴엠과 테메레르(Requiem & The Fighting Temeraire)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 직원이 터너의 1839년 작품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를 전시장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FILE PHOTO/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 직원이 터너의 1839년 작품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를 전시장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FILE PHOTO/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브람스의 <레퀴엠>과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는 두 예술가의 생각과 정신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독일어로 쓰여진 브람스의 레퀴엠은 인간정신의 숭고함과 끝을 알 수 없는 깊이 그리고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터너의 작품 <전함 테메레르> 또한 트라팔가해전을 통해 영국인들의 마음속에 애국심을 고취시켰던 테메레르호의 해체를 그린 그림으로 영원한 것은 없다는 메시지와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역작이다.

브람스와 터너는 바흐나 고흐처럼 후세에 의해 더욱 높은 평가를 받은 인물이 아닌 당시에도 사회적 명예와 성공을 거둔 예술가였다. 브람스는 비엔나 악우회를 이끌며 음악계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터너는 최연소 왕립미술원의 정회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예술로 사회와 후세에 많은 유산을 남겼다. 브람스의 예술은 드보르작을 거쳐 엘가(E.Elgar)와 쇤베르크(A.Schonberg)까지 영향을 미쳤다. 또 런던에서 터너의 그림에 충격을 받은 모네 (C.Monet)는 인상파를 미술계에 꽃피우게 했다.

브람스의 <레퀴엠>과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 두 작품은 그들의 예술혼을 반영하며 후세 예술가들에게 나아갈 길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 추천음반

브람스의 음반은 현대 뛰어난 레코딩들도 많지만 올드 레코딩을 소개해드리고 싶다. 지휘자 칼 뵘(Karl Bohm)은 푸르트뱅글러가 타계하자 이제 “브람스는 누가 지휘를 하지”라고 말했다. 심포니 전곡과 레퀴엠은 푸르트뱅글러의 음반을 한번 들어보시길 바란다.

베토벤보다 뛰어나다고 평가 받는 피아노 실내악곡은 리히터(Sviatoslav Richter)와 보로딘 콰르텟을, 바이올린 콘체르토는 지오콘다 드 비토(Gioconda de Vito)의 레코딩을 권해 드린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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