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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본주의, 그리고 ‘노스탤지어’에 관한 초현실적 농담

[대중음악 A to Z, 장르를 관통하는 26개 키워드] ⓥ 베이퍼웨이브(Vaporwave)

2022.09.19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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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을 필두로 케이팝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팝 음악’으로써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다 다양한 장르로 케이팝의 확장이 필요하다. 정책브리핑은 케이팝의 발전과 음악감상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중음악의 다채로운 장르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창작자의 관점에서 ‘베이퍼웨이브’가 어떤 의도로 처음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몇몇 사람들은 이것을 ‘밈’, 혹은 일종의 유머로 받아들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70년대의 디스코와 80년대의 헤어 메탈(hair metal,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에 나타난 헤비메탈의 하위 장르-편집자 주) 등의 음악들이 후대에 우스꽝스럽게 재포장되어 미디어에 노출되거나 리바이벌되곤 했는데, 베이퍼웨이브의 경우 그 희화화 대상이 드디어 90년대로 넘어왔다는 것을 공표하는 움직임처럼 보였다.

베이퍼웨이브는 단순히 시대에 맞지 않아 그것이 우스워 보인다기 보다는 어떤 차분한 유머 같은 것이 바탕에 깔려 있는 듯 보였다.

소비주의 사회 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스쳐 지나가는 영혼 없는 기업 소개용 음악 같은 특징은 2000년대 잠시 붐이 일었던 레트로 신스팝에 비해 냉소적이고 위악적인 편이었다. 물론 실제 90년대에 만들어진 음악들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뒤틀린 유머 같은 것이 있었다.

베이퍼웨이브는 80~90년대 대량 생산되었다가 잊혀진 공산품들과 기술에 대한 향수, 소비자본주의와 여피 문화 등을 다뤄내고 있었다.

‘베이퍼웨이브’라는 명칭의 유래에는 개발이 중지되어버린 기업의 시스템, 혹은 경쟁사의 신제품을 방해하기 위해 연막작전으로 기획하는 시스템을 의미하는 ‘베이퍼웨어(Vaporware)’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중 “단단한 것은 모두 공기 중에 녹아 사라진다”는 구절을 인용했다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공기 중에 사라진 허상 정도로 요약이 가능할 것 같다.

2010년대에 시작된 베이퍼웨이브는 80~ 90년대의 퓨전 재즈나 기업용 배경 음악, 그리고 R&B와 전자음악을 조작, 변형한 형태로 완성됐다.

특히 이 음악들이 진행될 때 뒤에 깔아 놓은 이미지들의 경우 윈도우95의 아이콘 및 저해상도 인터넷 이미지라던가 야자수, 바로크식 기둥과 그리스 조각상, 체스판 타일,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일본어의 배치 등이 활용됐다.

이는 마치 어느 외딴 창고에서 먼지 쌓인 90년대 기업의 제품 시연 비디오 테이프를 찾아 재생한 듯 보일 지경이었다.

90년대에 이것들을 접했다면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로 다가왔겠지만 90년대도 이미 30년 전 이야기가 됐고 지금에 와서는 무척 낡은 ‘노스탤지어’가 되어버렸다.

몇몇 베이퍼웨이브 트랙들은 80~90년대 무렵 음악들을 샘플링해 리버브를 과하게 깔거나 톤을 변조해내면서 마치 90년대 초에 흥행했던 뉴에이지 곡들을 듣는 느낌마저 줬다.

특히 게리 로우의 80년대 이탈리아 댄스 곡 ‘I Want You’를 느리게 재생해 효과를 입힌 워시드 아웃의 ‘Feel It All Around’의 경우 2010년대에 바라보는 아날로그 시대의 노스탤지어 풍경 같은 것을 감지케 했다. 이는 과거의 기억을 더욱 감정적이고 아름답게 왜곡해 회상하는 인간의 성향과도 닮아 있다.

베이퍼웨이브는 대부분이 리믹스나 피치를 이용해 장난친 트랙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때문에 이것이 진지한 작업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칠웨이브의 기이한 변종으로 시작된 베이퍼웨이브는 후에는 여러 스타일로 변형되기도 했는데, 애니메이션 음악들을 샘플링하거나 심지어 북한의 노래들과 직설적인 프로파간다 이미지를 엮어낸 ‘주체웨이브(Juchewave)’라는 스타일로까지 전이됐다.

베이퍼웨이브의 하우스적 요소를 확장한 ‘퓨처 훵크’의 경우 대부분 80년대 일본 시티 팝 레코드에서 샘플링됐고, 이는 서구 청중들에게 일본 시티 팝을 본격적으로 노출시키는 계기가 됐다.

베이퍼웨이브 자체가 대량생산과 버블 경제 시대의 분위기를 희화화 시키는 경향이 있었고, 그 희화화된 원본 대상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그것이 다시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는 것은 신기한 풍경이다.

그 음악이 시대와 상관없이 실제로 좋아서든, 혹은 시대착오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어서든 어쨌든 사람들은 이를 즐기고 있었다.

베이퍼웨이브 출신 중 아마도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는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일 것이다. 현재는 <굿 타임>과 <언컷 젬스> 등의 영화음악부터 밴드 ‘위켄드’의 프로듀서로도 활약 중인 그의 몇몇 작품들은 여전히 베이퍼웨이브의 영향 아래 있다.

그의 근작 <Magic Oneohtrix Point Never>에서도 마치 90년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 듯한 샘플링과 전개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는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가 프로듀스했던 위켄드의 앨범 <Dawn FM>의 컨셉에서도 이어진다.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 이외에도 여러 아티스트들의 활약 또한 두드러졌다. 매킨토시 플러스의 상징적인 앨범 <Floral Shoppe>의 카세트 테이프의 경우 1000달러에 판매되기도 했다.

또한 2015년 롤링 스톤 매거진에서는 베이퍼웨이브 아티스트 2814를 “당신이 알아야할 10명의 아티스트” 중 한명으로 꼽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베이퍼웨이브는 대형 백화점이나 상업시설에 걸릴 만한 BGM 같은 스타일을 고수하는 음악이었고, 따라서 스타가 배출된다거나 깊은 평가가 이루어지는 장르는 아니었다.

베이퍼웨이브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다.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너무 멍청하다”와 “너무 지적이다”는 상반된 의견이 동시에 존재했다.

“디스토피아 적 자본주의를 모호하게 기념하는 내용” 혹은 “대량 소비사회의 이미지를 신성한 것으로 묘사하고 그것을 낡게 믹스해 도달해낸 새로운 유토피아”라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일본 음악과 언어로 장난치는 서양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터넷 밈”이라 정의 내리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베이퍼웨이브가 90년대 풍 배경음악을 재창조하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이 낡아빠진 BGM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다시금 생명력을 얻게되는 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흐름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다.

80~90년대 사회상과 소비주의 시대를 곱씹으며 진지하게 감상하기에도, 혹은 한번 듣고 그냥 웃어 넘기기에도 좋은 흥미로운 음악 그리고 이미지들이다.

한상철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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