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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의 유구한 역사 도시 그라나다를 위한 명곡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스페인/그라나다(Granada)

2022.10.25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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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프라디야 오르티스(1848-1921)는 한때 로마의 스페인 아카데미 원장과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다. 화가로서 그는 1000점 이상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그라나다의 항복>이 가장 유명하다.

이 그림은 530년 전인 1492년 1월 2일, 그라나다 성곽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그라나다 왕국의 마지막 왕 보압딜이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에게 그라나다 시(市) 열쇠를 건네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 장면 뒤 멀리 언덕 위에 세워진 성채는 알함브라이다.

알함브라는 유럽에 세워진 이슬람 건축의 백미로 손꼽힌다. 참고로 ‘h’가 묵음인 스페인식 발음으로는 ‘알람브라’이다. ‘알함브라(Alhambra)’는 원래 ‘붉은’이란 뜻의 아랍어 알-함라(Al-Hamra)에서 온 이름인데, 불그스름한 외관 건축재료 색깔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라나다의 항복>.
<그라나다의 항복>.

그렇다면 1492년 이전까지의 스페인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을까?

까마득한 옛날 이베리아 반도는 카르타고의 식민지였다가 기원전 3세기에 카르타고가 로마에 패한 후에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이 속주의 이름이 히스파니아(Hispania)이다. 그후 로마제국의 국운이 기울어져 가던 기원후 5세기에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족이 히스파니아로 몰려들어와 왕국을 세웠다.

그후 711년에는 북부 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이 침입했는데, 이들은 불과 몇 년 만에 이베리아 반도를 거의 모두 석권하다시피 했다. 북쪽으로 쫓겨난 이베리아 반도의 주민들은 그곳에서 여러 개의 작은 왕국들을 건설하고는 기독교 깃발을 내걸고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길고 긴 레콩키스타(Reconquista), 즉 ‘국토회복 전쟁’에 돌입했다.

카스티야 왕국이 주축이 된 기독교 세력은 남진하면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이슬람 세력이 장악하던 지역은 조금씩 조금씩 기독교 세력 지배하에 넘어갔다. 이리하여 이베리아 반도에 마지막으로 남은 이슬람 통치 지역은 그라나다 토후국뿐이었다. 기독교 세력이 1236년에 그라나다 토후국의 주요도시 코르도바를 정복하자 그라나다는 카스티야 왕국에 조공을 바치기로 하고 보호국으로 남게 되었다.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보루였던 알함브라.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보루였던 알함브라.

많은 세월이 흐른 1469년, 카스티야 왕국의 18세의 젊은 공주 이사벨과 17세의 아라곤 왕국의 왕자 페르난도의 결혼을 통해 두 왕국은 힘을 합치게 되고 마침내 두 왕국의 통치자가 된 이 두 왕은 그라나다를 아예 합병하기로 결정하고는 1482년에 공격을 개시했다. 페르난도 왕은 전방에서 전투를 지휘했고 이사벨 여왕은 특유의 탁월한 조직능력과 전술전략 능력을 발휘하여 남편을 도왔다.

오랜 공방전 끝에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은 마침내 1492년 1월 2일에 그라나다를 공식적으로 접수하여 기독교 깃발 아래에 마침내 국토회복 전쟁을 마무리지었다. 이리하여 ‘히스파니아(Hispania)’에서 발음이 변형된 ‘에스파냐(España)’가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 국명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의 영어명이 스페인(Spain)이다.

한편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보루였던 알함브라 성채는 그라나다 함락 이후에 한동안 스페인 왕의 거처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파괴의 운명은 피했다. 하지만 그라나다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던 이슬람 사원은 파괴되었고 그 자리에 기독교의 승리를 만방에 보여주려는 듯한 장려한 그라나다 대성당이 세워졌다. 이 대성당의 왕실 예배당에는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의 관이 안장되어 있다.

이슬람 사원 자리에 세워진 그라나다 대성당.
이슬람 사원 자리에 세워진 그라나다 대성당.

이처럼 스페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그라나다는 현재 알함브라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문화지역, 대성당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문화지역, 토속적인 알바이신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이 도시와 관련된 음악으로 빼놓을 수 없는 명곡은 단연 <알함브라의 추억>이다.

‘기타의 사라사테’라고 불리던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 1852-1909)는 그라나다에 왔다가 이 도시가 주는 신비스런 인상에 완전히 매료되어 1899년에 이 세계적인 클래식기타 명곡을 작곡했다. 이 곡은 연주시간이 5분도 되지 않는 짧은 소품으로 곡의 구조도 아주 단순하고 간결하지만 그 내면에는 알함브라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은은함과 화려함과 애수가 담겨져 있어서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또 어찌보면 그 속에는 알함브라에서 쫓겨나 멀리서 그라나다를 뒤돌아보며 탄식하던 이슬람의 마지막 왕 보압딜의 눈물과 회한의 슬픈 추억이 어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라나다와 관련하여 또 빼놓을 수 없는 명곡은 아우구스틴 라라(Agustín Lara 1900-1970)의 <그라나다>이다. 성악가라면 꼭 한번 멋지게 불러보고 싶어하는 이 노래는 그라나다를 아름다운 여인, 태양, 정열이 가득한 땅으로 찬양하고 있다.

알함브라에서 본 알바이신 지역.
알함브라에서 본 알바이신 지역.

아우구스틴 라라는 1000곡 이상을 작곡했는데 그중 32세 때 작곡한 이 곡은 국경과 시대를 넘는 최고의 히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그는 스페인 사람이 아닌 멕시코 사람으로 그때까지 스페인을 방문한 적이라고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가 이 곡이 국제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마침내 그는 1954년에 스페인에 초대받고 그가 꿈꾸었던 땅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후 많은 세월이 흐른 1997년에 <그라나다>는 그라나다의 공식 시가(市歌)로 채택되었다. 그라나다 시의회가 만장일치로 결정했던 것이다.

정태남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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