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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개척자들]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

2023.04.13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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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는 꽤나 오랜 기간 투병해온 와중 ‘끝’을 의식한 채 활동했다. 때문에 자신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만우절 다음날, 거짓말 같이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졌고, 실낱 같은 기적을 바라던 대부분의 이들은 좀처럼 무너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YMO 및 개인 활동을 통해 전자음악 분야에 있어 선구자로 알려져 있지만 단순히 세상의 흐름에 밝고 음악적 다양성의 추구 만으로 그의 선구자적 기질을 정의 내리는 것은 조금 급하다.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다양한 예술가 및 사회 활동가들을 연결하는 일종의 허브와도 같았다. 

이렇게까지 변화무쌍한 음악 활동을 전개해온 아티스트는 드물었고, 때문에 그가 남긴 방대한 음악을 다시 듣는다는 것은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풍부한 존재와 여러 번 새롭게 만나는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때문에 류이치 사카모토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추모 글을 올렸다. 

국내 아이돌 그룹 멤버부터 실험적인 전자음악가 알바 노토까지, 브라질의 노장 까에따노 벨로주부터 플라잉 로터스 같은 젊고 급진적인 프로듀서까지 다양한 이들이 류이치 사카모토를 추모했다.

루츠의 드러머 퀘스트러브의 경우 그의 YMO 및 초기 솔로 시절 음악들의 예를 들면서 비보이들과 브레익댄스 씬에 끼친 영향을 언급했다. 그야말로 그의 부고가 전세계를 눈물로 적시고 있었다.

2009년 10월 28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류이치 사카모토.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9년 10월 28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류이치 사카모토.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인간과 기계 사이 존재하는 전자 음악을 구상했던 그룹 YMO와 초기 솔로 시절 류이치 사카모토는 테크노 팝의 가능성을 꾸준히 밀어붙이면서 그 무렵 일본 밴드로서는 드물게 월드 투어를 진행하기도 했다. 

샘플러를 비롯 당시 최신 장비를 사용하여 녹음한 1984년 작 <음악도감>에서는 본격적인 디지털화를 도입하면서 창작의 미래를 가늠케 끔 했다.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이후 몇몇 작품들에서 배우로 활약하는 한편 중요한 영화음악들을 남기는데, <마지막 황제>를 통해 일본인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기까지 한다. 

영화 관련 작업에서 특히 스스로가 호칭하는 세계 시민(World Citizen)적 면면들이 두드러지곤 했다.

특히 류이치 사카모토를 상징하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메인 테마는 동양도 서양도 그 어디도 아닌 분위기를 표현한 악곡이었다. 

그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마지막 황제>의 경우 영국 제작자와 이탈리아 감독, 그리고 일본인과 미국인 음악감독이 모여 중국의 근대사를 그려낸 작품이었다. 

1992년도에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테마를 작곡/지휘하면서 세계인의 축제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곡을 발표하기도 한다. 

그의 솔로 활동은 유독 국경에 구애받지 않았다. 뉴욕에서 거주했을 당시에는 빌 라스웰, 알토 린제이 등과 작업했고, 모렐렌바움 부부와는 브라질에서 보사노바 앨범을 완성시켰다. 

국내에서도 김덕수 사물놀이패, MC 스나이퍼 등과 작업하면서 장르와 연령에 관계없이 다양한 이들을 만났다. 펑크 록 대부 이기 팝과도 이미 80년대에 함께 ‘Risky’라는 곡을 완수한 바 있다. 

드뷔시와 바흐를 기반으로 한 실내악부터 과감한 노이즈와 불협화음을 실험하는 전자음악까지 류이치 사카모토는 현대 음향 예술의 전반을 아울렀다.

뉴욕에서 거주할 당시 9/11 테러를 직접 목격한 류이치 사카모토는 사회적 발언과 정치적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지명도와 영향력을 이용해 정의를 위해 봉사하려 했다. 

탈 원전 운동부터 나무 심기 운동, 지뢰 근절 캠페인, 그리고 기후 변동 대처 활동 등 그는 죽기 직전까지 사회운동가로서의 임무에 공을 들였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 ‘Undercooled’에서 MC 스나이퍼의 가사 중 “인권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끝없이 싸우던 선구자, 선두자”는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사카모토를 지칭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초창기 활동당시 미래를 그리며 진취적인 음악을 만들어온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처럼 다음 세대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전세계적 명성을 얻고 진지한 활동을 이어 나가는 와중에도 류이치 사카모토는 일본의 TV 코미디 예능에 출연해 웃음을 줬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사자탈을 쓰고 바닥을 구른다던가, 건물 청소부를 연기한다던가 하는 열정을 보여줬는데 이런 사례는 아마도 류이치 사카모토 급 거물 중에서는 전무하지 않나 싶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그랜드호텔에서 핸드프린팅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그랜드호텔에서 핸드프린팅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음악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전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은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이 세계에 없음에도 남겨진 음악들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남아 다양한 각도에서 세대를 거쳐 새롭게 구전되고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구절은 얼핏 보기에 상투적이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딱히 이를 대체할 만한 문장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자신이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던 영화 <마지막 사랑>의 원작 소설을 각 나라별 판본으로 수집했고 자신의 앨범 <async> 수록곡 ‘fullmoon’에도 원작 작가 폴 보울스가 영화 속에서 직접 소설 구절을 낭독한 나래이션을 삽입하기도 했다. 

사망 전 직접 연재하던 칼럼의 제목 또한 그 나레이션의 일부인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보게 될까>로 정했다. 그가 그토록 아꼈던 폴 보울스의 글은 이렇다.

“…왜냐면 사람들은 스스로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인생을 마르지 않는 우물이라 생각한다. 모든 일들은 셀 수 있을 정도로만 일어나며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당신이 어렸을 적 보낸 오후를 몇개나 기억하는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 될 그런 오후 말이다. 

아마도 네 다섯개나 그 정도조차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면서 보름달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아마 스무 번 남짓 정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삶은 무한한 것처럼 느껴진다”

☞ 추천 음반

◆ 1996(1996 / Milan)

류이치 사카모토의 베스트 앨범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그의 대표 곡들이 좀 더 듣기 편하고 심플한 실내악 형태로 편곡되어 있다. 

특히 그의 주요 영화음악들 경우 오리지널 버전보다 이 앨범 버전들이 더 유명하다. 보다 깊이 있는 그의 영화음악 모음집을 원한다면 <Cinemage> 같은 앨범을 참고하실 것.

◆ BTTB(1999 / Milan)

‘Back To The Basics’를 뜻하는 제목에서 감지 가능하듯 피아노 중심으로 구성된 앨범. 

드뷔시와 에릭 사티 등에 영향받은 듯한 피아노 곡조들로 채워져 있으며, 일본반과 해외반의 트랙 구성, 앨범 커버가 각각 다르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유작 <12>를 듣기에는 너무 마음이 무겁고 그렇다고 그의 밝은 곡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나마 이런 앨범이 가장 감상하기에 적합하지 않나 싶다.

한상철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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