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영철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
6월 26일 제1차 회의를 개최한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혁신위원회의 출범은 우리 사회에 매우 큰 의미를 가지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발전, 성장, 성공 같은 단어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12월 5일 주재한 정신건강정책 비전선포대회에서 ‘정신건강정책 대전환’을 선언했다.
윤 대통령은 비전선포대회에서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해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방, 치료, 회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지원체계를 재설계해서 정신건강정책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출범한 것이 혁신위원회다. 혁신위원회는 앞으로 정부 정신건강정책의 기틀을 만드는 역할을 할 전망이다. 정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혁신위원회에서 논의가 필요한 과제는 지역 정신건강정책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서부터 재정체계를 마련하는 것, 정신건강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것까지 광범위하다. 신 위원장은 “하루아침에 바뀔 문제가 아닌 데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해결해야 가능한 일이 많다”고 짚었다.
그나마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낮아진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이상한 사람’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다는 편견이 가득하던 시절부터 정신건강 향상과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신 위원장에게서 첩첩이 쌓인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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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개인이 우울한데 왜 국가가 지원해줘야 해?’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당장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헛심을 쓰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1970년대 미국 기업 존슨앤드존슨의 예를 들어보자. 당시 이 회사의 고민은 물품을 배송하는 트럭기사들의 사고율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한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자 회사는 이유를 분석했다. 트럭기사들의 불안정한 생활환경, 그로 인한 불안·수면장애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회사는 곧바로 트럭기사들의 정신건강 문제 해결에 나섰다. 교육·상담, 치료 등을 진행한 후 사고율은 40%가 떨어졌다고 한다. 회사가 따져보니 교육과 상담, 치료에 드는 비용이 사고처리에 든 비용보다 적게 들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가 재정의 입장에서도 국민 정신건강이 나빠지면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진다. 예를 들어 도박중독자 한 명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들의 가계가 파탄 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도박 중독자가 생기고 나서 발생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 예방과 조기 개입, 치유에 드는 비용이 그보다 훨씬 적다. 사회적인 비용 감소, 그것 하나로도 정책의 필요성이 생긴다.
지금까지 숱한 정신건강 증진 정책이 나왔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춘 정책이 대부분인 데다 언제나 정신건강 문제는 후순위였기 때문이다. 사회와 문화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중독 문제만 하더라도 예방교육 한 번 했다고 내년에 중독자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다. 정부가 정신건강정책 대전환을 선언하고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몇 년 동안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격있는 사회로 바꾸고 국민들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지금 움직여야 할 시기임은 분명하다.
이번 혁신위원회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혁신위원회는 정신건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의 틀을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안목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일이라 구체적인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혁신위원회는 세 개의 전문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면서 문제를 풀어갈 계획이다.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 활발하게 운영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이 답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만나면 농담처럼 던지는 질문이 있다. ‘기업에 고문 변호사는 있는데 고문 정신과 의사, 고문 심리상담사는 왜 없느냐.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30년 직장인의 생산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질병이 우울증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직장에도 이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해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실제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EAP를 도입해 보니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 생산성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마음의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중증·만성질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예방하고 조기에 치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체건강처럼 말이다. 그 기능을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 할 것이다.
정신질환을 질병이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중독 문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중독은 크게 물질중독과 행위중독으로 나뉘는데 사람들은 알코올, 마약 같은 물질중독은 쉽게 중독 문제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도박중독 같은 행위중독은 치료가 필요한 중독으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투자를 도박처럼 한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데도 조절력을 잃은 것은 질병으로서 중독으로 볼 수 있다. 행위중독도 물질중독처럼 뇌와 관련된 질병,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독 문제는 뇌가 느끼는 자극과 관련이 있다고 들었다.
맞다. 우리 뇌는 자극을 계속 받으면 반응을 줄이게 된다. 재미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자극의 강도를 높이거나 횟수를 늘려야지 도파민 증가로 인한 쾌감을 느낄 수가 있다. 점차 도파민이 떨어지는 걸 견디지 못하게 되고 끊임없이 자극을 추구하는 행위를 한다. 그것이 중독이다.
중독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왜 그런가?
특히 마약·도박중독이 심각해지고 있는데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중독자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박중독에 걸린 고등학생이 진료실로 찾아오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중독자가 크게 늘어나는 이유를 사회적 문제에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변화가 매우 빠르다. 즉각적인 보상이 이뤄지는 사회다. 만약 지연보상, 예를 들어서 술을 마셨는데 3개월 뒤에 취기가 올라온다고 하자. 그러면 술을 마실까? 우리는 행위-보상으로 이어지는 빠른 호흡에 익숙하다. 중독 메커니즘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극을 찾아 헤맨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중독을 해결하려면 다른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보통 술, 마약을 끊는다고 하면 딱 끊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걸 상상하는데 그러면 술이나 마약을 다시 찾게 된다. 보상이 없어 뇌가 견디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운동이나 취미 활동 같은 다른 보상이 필요하다. 이걸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다. 재활 제도가 잘 마련돼 있다면 중독 문제를 그나마 손쉽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자살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자살은 조금 특이한 양상을 띤다. 보통은 자살의 원인을 우울증으로 본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일시적인 적응 장애로 인한 자살이 상당히 많다.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만약 서구 사회에서 부인이 지속적으로 남편에게 폭력을 당했다고 하면 부인이 이혼을 택하거나 직접 무기를 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탓을 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이 이혼을 하려고 해도 경제적인 문제, 사회의 편견, 가족과의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결국은 문화를 바꿔야 한다. 자살은 선택지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선택지에서 자살을 없애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인가?
그렇다. 10년, 20년 후 인식과 문화를 바꾼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그 일을 하려고 한다. 이게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우리 삶을 바꿀 변화를 이끌어낼 일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
김효정 기자
박스기사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는?
2023년 12월 정신건강정책 비전선포대회 이후 정신건강정책의 기틀을 완성하기 위해 구성된 대통령 직속 위원회다. 혁신위원회 산하에 기획전문위원회, 의료·재활전문위원회, 캠페인전문위원회 등 세 개의 전문위원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과제를 발굴하고 논의한다.
기획전문위원회는 정신건강정책 방향을 설정, 구체화하고 예산의 투자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중앙과 지방의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만든다.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처럼 국민의 정신건강을 증진하는 사업도 확대·추진한다.
의료·재활전문위원회는 정신질환의 입·퇴원 제도를 개선하고 응급대응체계를 보완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신영철 혁신위원회 위원장은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면서 입원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절충안을 찾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신응급 대응체계를 보완하는 논의도 이뤄지고 정신질환자가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제도와 정책대안을 수립하게 된다.
캠페인전문위원회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일에 중점을 맞춰 활동할 방침이다. 신 위원장은 “정신질환과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며 “그래서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 편견을 깨고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편견이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있고 치료에 대한 불이익이 있을 거라 우려한다”며 “그런 인식을 개선하는 것부터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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