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달력을 보니 의병의 날(6월 1일), 현충일(6월 6일), 6.25한국전쟁 기념일(6월 25일) 등 호국보훈 관련 기념일이 많다. 코로나19로 각종 기념일은 취소 내지 축소돼 진행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호국보훈의 의미마저 퇴색되면 안 된다. 현충일을 앞두고 내가 사는 곳에 6.25한국전쟁 전사자 발굴 현장이 있어 다녀왔다.
6월 6일 현충일이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등 각지의 현충 시설이 생각난다.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군인들이 잠든 곳은 현충원뿐만이 아니다. 강원도 양구 화살머리고지에서는 6.25 전사자 유해가 잇따라 발굴되고 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은 한국 전역이었다. 전쟁의 상처는 곳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전사자들이 많다.
성남시 분당구 불곡산(해발 335m)에 6.25한국전쟁 안내판이 있다. |
성남시 분당구 불곡산(해발 335m)에서 6.25 전사자 유해가 발굴되었다. 불곡산은 1951년 1월 25일부터 2월 10일까지 미 1·9군단과 국군 1·6사단, 터키 여단이 수리산~불곡산(성남시)~앵자봉~여주를 연하여 한강 이남 지역에서 실시된 ‘썬더볼트 작전(Operation Thunderbolt)’을 펼쳤던 장소다. 군사작전 이름이라 좀 어려울 수 있지만, 한마디로 치열한 전장이었다.
1950년 8월 22일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유엔군이 북진하며 통일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1951년 1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서울을 다시 내주는 ‘1.4 후퇴’의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이때 중국군 및 북한 인민군 대공세에 맞서 매튜 리지웨이(Matthew Bunker Ridgway) 장군이 실행했던 반격 작전이 썬더볼트 작전이다.
성남시 분당 신도시에 있는 불곡산 중턱에 국군 유해발굴 장소가 있다. |
신도시 분당의 불곡산과 한국전쟁! 조금은 생소하게 보인다. 불곡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한국전쟁 때 격전지였다는 것을 알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만큼 많은 전사자가 있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잊혀졌던 전사자가 발굴된 것은 2013년이다. 이곳에 오래 살았던 주민 제보에 의해서다. 육군(제55보병사단)은 2013년 6월부터 2014년 7월까지 1년 넘게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진행했다.
국군 전사자 유해 4구, 수통 및 탄약 등 유품 45점을 발굴했다. 발굴된 유해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그리고 성남시와 55사단은 호국보훈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유해가 발굴된 지역에 ‘평화의 쉼터’를 마련했다. 성남시 구미동 산림욕장에서 출발해 불곡산과 대지산을 오르는 등산로에 유해발굴 현장이 있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 장소에서 나온 호국용사의 유품이다. |
등산로 옆으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지역 안내판이 있다. 유해발굴 기념지역(제7호), 유해발굴 절차, 호국용사의 유품 등이 사진으로 전시돼 있다. 등산하던 사람들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발굴 지역을 구경하기도 한다.
호국용사의 유품을 보니 6.25한국전쟁 때 사용한 칼빈 소총, 대검, 탄창, 철모, 인식표, 안경, 라이터 등이 있다. 시계도 있는데 한국전쟁 이후 멈춰 있다. 그 시간만큼 전사자는 땅속에서 오래 기다렸을 것이다. 장렬히 전사했지만,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길 말이다. 발굴된 유해는 신원 확인을 거쳐 현충원으로 가서 편히 잠들었다.
6월 6일 현충일에 유해발굴지 전사자 합동 위령제가 열린다. |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전사자 유해발굴 장소인 평화의 쉼터에는 소총과 철모가 놓여 있다. 전쟁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앞에 꽃이 놓여 있다. 등산객 누군가가 커피 한 잔을 놓고 갔다. 쉼터에는 6월 6일 열리는 합동 위령제 현수막이 붙어 있다. 코로나19로 대규모 기념식은 열리지 못하지만, 지역단체에서 주관한다.
이곳에서 전사한 군인은 누구일까? 갈 때마다 궁금하다. 발굴된 유품 중 눈에 띄는 것은 ‘US’ 표시가 있는 숟가락이다. 이 숟가락으로 볼 때 미군도 이 지역에서 전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한국 전역에서 희생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1일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워싱턴 D.C.)에서 열린 ‘미(美)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에 참석해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에게 추모와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출처=청와대) |
지난 5월 미국을 공식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미(美)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에 참석했다. 미국 워싱턴 D.C.에 세워진 ‘베트남전 참전비’에는 베트남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같은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참전비’엔 전사자 명단이 없어 아쉬움이 제기돼 왔다. 이런 상황 속에 한국전쟁 참전 전사자의 이름을 새겨 이들을 기리고자 하는 ‘추모의 벽’ 건립은 반가운 소식이다.
추모의 벽에는 4만3769명의 이름이 새겨진다. 미 제8군 사령관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켰던 월턴 워커(Walton H. Walker) 장군의 이름도 새겨진다고 한다. 34년 장교로 군 생활을 했던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장군이다. 워커 장군은 ‘지키지 못하면 죽음 뿐(Stand or die)’이란 말로 부하들을 독려하며 당시 극도로 불리했던 낙동강 전선을 사수했다. 워커 장군의 희생이 없었다면 전쟁은 어떻게 전개됐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후배 장교로서 전쟁에서 스러져간 무명 선배 용사에게 기도했다. |
‘선배 용사의 고귀한 희생 덕분으로
지금의 우리가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죽음으로 지켜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희생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해마다 현충일을 앞두고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가서 먼저 간 동기생들의 명복을 빌었다. 올해는 무명용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나는 후배 장교로서 전쟁에서 스러져간 무명 선배 용사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그리고 무명용사에게 묵념한 후 기도했다. 나뿐만 아니라 산을 오르다 전사자 발굴 지역 안내판을 보고 많은 사람이 발걸음을 멈춘다. 그들도 나처럼 감사의 마음을 전했을 것이다.
국방부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2021년 전반기 6.25 전사자 유가족 유전자 시료 집중 채취 기간’으로 운영한다. |
6.25 전사자 유해발굴이 시작된 것은 2000년 4월이다.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 유해는 총 164구이며, 이중 올해 일곱 구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전사한 지 70여 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직도 격전지에 발굴하지 못한 한국전쟁 영웅들의 유해가 많을 것이다.
국방부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2021년 전반기 6.25 전사자 유가족 유전자 시료 집중 채취 기간’으로 운영한다. 6.25 전사자 중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유가족은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할 수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1577-5625) 방문 채취 및 요청시 자택 방문 채취도 가능하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이 시작된 것은 2000년 4월이다.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 유해는 총 164구이며, 이중 올해 7구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
올해는 현충일 66주년이다. 현충일은 법정기념일로 조기를 게양하는 날이다. 집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도 호국영령의 희생에 보답하는 작은 마음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힘들지만,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무명용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6.25 전사자 유해 소재 제보 및 유가족 시료 채취 참여 문의 ☎ 1577-5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