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별수없나 봐. 애한테 실수했다니까.”
얼마 전, 나름 시대를 앞서간다는 친구가 민망한 듯 말했다. 말인즉슨, 별일도 아닌데 (순전 친구 생각) 아들이 훌쩍대는 걸 보며, “뭐 그만한 일로 울어? 남자애가”라고 했단다.
한마디 들은 똑 부러진 친구 아들. 그 와중에도 “엄마, 남자는 울지 말라는 법 있어요?”라며 일침을 놓더란다.
“내가 다 할 말 없어지더라니까. 난 성차별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성친화도시는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남녀가 모두 평등하게 살아갈 사회다. |
몇 년 전, ‘여성친화도시’를 들었을 때도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성친화도시’의 ‘여성’은 상징적 의미로, 여성,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아우른다. ‘여성친화도시’는 이들을 배려하고, 지역 정책과 발전 과정에서 남녀가 동등하게 참여해 좀 더 안전하고 행복한 생활을 구현하는 도시다. 그렇기에 성별에 따른 차별, 비하, 폭력을 막고 권리와 의무, 자격을 누릴 수 있는 양성평등과 여성친화도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후 여러 ‘여성친화도시’를 다녀봤다. 또 올해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여성친화도시 구민참여단을 구성해 참여하게 됐다. 생각보다 여성친화도시 구민참여단은 할 일이 많았다. 목표를 세워 역량 강화 교육을 받은 후, 분야별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경찰관과 함께 여성안심귀갓길을 보고, 지역 내 각 기관 협조를 받아 다양한 시설을 둘러봤다. 공원, 복지관, 여성과 아동시설, 도서관, 육교 등을 보며 안전 사항과 성별 불균형 요소들을 점검했다.
여성안심귀갓길(왼쪽), 반사경(오른쪽).(사진=구민참여단 분과장 제공) |
“이 번호가 그런 거였어요? 여성안심귀갓길은 그냥 CCTV만 있는 줄 알았는데.”
참여단 중 한 위원이 신기하다며 말했다. 여성안심귀갓길에 설치된 도움벨을 누르면 경찰서로 연결돼 전봇대에 적힌 위치 번호를 말해야 하는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나도 기존에 가봤던 곳이 많은 편이지만, 양성평등의 관점으로 보니 또 새롭게 보였다.
늘 위험하다 생각했는데 눈에 띄는 배너가 걸려 안심이 됐다. |
해결 또한 함께 논의하니 빨랐다. 내가 확인차 갔던 육아종합지원센터는 최근에 만들어져 특별히 보완할 점이 없었다. 단 주차장 출입구가 도로 가운데 있어 좀 위험해 보였다. 회의에서 이 점을 건의했고, 모두 머리를 맞댔다. 얼마 후, 다시 가 보니 눈에 띄는 배너가 4개나 걸려 있어 적잖이 안심됐다.
누군가는 검게 부식된 담장을 건의했었는데, 얼마 후, 숙대생들 협조로 깔끔하게 단장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양한 주민이 관심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단 주민자치 등과 좀 다르다면, 좀 더 성별 불균형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닐까. 여하튼 지역이 더 생활하기 편하게 바뀌어가는 모습이 좋았다.
사실 여성안심귀갓길이었던 곳은 예전에 꽤 후미진 곳이었다. 이제 누가 다녀도 안심할 수 있는 길이 됐다. 아직은 더 커야 할 아들이나 딸 모두 그 길을 지나는 나는 더욱 체감한다. 생활 속 여러 불편이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달라지는 걸 보며 뿌듯했다.
낡은 담장을 점검하는 여성친화도시 구민참여단(왼쪽), 깔끔하게 칠해 깨끗해졌다(오른쪽).(사진=구민참여단 분과장 제공) |
9월 1일 ‘여권통문의 날’과 9월 첫째 주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여성가족부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존중받고 지속 가능한 포용 사회를 실천하며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내가 사는 지역도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9월 1일부터 구청에서 양성평등에 관련한 전시 및 홍보와 세미나를 열 예정이다. 여기에 여성친화도시 구민참여단도 함께 참여한다. 조금 더 나은 생활 속 행복을 위해.
점검 확인을 위해 들른 육아종합지원센터. 꼼꼼하게 구석구석 살폈다. |
많은 이가 바라듯 나도 그렇다. 우리네 딸과 아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남성이나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무언가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등을 외치기 전에 차별이 무엇인지 알고, 남녀를 구분하기 전에 인간에 대한 존중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양성평등주간을 맞았다. 올해는 여성친화도시 구민참여단으로 활동했기에 예전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언젠가 ‘여성친화도시’라는 말이 굳이 필요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아갈 날을 꿈꿔본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윤경 otter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