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인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현충일이 끼어있다는 점. 현충일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과 국가를 위해 희생한 모든 영웅을 기리는 날이다. 둘째는 6.25전쟁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이 6월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다양한 행사와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에게 호국보훈의 달의 의미를 되새기고 영웅들을 추모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호국과 보훈의 의미를 누구보다 깊게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느끼는 호국보훈의 달은 어떨까. 연평도 포격 도발이 있었던 연평부대에서 전역한 해병대원 윤예준 군과 독립유공자 후손인 강태영 군을 만났다.
국립서울현충원 장병묘지에 걸린 태극기와 꽃. |
해병의 굳은 결의로 지킨 연평도
해병 1265기로 입대한 윤예준 군은 연평도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지난 6월 20일 전역했다. 윤 군이 해병대 신병교육대를 수료하고 간 연평부대는 북한에서 가장 가까운 부대 중 하나고, 실제 포격이 이뤄졌던 곳이기도 하다.
연평도 포격도발이 있었던 2010년 11월 23일. 그 때 윤 군은 11살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는 줄 알았다”라며 또렷이 기억난다는 윤 군은 “2021년 3월 16일 처음으로 최전방 연평도에 입도하면서,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영광스러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연평도 포격도발 현장 모습. 현재는 안보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
“언제 연평도 포격도발과 같은 상황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에 더 열심히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고, 연평도를 지켰던 고(故)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을 항상 생각하면서 군 복무를 마쳤다. 연평도를 지켰다는 점이 참으로 자랑스러웠다”고 전했다.
고(故) 서정우 하사, 고(故) 문광욱 일병를 기리는 위령탑. |
독립유공자 명패를 보며 늘 떠올립니다. ‘자랑스러운 할아버지’
강태영 군의 할아버지 고(故) 강영준 옹은 1944년 1월 25일 이른바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독립운동 행적이 인정된다며, 늦게나마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독립운동가 강영준 옹의 손자, 강태영 군. |
강영준 옹은 손자인 강태영 군이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강 군은 할아버지를 보지는 못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처음에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까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을 알고 놀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1943년 당시면 할아버지가 19살, 우리 나이로 치면 고등학교 3학년인데, 만약 내가 당시로 돌아간다면, 차마 엄두를 못 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2017년부터 독립유공자의 집 명패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
2017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던 때를 회상하며, “‘독립유공자의 집’이라는 명패가 달렸을 때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살아간다는 점이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또 할아버지에게 고맙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가 남긴 명예에 누를 끼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언행을 더 조심한다는 강 군은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명패’로 늘 함께하는 할아버지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이 안장된 국립서울현충원. 호국보훈의 달에 만난 진정한 호국보훈의 의미는 ‘용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
윤예준 군과 강태영 군 모두 호국과 보훈에 대해 말하면서, 나라가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는 법인데 후대의 사람들이 그들의 희생을 알아주는 것이 진정한 가치라고 밝혔다. 어쩌면 암울했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누군가는 희생해야 했던 시기.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그 시대를 당당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용기’를 알아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