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은 여전하지만 새순이 돋아나는 걸 보니 봄이 가까이 왔다. 가끔은 봄기운 품은 보드라운 바람이 뺨을 스치기도 한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조금은 애매한 시기, 가뿐하게 떠날 수 있는 서울 근교 섬 여행을 준비했다. 강화도가 품은 석모도와 교동도가 주인공이다. 인천이 품은 강화도는 서울 근교의 고마운 섬이다. 반도와 섬을 잇는 초지대교와 강화대교 덕분에 ‘섬’이 주는 별다른 감응이 없긴 하지만 그만큼 부담없이 닿을 수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품은 역사는 어찌나 많은지. 고인돌부터 마니산 참성단과 고려궁지, 그리고 해안을 따라 자리한 진·보·돈대들을 따라가다 보면 하루가 부족하다. 강화도 해안을 따라 자리한 진과 보는 군사상 중요한 해안 변방에 설치해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던 군사주둔 공간을 뜻한다.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설치한 초소를 말한다.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해 포를 설치해둔다. 강화도 해안 전역에 자리한 군사시설은 한강 줄기와 닿은 ‘강화도’의 숙명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주 잠시 살펴보았을 뿐인데 강화도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오늘은 문화·역사 공부가 주인공이 아니다. 강화 본섬 역시 드라이브 코스로도 빠지지 않지만 하나하나 살펴보자면 욕심이 나기에 강화도가 품은 석모도와 교동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 인기만점, 석모도 |
강화도가 품은 섬 석모도. 아직 배로만 들어설 수 있다. 2017년 8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인 삼산연육교가 놓이면 더 편하게 석모도 입도가 가능하겠지만 ‘배’를 타고 떠나는 섬여행의 맛은 약해지지 않을까 싶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석모도 석포나루까지는 1.5km, 금방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눈 깜짝할 사이, 10분 정도면 도착한다. 평일에는 정시와 30분, 주말에는 수시로 강화 외포리 선착장에서 출발한다. 오는 4월5일까지 운항 예정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일출, 일몰 시간에 비례해 운항 시간은 변경된다. 왕복 배삯은 대인 2000원, 소인 1000원. 차량은 왕복 1만6000원, 경차는 1만4000원이다. 먼저 낙가산 보문사에서 마애석불을 보고 하리선착장에 들렀다 민머루 해변으로 가기로 했다. 오는 3월15일까지 석모리 선착장과 석포나루 구간은 도로공사가 진행되는 바람에 약간 동선이 꼬였지만 큰 무리는 없었다. |
하나의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
석모도를 달리다 보면 무슨 섬에 이렇게 너른 들녘에 있을까 신기해진다. 석모도의 평야는 간척의 결과다. 송가도·매음도·어유정도·석모도 각각의 섬들이 간척을 통해 지금의 석모도가 되었다. 석모도 낙가산 서쪽 중턱에 있는 보문사(普門寺)는 양양의 낙산사, 남해의 보리암과 더불어 한국 3대 관음성지로 꼽힌다. ‘보문’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사바세계로 나온 관세음보살의 광대무변한 원력을 뜻한다. 보문사에 들어서면 초입에 수천개에 달하는 불상들이 층층 계단에 올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각기 다른 불상들 표정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불상들이 모여 있을까? 635년(선덕여왕 4년) 한 어부가 바다에서 건진 22개의 불상을 낙가산에 모시면서 보문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일까. 그로부터 1000년도 더 지난 1812년, 중창을 거쳐 보문사는 가람의 기틀이 잡아갔다. 700년 넘는 수령을 자랑하는 향나무 지척의 석실에는 어부가 바다에서 건졌다는 나한상들이 모셔져 있다. 이 땅에서는 드문 석굴사원으로 ‘나한전’이라고도 한다. |
극락전 뒤로 마애불이 보인다. 400여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처마처럼 드리워진 눈썹바위 아래 마애불과 만난다. 눈썹바위 밑으로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쓴 관음보살은 1928년, 일제강점기에 조성됐다. 중생들의 간절한 소원 하나쯤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영험한 부처로 소문났다. 공양시간을 맞췄다면 보문사에서 식사를 해도 좋다. 구정이 지나고 찾은 보문사의 점심 공양으로는 떡국이 나왔다. 보문사는 관람료가 있다. 어른 2000원, 주차는 2000원. 보문사 주변으로 생선회와 간장게장, 매운탕과 산채비빔밥 등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자리한다. 그래도 무엇보다 인기있는 건 식당 앞에서 바로 튀겨내는 새우튀김이다. 이곳에서 나는 젓새우(작은 새우)를 여럿 뭉쳐내 튀겨내는데 대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
새우튀김을 맛보며 하리갯벌로 향한다. <시월애>라는 영화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더했지만 지금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석모도 하리선착장에서 미법도와 서검도로 향하는 배가 다닌다. 매표소에서 군인들이 오가는 이들을 체크한다. 바로 황해도, 북한땅과 가깝기 때문이다. 석모도 북쪽에 자리한 교동도는 가장 가까운 북한땅이 불과 2.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
석포나루로 향하기 전 석모도 최고의 휴양지로 꼽히는 민머루 해변으로 향했다. 아담한 해안은 반쯤 물이 빠져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엄마 아빠 손 잡고 나들이 온 초등학생 둘이 뭔가를 잡기 위해 물 빠진 갯벌을 신나게 돌아다닌다. 수도권과 가까운 섬이라 휴양지로 찾는 이들이 많단다. 석모도 일주는 자가용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날이 풀리면 자전거로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실향민들이 모여 살던 섬, 그리운 고향땅이 코앞에! 교동도 |
외포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창후리선착장을 지나 교동대교가 나온다.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는 지난 2014년 7월에 개통됐다. 그 전까지는 강화 창후리 선착장에서 교동도 월선포선착장을 통해서만 교동도에 입도할 수 있었다. 교동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문이 필수다. 민간인통제구역이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 바깥 남방한계선을 경계로 남쪽 5~20km의 구역을 이른다. 그만큼 북한과 가깝다는 뜻이다. 교동대교를 건너기 전 목적지가 어디인지(인화리, 교동도)를 밝히고 언제 나올 것인지 알려야 한다.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 내면 초록색 통행증을 준다. 당일에 나온다고 하니 “6시30분까지는 나와야 한다”고 덧붙인다. 두 번의 검문을 거쳐 교동도에 들어선다. 다리가 놓여 차량으로 들어설 수 있는 섬이건만 배를 타고 들어섰던 석모도보다 다가가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교동도는 예로부터 왕족들의 유배지로 종종 선택되곤 했다. 유배는 보내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야했기에 수도와 가까우면서도 차단된 섬은 그 목적에 적합했으리라. 교동도는 고려의 희종, 조선의 연산군과 광해군 등 왕족들의 유배지였다. 지금도 섬 곳곳에 유배지로 추정되는 증거들이 남아있다. |
일단 대룡시장에 들렀다 교동향교와 화개사, 그리고 교동읍성을 둘러보기로 했다. 대룡시장은 6?25전쟁 당시 황해도에서 피난 온 이들이 모여 살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어 사진가들에게는 제법 알려진 공간. 주말이면 외지인들로 작은 골목 주변이 차량으로 넘쳐난단다. 하지만 아직은 추운 겨울날 평일 찾은 대룡시장은 가장 번화한 읍내에서도 적막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골목을 돌아다니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이발소와 약방, 미용실이 정겹게 자리한다. 외지인들의 발길을 증명이라도 하듯 음식점들과 다방도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 |
조용한 골목을 걷고 있자니 쓸쓸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잠시 다방에서 몸을 녹이고 가기로 했다. <교동다방>에 들어섰다. 주인은 외근중이었다. 그래도 활짝 열린 문을 열고 들어서자 붉은 난로가 반겨준다. 주인장은 20여 분이 지나 돌아왔다. 옛날 쌍화차를 한잔 시키며 이것저것 물었다. 으레 이곳 사람인줄 알았건만 11년 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했다. 이곳에 사는 언니를 따라 경상도 고향을 떠나왔다고. 처녀시절부터 교동도를 드나들었고 아예 터를 잡고 살아온 것도 10년이 지났으니 교동도 주민이라고 할만하다. “교동쌀 들어봤지요? 여기가 아주 부자동네였어요. 지금도 교동쌀은 알아준다고요. 몽골 침략으로 강화도 천도를 하면서 인구가 늘었어요. 그때 자급자족하려고 간척을 시작한거지. 들어올 때 봤지요? 섬인데도 논밭이 드넓지 않던가요? 그게 다 간척으로 만들어진 땅이에요. 거기서 농사를 지어온 것이죠. 섬이니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 풍부하겠다, 거기에 쌀까지 풍족하니 남부럽지 않은 동네였죠.” |
‘그때 그 시절’만을 추억하기에는 아쉽다. 교동도가 품은 이야기를 구석구석 들어보자면 1박2일로도 부족할 것 같다. 아쉬운 마음은 이땅 최초의 향교로 알려지는 교동향교와 아담한 화개사에 오르는 것으로 살짝 달래본다. 철조망 뒤로 보이는 이북땅에서도 이 섬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까. |
여행정보
2.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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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이소원 취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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