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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전쟁 기원설’에 대한 고찰 : 달리기

2024.04.03 윤동일 육군사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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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스포츠가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바쁜 일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체육관과 경기장을 찾아 스포츠를 통해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미래를 준비해 가는 건 삶의 또 다른 행복이자 원동력이 된다. 대개는 ‘스포츠’ 하면 건강, 힐링, 즐거움 등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 무엇을 상상하더라도 ‘전쟁’과 연결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스포츠의 유래를 설명할 때, ‘놀이’나 ‘사냥’과 함께 ‘전쟁 기원설’도 함께 거론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전쟁의 관점에서 본 고대 올림픽을 통해 스포츠의 기원과 의미를 살피고자 한다. 짐작건대, 명칭도 유사한 고대의 스포츠가 현대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면, 적잖이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스포츠 영역에 남겨진 전쟁의 다양한 흔적을 발견하는 순간, 혼란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달리기는 트랙(경주로)에서 정해진 거리를 달려 먼저 들어오는 순서대로 승부를 결정하는 경기다. 고대 올림픽의 달리기 역시 정해진 경기장의 일정 거리를 달렸다는 점에서 현대 종목과 다를 게 없다. 다만, 고대 올림픽이 신에게 봉헌한 제의(祭儀)의 일부였기 때문에 가장 먼저 도착한 승자가 신에게 바치는 공물(供物)에 불을 붙이는 종교적 의미가 강한 종목이기도 하다.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달리기는 모든 스포츠는 물론이고, 모든 유형의 전투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 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적과의 접촉을 위해, 적의 공격을 피하고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고 적을 추격하는 모든 상황에서 긴요하다. 전장에서 전사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적보다 빨리 달려야 한다.

◆ 달리기의 기본 3종목

고대 올림픽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거리에 따라 스타디온(Stadion), 디아울로스(Diaulos), 돌리코스(Dolikos)라는 세 종목이 있었다. 가장 짧은 거리를 달리는 ‘스타디온(오늘날 경기장을 뜻하는 스타디움은 여기서 유래됨)’은 191.27m의 트랙을 1바퀴 달리는 경기로, 현대의 200m 달리기에 해당한다. ‘디아울로스’는 경기장을 두 바퀴 달리는 경기로 382.54m를 달려, 현대의 400m 달리기와 유사하다. 가장 먼 거리를 달리는 ‘돌리코스’는 초기엔 경기장을 7바퀴 달렸으나, 후기로 갈수록 점점 늘어나 최대 24바퀴를 달리는 종목이 되었다. 짧게는 1,300m에서 최대 4,600m를 달렸으니, 현대의 5,000m 달리기로 보면 무난하다. 먼 거리를 달린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당시 국가의 긴요한 연락을 담당한 ‘전령(부대 간의 명령 전달을 담당하는 직책)’의 장거리 이동 능력을 개선하기 위한 종목으로 공동체나 동맹국의 수가 많아지면서 달리는 거리도 늘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현대 육상종목의 분류체계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기원전부터 이미 ‘단·중·장거리’ 개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23 서울달리기대회 참가자들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서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2023.10.8.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3 서울달리기대회 참가자들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서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2023.10.8.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달리는 방법은 현대 종목과 다르지 않아, 경기 모습만으로도 분명하게 구분된다. 비교적 거리가 짧은 ‘스타디온’이나 ‘디아울로스’는 팔의 각도나 다리의 위치가 높이 올라가 있고, 상체를 앞으로 많이 숙여 전력으로 질주하는 주법을 택하고 있다. 반면, 장거리를 달려야 하는 ‘돌리코스’는 위의 방법으로 달릴 수 없기 때문에 팔이나 허벅지의 위치도 낮고 완만하며, 상체 역시 상대적으로 세운 채 최대한 체력을 안배하며 달리는 주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다음 <그림 1>은 고대 달리기 주법이 현대의 그것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단박에 알 수 있게 해준다.

다만, 경기복은 선수들이 온전히 경기에 전념하기 어려운 장애 요인이 분명하다. 고대 올림픽은 나체*로 진행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성인 남자가 발가벗은 채 달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노출된 성기가 상당한 걸림돌이 됐을 게 짐작이 된다. 짧은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리거나, 느린 속도로 장거리를 달리는 경우 모두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 고안한 특단의 조치가 바로 ‘키노데스메(Kynodesme)’로 불리는 가죽끈이다. 선수들은 경기에 출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성기를 이 끈으로 묶어 허리에 고정함으로써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이 조치는 달리기 선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 무장 달리기

앞서 소개한 세 종목은 전사의 전장이동 능력 향상을 위한 종목은 맞지만, 실전의 요구에는 미치지 못한다. 투구, 흉갑, 방패 등 방호장구와 칼이나 창 등 무기를 휴대하고, 지형이나 기상이 주는 마찰까지 극복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단순한 비무장 달리기만으로 전장이동 능력을 완성하기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활과 같은 원거리 무기에 의한 공격을 회피하거나 적진을 향해 돌격하고, 패주한 적을 추격하는 등의 전투 상황에 따라서는 무장을 착용한 채, 최고의 속도로 달려야만 했다. 이런 전장의 요구에 따라 탄생한 종목이 바로 ‘호플리토드로모스(Hoplitodromos)’다. 이 종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무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 중장보병은 우선 방호 장구로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Kranos)를 쓰고, 구리나 여러 겹의 천을 덧댄 흉갑(Thorax)을 착용했다. 왼손엔 가슴부터 무릎까지 커버할 수 있는 지름 1m 크기의 둥근 방패(Hoplon)를 들고, 무릎부터 발목까지는 정강이보호대 (Knemides)를 착용했다. 이렇게 무장하고 방패 뒤에 웅크리면 적이 공격할 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공격무기로 적을 향해 던지거나 찌르는 용도의 창(Dory)을 오른손에 들었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아래로는 단검(Xiphos 또는 Kopis)을 휴대했고, 발에는 가죽끈을 엮어 만든 샌들을 신었다. 이 무장들을 합친 무게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한데, 대략 32kg 정도였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완전무장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고된 일이었을 텐데, 무장한 채 전장을 누비고 때로는 전속력으로 달려 적과 교전하는 데에 익숙해지려면 평시부터 수많은 반복 훈련이 필요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호플리토드로모스는 ‘중장보병’을 의미하는 ‘호플리테스(Hoplites)’와 ‘달리기’를 뜻하는 ‘드로모스(Dromos)’가 합쳐진 용어로, 풀이하면 ‘그리스 중장보병의 달리는 경기’를 말한다. 우리말로는 ‘무장 달리기(Race in armor)’이고, 군대 용어로 바꾸면, ‘군장 구보’가 된다. 이 종목은 출전 선수들의 모습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앞서 지적한 나체 경기복의 예외다. 선수들은 저마다 전투에 출전하는 무장을 그대로 착용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투 무장을 갖춘 채 달리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완전무장한 채 돌격이 가능한 거리를 고려해, 경기장을 두 바퀴(382.54m) 달리게 했다. 이 시점에 종목의 유래가 궁금해진다. 도시국가의 주력인 중장보병들은 늘 결정적인 국면에 투입됐기 때문에 이들의 전투결과는 곧 전쟁의 승패와 직결됐다. 따라서 처절한 전투를 마친 중장보병들은 무장을 해제할 겨를도 없이 사령관이나 원로원에 전황을 보고하기 위해 또다시 달려야만 했다. 그리스군의 전투 습관에서 유래한 ‘100% 전투 스포츠(Combat-Oriented Sports)’인 셈이다.경기방식의 진화는 흥미롭다. 초기에는 완전군장을 하고 달렸지만, 나중엔 무장을 대폭 줄여 방패만 들고 달리면서 전투행위를 병행하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진화해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완전무장으로 달리는 데에 방해되는 요소는 사전에 철저하게 제거했다. 거추장스러운 창은 칼로 대체되었고, 선수들의 긴 수염이나 머리카락 역시 경기 전에 말끔히 정리했다. 후기에 들어서면, 창은 물론 투구도 없이 아예 방패만 들고 달리는 경기방식으로 정착되었다.

그리스의 무장 달리기는 경기 복장이나 유래 외에도 아주 특별한 군사적 함의가 숨겨져 있다. 당시 지중해 도시국가들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중장보병들의 강건함이 반드시 선결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 도시국가 대부분은 전시를 대비해 평시부터 ‘스포츠’를 적극 독려*해야만 했는데 육상 트랙종목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종목이 바로 이 종목이다. 이런 주장을 지지하는 몇 가지 증거가 있다. 먼저 무엇보다도 특별한 출전 자격이나 그 어떤 제한사항도 두지 않아 누구나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시민들에게 전쟁(준비)의 당위성을 심어 주고, 병역이나 동원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게 하며 가급적 많은 지원자를 모병하고, 신체 조건이나 기량이 우수한 자를 중장보병에 충원함으로써 군의 강건함을 꾀했다. 또한 전체 올림픽 진행 순서에서 가장 마지막 순간 즉, 제전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정점에 올랐을 때로 맞춰 경기를 거행함으로써 시민들의 이목을 유인한 사실도 주요 포인트다.

물론 현대 올림픽에서는 볼 수 없는 종목이다. 그러나 군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무거운 군장을 짊어진 채 신속하게 이동하는 기술은 동서고금의 군인들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이어서 평시에 반드시 반복 훈련을 통해 상대적 우위를 달성해야만 한다. 군인에게 완전군장이나 단독군장 차림으로 달리는 ‘군장 구보’는 본능 같은 것이다. 정리하면, 호플리토드로모스에는 신성한 병역의무를 강조하고 유능한 전사를 발굴해 충원하며, 나아가 핵심 전력인 중장보병에게 무한 신뢰와 격려를 보냄으로써 범그리스의 굳건한 ‘전시 대비태세’를 유지하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따라서 모든 도시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현대의 ‘마라톤(Marathon)*’과 마찬가지로 ‘고대 올림픽의 꽃’이 되었다. 비교도 되지 않는 적은 수의 전사들이 대제국의 군대를 상대로 지중해 패권을 온전히 지켜냈던 고대사 최대 사건인 ‘페르시아 전쟁’의 중심에 이 경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욱 공감하게 될 것이다.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경기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400m 계주 결선에서 이재성 선수에게 배턴을 받아 힘차게 달리고 있는 고승환 선수. 2023.10.3.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경기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400m 계주 결선에서 이재성 선수에게 배턴을 받아 힘차게 달리고 있는 고승환 선수. 2023.10.3.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횃불 들고 이어달리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횃불은 제사에서 어둠을 밝혀 주는 동시에 ‘신에게 바치는 공물(供物)에 불을 붙이는 성화(聖火)’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한편 전장에서도 칠흑같이 어두운 전쟁터에서 중장보병의 눈이 되어 주고, 말이 끄는 전차가 야간에 이동하거나 전차전을 벌이는 데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전투긴요물자’인 동시에 훌륭한 ‘장식’이기도 했다. 고대 올림픽에는 ‘횃불(Lampas)’을 들고, ‘달리는 경기(Dromia)’가 있었는데, 이를 ‘람파데드로미아(Lampadedromia)’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종목이 고대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열렸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번외경기’였다. 정식종목의 대우는 받지 못했지만, 람파데드로미아가 근대 올림픽에 미친 영향은 그 어떤 종목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첫째, 람파데드로미아는 여러 선수가 참가해 ‘횃불’을 들고 이어 달리는 경기방식이었는데 이는 ‘배턴(Baton)’을 사용하는 현대 ‘계주경기(Relay Race)’와 다르지 않다. 계주경기는 여기서 유래했다. 둘째, 횃불에서 이미 눈치챘겠지만, 올림픽 개회식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와 관련이 있다. 독일의 스포츠 행정가 칼 디엠(Carl Diem)은 “프로메테우스 신전으로부터 성화를 여러 명의 선택된 시민들에 의해 꺼뜨리지 않고 운반했다”는 기록에서 ‘성화 봉송(Torch Race)*’을 착안했다. 마침내 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총장에 오른 그는 1936 베를린올림픽에서 성화 봉송을 처음 전 세계인에게 선보였다. 이후 동계올림픽,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와 같은 국제대회는 물론이고, 국내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서도 ‘스포츠 정신’을 상기시키는 핵심 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고 보니 횃불은 단순히 ‘스포츠’만이 아니라 ‘종교’와 ‘전쟁’을 모두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고리 같은 존재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158호에 게재된 기고문 입니다.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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