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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적은 ‘마인드 바이러스’였다

2020.04.22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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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감염자가 확연하게 줄고 있지만 두려움이 사라진 건 결코 아닌가 보다. 지금도 지하철을 타면 열 명에 열 명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새 확진자가 하루 열 명 안팎을 맴돌고 그 절반 정도는 해외 유입 경우인데도 말이다. 1일 사망자도 없거나 한두 명 수준이다(참고로 2018년 하루 평균 교통사고 사망자는 10명 정도였다). 우리 국민은 정말 대단하다. 
나도 아직은 두렵다. 나갈 때는 마스크를 잊지 않는다. 세 달 동안 들어간 내 마스크 값만 10만 원은 족히 될 거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조금 완화하긴 했으나 사람들의 조심성은 별로 변한 것 같지 않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눈총을 받아야 한다.

외출과 모임을 자제한 지가 벌써 석 달이 돼간다. 벚꽃이 어느새 다 졌다고? 봄날은 간다고? 답답하다. 하지만 어쩌랴. 어쨌든 이른바 ‘뉴 노멀’ 시대의 도래에 적응해가야 한다. 그게 언제까지일지 모르니 더 답답하고 불안하지만 이 엄중한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경고했듯이 곧 더 가혹한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예 마음을 고쳐먹고 살아야 한다.

며칠 전 새벽 잠에서 깨어나 문득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지금 나를 옭매고 있는 것의 정체, 그것은 언제 내 몸에 침투할지 모르는 바이러스가 아니라는 것을. 결국 내 안에서 커져가는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것을. 감염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우연과 확률의 게임이요, 내 운수소관이요, 사주팔자지만, 두려움은 내가 내 안에서 스스로 키워가는 바이러스라는 것을. 바이러스는 내 폐를 병들게 하겠지만 두려움은 그보다 존엄한 내 마음을 병들게 할 거라는 것을.

무슨 엄청난 진리는 아니지만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조심은 하되 이제 두려워하지는 말자. 두려움과 불안이 나의 과오와 불찰로 인해 나에게만 내려진 벌이 아니잖는가. 그러니 억울할 것도 없지 않은가.

너도나도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우리가 몸담은 공동체는 거대한 두려움의 무덤이 되고 말 거다. 원망의 마음과, 비난의 소리와, 감시의 눈을 숙주로 삼은 ‘마인드 바이러스’가 코로나19보다 더 창궐하고 서로를 갉아먹을 거다.

‘마인드 바이러스(Mind Virus)’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많이 알려진 말이다. 초창기 엠에스 워드(MS-Word)를 만든 미국의 컴퓨터 천재 리처드 브로디라는 사람이 1996년에 낸 책(2010년 국내 출간) 제목이다. 그는 사람들 간 마음에도 바이러스 현상이 있다고 했다. 질병을 옮기는 바이러스처럼 한 사람 또는 일부 집단의 생각이나 주장도 소리없이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마인드 바이러스’는 이른바 ‘밈’ 과학에서 출발한다. ‘밈(meme)’은 영국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에 쓴 세기적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 나오는 용어다. 도킨스는 인간들의 의식과 문화 속에서 선택, 모방, 변이, 복제돼 전파되는 문화유전자를 ‘밈’이라 처음 명명했다. 인류문화란 결국 이 밈이 이기적으로 진화한 결과라는 게 그의 이론이다.
 
그 20년 후에 나온 ‘마인드 바이러스’는 밈 학문의 최고 명저로 평가받았다.
52주 동안 아마존닷컴 톱 100에 올랐고 미국 대학 교재로 채택됐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시대적 가치관이나 집단적 생각, 라이프스타일, 광고, 노래, 건축, 패션 같은 트렌드가 밈이자 곧 마인드 바이러스가 되는 것이다. 행복감은 전염된다고 한다. 많은 실험에서 증명됐다. 내 부모가, 내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이 기분이 좋아 보이면 나도 행복하다. 행복만 전염되는 게 아니다. 불행과 두려움과 불안 같은 정신적 상태도 전염된다. 아니 이때는 보다 부정적 뉘앙스인 ‘감염’이 낫겠다.

저자는 미디어와 통신의 발전으로 그 침투력과 번식력은 더욱 빠르고 강력해졌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마인드 바이러스에 알게 모르게 조종, 세뇌당하며 무의식적으로 마인드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과 사회를 망가뜨리는 마인드 바이러스가 있다면 전염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삶을 행복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마인드 바이러스라면 의식적으로 퍼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을 다시 책장에서 꺼내 펴들었다. 그래 결국 나부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남을 두렵게 하지 말아야 한다. 남의 두려움을 말없이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결국 나도 그 집단적 두려움의 무덤에서 벗어난다. 나의 힘듦에 대한 해답은 어렵고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외출하고 싶어졌다.

한기봉

◆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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