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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의 시작에 관한 에세이

[영화 A to Z, 시네마를 관통하는 26개 키워드] ⓘ Independent Film(독립영화)

이지현 영화평론가 2020.04.23

‘B급영화’라는 용어는 약간은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용어 자체가 가치 판단을 내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미국식 장르영화 발전에 B급영화는 도움을 줬다.

현재 제작되는 ‘독립영화(independent film)’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미국식 B급영화 모델을 살피려 한다. B급영화의 경제적 속성이 독립영화가 가지는 장단점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 B급영화라는 시초

1930년대 초, 경제위기에 대응해서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은 2편의 영화를 나란히 보여주는 ‘동시상영관’ 방식을 채택했다. ‘스타’가 등장하는 A급 영화를 보여준 뒤,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exploitation film)라는 짧은 러닝타임(60~70분 정도)의 저급 장르영화를 선보였던 것이다.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는 젊은 이레나는 자신이 발칸 반도에 생존하던 캣 피플의 후예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야수로 변신하는 불길한 힘을 갖고 있으며 인간과 맺어져서는 안 된다. 어떤 특수 효과나 배경 음악의 힘도 빌지 않고, 어둠의 힘만으로 자끄 투르뇌르 감독은 관객들을 최면 상태로 몰고 간다. 나타샤 킨스키 주연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한 걸작 영화 <캣 피플>. (사진=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 http://www.kmdb.or.kr)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는 젊은 이레나는 자신이 발칸 반도에 생존하던 캣 피플의 후예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야수로 변신하는 불길한 힘을 갖고 있으며 인간과 맺어져서는 안 된다. 어떤 특수 효과나 배경 음악의 힘도 빌지 않고, 어둠의 힘만으로 자크 투르뇌 감독은 관객들을 최면 상태로 몰고 간다. 나타샤 킨스키 주연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한 걸작 영화 <캣 피플>. (사진=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 http://www.kmdb.or.kr)

동시상영관에서 두 번째로 선택된 영화는 대체로 가볍고 쉬운 스타일을 가졌다. 서부극이나 판타지, 코미디, 뮤지컬, 공포영화 등이 이에 활용됐다. 몇몇 경우에는 제작과정에서 스튜디오 내부 시설을 이용하기도 했다. 자크 투르뇌의 <캣 피플>(1942년작)은 알케이오(RKO)의 세트장을 재활용해 완성된 영화였다.

물론 메이저와 마이너 스튜디오 이외에도 저예산영화를 만드는 독립영화사들은 존재했다. 리퍼블릭(Republic), 모노그램(Monogram), 피알씨(PRC) 등 제작사들은 자신들의 영화를 ‘포버티 로우(poverty row cinema)’라 불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저급하거나 노골적인 성향이 그들의 특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상영관 문화는 1940년대 이후 사라진다.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대형 스튜디오들은 한 편의 더 큰 영화에 좀 더 공들이기 시작한다.

◈ 예술적인 경향

생각해보면 1940년대 저예산 장르영화의 등장은 의외의 성과를 이루었다. <캣 피플>이 증명하듯, 간혹 B급영화는 함께 상영된 A급영화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사람들은 오손 웰즈의 <위대한 앰버슨가>(1942년작)가 아니라 투르뇌의 영화를 보러 동시상영관을 찾았다.

사무엘 풀러의 영화도 이 시기에 처음 제작되었고, 안소니 만의 초기작품 목록도 B급영화들로 채워졌다. 배우 존 웨인 역시 저예산영화에서 출발한 스타였다.

제한된 예산과 부족한 자원, 최소한의 촬영시간이란 물리적인 한계는 독립영화의 현재와 무척 닮아있다. B급영화는 독립영화만큼 높은 실패의 확률을 안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서 자신들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독립영화와 B급영화 모두 이전의 클래식영화가 체계화한 원칙을 과감히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실험적 내러티브와 함축적인 쇼트, 그리고 화면 바깥에서 벌어지는 비가시적인 사건들에 집중하는 태도를 통해 이들은 '예술영화'의 목록과 더욱 가까워진다.

만일 할리우드 시스템에 패러독스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스튜디오 바깥에서 출몰한 B급영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빔 벤더스와 짐 자무쉬,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가 증명하듯, 명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화들은 대담한 창조력으로 세상을 빛나게 만든다.

◈ 즉흥적 시도들

최근 클래식을 벗어난 독립영화 특유의 비체계적 경향을 발견한다. 이를 ‘리얼리티에 다가가려는 현대영화의 욕망’이라 표현해도 될 것이다.

과거 장 루슈와 자크 리베트, 존 카사베츠의가 그러했듯, 어떤 영화들은 순수한 미학 체계를 포기하면서까지 ‘과정’에 집착한다.

실제로 카사베츠와 리베트의 영화에서 가장 창조적인 순간은 ‘촬영 과정’에서 발견된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 그들은 현실적 허구의 완성에 도전한다. 때문에 이들의 시나리오는 항상 열려 있다. 작업 도중에 수정되고, 대부분 배우들에 의해 직접 완성된다.

<그림자들>(1959년작), <미치광이 같은 사랑>(1969년작), <아웃 원>(1971년작)이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촬영의 순간이 불완전했기에, 이런 방식의 영화에서 배우의 역할은 이전보다 커진다.

모리스 피알라는 이런 맥락에서 좀 더 흥미로운 실험을 보였다. 1983년작 <우리의 사랑>을 만들면서 그는 자신이 직접 등장인물이 되어 영화에 출연했다. 상드린 보네르가 연기하는 15세 소녀 ‘수잔’ 캐릭터는 감독의 열연으로 더욱 생생하게 완성되었다.

한국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작업이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홍상수의 영화에 나타나는 리얼리즘적 생동감은 촬영 직전에 대본을 받아 든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완성된다. 준비한 형식적 상황이 아니라, 생경한 환경에서 배우들의 참여를 통해 영화가 만들어진다.

‘무질서, 혹은 저예산’이란 물리적인 틀로 독립영화를 묶으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 맥락에서 독립영화를 살피는 과정에서 “생각은 결코 육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우리는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공식적 완벽함을 대신해서, 독립영화가 지향하는 새로운 창의력에 대해 상상한다.

이지현

◆ 이지현 영화평론가

2008년 '씨네21 영화평론상'으로 등단했다. 씨네21, 한국영상자료원, 네이버 영화사전, 한겨레신문 등에 영화 관련 글을 썼고, 대학에서 영화학 강사로 일했다. 2014년에 다큐멘터리 <프랑스인 김명실>을 감독했으며, 현재 독립영화 <세상의 아침>을 작업 중이다. 13inoch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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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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