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이 곳에 ‘내 적은 마인드 바이러스였다’라는 글을 썼다. 지금 내 삶을 옭매고 있는 것의 정체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지 모른다는 공포라기보다는 내 안에서 막연히 커져가는 불안과 두려움이라고 했다. 너도 나도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우리가 몸담은 공동체는 그 마인드 바이러스가 퍼져 거대한 두려움의 무덤이 되고 말 것이며, 우리 사회에는 남에 대한 원망과 비난과 감시만 팽배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내 안의 마인드 바이러스를 어떻게 몰아낸단 말인가. 최근 어떤 글을 읽다가 “아, 그래 바로 이거야”하는 깨달음을 준 단어가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외시(無畏施)’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세 가지 보시(베풂)가 있다고 한다. 재보시(財布施), 법보시(法布施), 무외시(無畏施)다. 재보시는 물질을, 법보시는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며, 무외시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다. ‘시무외(施無畏)’라고도 말한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십여 년 전에 불교 신자인 동창한테 이 단어를 처음 접했다. 그는 어떤 자리에서든 늘 보살 같은 염화시중의 미소를 띤 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친구였다. 그와 함께 있으면 좌중은 어떤 안정감이나 안락함의 커튼이 쳐진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래서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너는 어떻게 사람들을 늘 편하게 해주냐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글쎄, 무외시라고나 할까.”
불가에서는 세 가지 보시 중 무외시가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한다. 재물이나 특별한 지식이나 재능이 없어도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무외시는 어느 중생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풀어 보면 ‘무(無)’는 없음, ‘외(畏)’는 두려움’, ‘시(施)’는 베풂이다. 무외시는 타인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고 더 나아가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이다. 내 자신의 언행이나 처신이나 용모가 남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감정은 전염된다. 우울하고 화난 사람 옆에 있으면 누구나 불안해지듯 내가 편안하고 평화롭게 보이면 남도 그렇게 된다. 결국은 나의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무외시이기도 하다
남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는 건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보다 일견 쉬워 보인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도 하루에도 수없이 마주치고 접촉하고 소통하는 이 공동체 사회에서, 나도 모르게 남에게 두려움이나 불편함을 끼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불가에선 부처님의 온화한 얼굴, 불상의 인자한 기운 그 자체가 무외시라고들 한다. 무외시는 거창한 게 아니다. 어두운 밤길에 묵묵히 앞에서 걸으며 길을 터주는 것, 그런 거다.
처음 만난 이에게도 선하게 미소 한 번 지어 주는 것, 힘들어 보이는 이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주는 것, 문을 열어주고 기다려주는 것, 가파른 계단에서 손 한 번 잡아주는 것, 큰 일이 터져도 호들갑 떨지 않는 것, 조금은 불편해도 그냥 곁에 머물러 주는 것,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스쳐도 인상 쓰지 않는 것….
더 나아가 재주를 갖고 있다면 발코니음악회나 온라인에 무료 공연하는 것, 입장료 수입이 떨어져 굶어가는 동물원 사자에게 먹이를 기증하는 것, ‘#덕분에 챌린지’에 참여해 의료진에게 감사와 격려를 표하는 것,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하는 것…. 이런 건 적극적인 무외시다,
최근 본 뉴스 중에 작지만 가장 돋보였던 건, 노인복지관이 문을 닫아 온종일 집에만 있는 홀몸 어르신들에게 무료한 일상을 달래줄 콩나물 재배 세트를 나눠준 서울 성동구의 사례다.
그런데 불가에서 보시는 더 높은 차원을 말한다. 보시는 ‘삼륜청정(三輪淸淨)’, 또는 ‘삼륜체공(三輪體空)’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푸는 이와 받는 이, 보시하는 것 이 세 가지는 맑고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베풀었다는 것을 의식하거나 집착하거나 기대하지 않고 오직 빈 마음으로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한다. ‘相(모양)’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다. ‘상’은 ‘내가 주었다’는 생각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게 아니라, 오른손도 모르게 하는 경지다. 보시는 결국 나를 수양하는 길이다.
오랜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두들 힘들다. 짜증도 나고 별거 아닌 일에 예민해지기도 한다. 생활방역을 지키고 조심하는 건 조심하는 거지만, 바이러스는 결국은 내 운수소관이기도 하다.
언제 다시 바이러스의 두 번째 파도가 엄습할지 우리는 모른다. 장기전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이제 중요한 건 마음의 백신이다. 생활방역 이상 중요한 게 마음의 방역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남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내 안의 두려움과 공동체의 불안을 초월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무외시의 정신이 바로 나의 심리방역이요, 사회적 심리방역이라는 걸 오늘 각성했다.
◆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