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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지만 가련하지 않았던 시인

[문인의 흔적을 찾아서] 시인 김동명/강원 강릉

이광이 작가 2020.08.24

‘내 마음은 호수요’, 처음 시를 배울 때 꼭 등장하는 예문이다. 시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비유의 한 갈래로 직유 다음에 나오는 은유(metaphor)이다.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는 직유이고, ‘내 마음은 호수요’가 은유이다. ‘두 나라 사이에 다리를 놓으면 직유이고, 두 나라가 합병하면 은유이다’라는 재미있는 표현도 있다.

‘A는 B이다’의 은유는 예술을 향한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이것만은 남에게서 배울 수 없는 천재의 표상이다. 은유에 능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물의 유사성을 재빨리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말이다.

강원도 강릉에 있는 김동명 문학관. ‘내 마음은 호수요’의 시인 김동명 문학관은 2013년 개관됐다.
강원도 강릉에 있는 김동명 문학관. ‘내 마음은 호수요’의 시인 김동명 문학관은 2013년 개관됐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물게 하오/ 이제 바람이 불면 나는 또 나그네와 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김동명 <내 마음은>의 부분이다.

초허(超虛) 김동명(1900~1968). 강원도 강릉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나 함경남도 원산 함흥 등지에서 유년을 보냈다. 함경도로 떠나기 전 외가(갈미봉)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마침 서당의 시회에서 동명의 시가 장원에 뽑혀 동네 경사가 났는데도 어머니는 그만한 일에 자만할까, 칭찬 한마디 없이 인색했다고 한다.

문학관 옆에 세워진 김동명 시비.
문학관 옆에 세워진 김동명 시비.

소학교 교원으로 활동했으며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 친구에게서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빌려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1923년 시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주시면>을 ‘개벽’에 발표, 등단한다. 2년 뒤 일본유학을 떠나 낮에는 아오야마학원 신학과를, 밤에는 니혼대학 철학과를 수학, 졸업했다.

1930년 첫 시집 ‘나의 거문고’를 발간했다. 이 즈음 그의 시는 암담했던 시대상황과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아 퇴폐적이고 감상적인 경향을 띈다. 그는 전원에 살면서 자연을 소재로 한 시를 많이 썼다. 1936년 47편을 묶어 두 번째 시집 ‘파초’를 간행했다. 이 시들은 단순한 전원시가 아니라 민족적 비애와 역사적 고뇌가 짙게 배어있는 그의 시풍이 잘 나타나 있다.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수능 언어영역에 단골 출제되는 유명한 시 <파초>의 부분이다.

김동명의 대표작 ‘내마음은’과 그의 사진이 걸린 문학관 입구.
김동명의 대표작 ‘내마음은’과 그의 사진이 걸린 문학관 입구.

파초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파초의 목마름, 차가운 밤, 우리의 겨울 같은 상황 속에서 나는 샘물을 긷고,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며, 너를 위해 종이 되는 시어들. 암담한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절망을 극복할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을 높은 예술성으로 형상화시켰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930년 무렵부터 약 10여년이 그의 황금기에 해당한다. 대표 작품들로는 <파초> <수선화> <수선(水仙) Ⅱ> <내마음> <나의 뜰> <바다> <하늘 Ⅰ·Ⅱ·Ⅲ> <명상> <술노래> 등이 있다. 그는 일제에 항거하여 1942년 <술노래>를 끝으로 해방될 때까지 붓을 꺾고 창씨개명을 거부한 민족시인이었다.

김동명 시인의 시집과 정치평론 등 생전에 간행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김동명 시인의 시집과 정치평론 등 생전에 간행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김동명은 다른 문인들과 달리 이재에 밝고 사업수완도 뛰어났다. 1938년 목재상을 하여 큰  돈을 벌었고, 양곡배급소도 경영했다. 일본의 패망을 내다보고 흥남 역전에 많은 땅을 사두었다고도 한다. 흥남중학교 교장으로 있던 1946년 함흥에서 일어난 학생시위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교화소에 감금되었다가 풀려난다. 그해 조만식이 이끄는 조선민주당에 입당하여 함경남도 도당 부위원장을 맡았으나 조만식 등 지도부가 숙청당하자 은둔한다. 해방직후 북의 정세는 격동하였고, 신변에 위협을 느낀 그는 1947년 단신 월남했다. 당시 쓴 시 원고를 가져오지 못했는데 부인이 옥양목 쪼가리에 원고를 베껴 쓴 뒤 생후 7개월 된 아이의 배에 감아 훗날 무사히 보존해왔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한다.

김동명 생가. 김동명은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함경도로 이주해 시인이 된 이후 1947년 월남했다. 문학관과 생가 앞에는 그의 시에 나오는 파초가 심어져 있다.
김동명 생가. 김동명은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함경도로 이주해 시인이 된 이후 1947년 월남했다. 문학관과 생가 앞에는 그의 시에 나오는 파초가 심어져 있다.

이 시편들이 1954년 시집 ‘진주만’으로 묶여 출간되면서 빛을 보게 된다. ‘진주만’은 태평양 전쟁을 소재로 일본이 저지른 전쟁의 죄악과 그 인과적 멸망을 다루고 있다. 또 시집 ‘삼팔선’(1947)에서는 38선을 넘기 전까지 북에서 겪었던 참상과 북한 민중의 우울한 삶을 다루고 있다. 시집 ‘진주만’으로 1954년 아시아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 마지막 시집 ‘목격자’는 광복 전의 전원적 특질과 광복 후의 사회적 경향을 다루고 있다. 1964년에 펴낸 ‘내 마음’에는 그의 모든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는 월남 이후 한국신학대학 교수,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60년 이대 교수를 사직하고 참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다. 1968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9세.

2013년 그의 생가가 복원되고 문학관이 개관되었다. 마당에는 그가 기다리던 조국의 광복처럼 파초가 심어져 있다. 전시실 입구에는 ‘가난했지만 가련하지 않았던 시인, 김동명’이라는 촌평 문구가 붙어있다. 서재에는 시집과 정치 평론, 수필집, 연보, 그가 발간한 여러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미나실에서는 각종 문학행사와 시 낭송회, 백일장 등이 열린다. 이곳은 사천항, 아름다운 작은 어항이다. 관광객과 스킨스쿠버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해변이다. 해산물에 초고추장으로 말아먹는 물회와 전복 성게비빔밥, 미역국이 유명하다. 근처의 오죽헌과 김시습 기념관,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이 있어 두루 들러볼만 하다.

이광이

◆ 이광이 작가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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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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