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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韓國戰爭)관련 옛 소련문서(文書) 입수의 의미]6·25논쟁 40여년만에 종지부(終止符)

북침설(北侵說)·남침(南侵)유도설(說) 등 설땅 잃어, 김일성 발의(發議)·스탈린 동의(同意)·모(毛) 묵인 입증(立證)

소련(蘇聯)공군 조직적 참전·중국(中國) 군사적 개입 낱낱이 소개

1994.06.13 국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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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학 준(金學俊) <단국대(大)대학원 교수·정치학>
 
지난 40년 이상 지리하게 계속됐던 한국전쟁 기원에 관한 논쟁이 마침내 끝을 맺게 됐다. 최근 공개된 옛 소련의 문서들은 1950년 6월25일에 북한의 남침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한국전쟁이 북한의 金日成과 소련의 스탈린 사이에서 치밀하게 공모됐고 또 중국의 모택동(毛澤東)과도 협의됐던 것임을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한 것이다.

소(蘇) 장군(將軍) 해설 진실성 높여

여기서 최근 공개된 옛 소련의 문서들이라고 할 때 그것들은 물론 다음의 두 가지를 가리킨다.

첫째는 지난 6월1일 서울방송(sbs)이 방영한 러시아 연방 국립텔레비전의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의 내막’이다.

러시아의 이 텔레비전은 러시아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많은 자료들 가운데 중요한 자료들을 부분적으로 뽑아 한국전쟁이 계속되고 추진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엮었는데, 옐친 대통령의 군사 보좌관을 지낸 보르코노프 장군이 해설을 맡아 이 다큐멘터리에 담긴 내용의 진실성을 더욱 높여 주었다.

둘째는 지난 6월2일 옐친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중인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넘겨준 한국전쟁에 관한 옛 소련의 비밀 문서들이다.

이 문서들의 대부분은 그동안 철저히 감춰져 있었던 것인데 이제 비로소 그 참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문서들은 우선 1950년의 한국전쟁이 김일성(金日成)의 끈질긴 제의에 따라 계획에 들어갔음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김일성(金日成)은 북한 정권의 수상직에 취임하면서부터 곧바로 이른바 남조선 해방론에 입각해 남침 전쟁을 일으킬 뜻을 굳치고 북한 주재 소련 대사 슈티코프장군을 통해 소련 정부를 상대로 계속해서 제의했던 것이다.

스탈린도 여기에 설득되어 1949년 3월에 김일성(金日成)을 모스크바로 초청해 남침계획을 듣게 됐다. 그러나 스탈린은 미국의군사적 개입을 두려워 해 김일성(金日成)에게 보다 더 치밀하게 준비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북한에 대한 군사원조를 증가했다.

1950년 1월에 미국의 애치슨국무장관은 미국이 대한민국으로부터 아주 손을 떼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 이후 김일성(金日成)은 소련에게 더욱 더 강력하게 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겼고 스탈린도 미침내 동의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마오(모(毛))도 협의를 받고 동의했다.

6·25남침 전쟁이 이처럼 김일성(金日成)의 발의와 스탈린의 동의, 마오의 묵인 아래 계획됐고 추진됐음은 서방학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졌던 사실이다.


북한(北韓)도 자료 공개해야

그러나 북한과 소련 및 중국은 이 사실을 부인하고 미국과 대한민국이 공모해 북침(北侵)함으로써 비극이 시작됐다고 반론했다.

또 좌파계열의 이른바 수정주의 학파도 북침설(北侵設)을 지지하거나 미국과 대한민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이른바 남침유도설을 지지했다.

그런데 이제 옛 소련의 자료들이 남침의 진상을 낱낱이 밝힘으로써 북침설(北侵設)이나 남침유도설은 설 땅을 잃게 됐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은 6·25남침 전쟁의 음모와 전개 과정에서 소련이 얼마나 철저하게 도왔는가를 보여 주었다.

소련 공군의 조직적 참전의 진상도 잘 보여 주었다.

또 중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해 들어오는 과정도 사실 그대로 노출시켰다.

이것들은 김일성(金日成)이 겉으로는 민족의 주체를 앞세웠으면서도 실제로는 외세에 의존해 소련제 탱크와 무기를 앞세운 채제 동포들을 무참하게 죽인 전범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사실들은 6·25남침 전쟁을 민족해방전쟁 또는 인민해방전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일부 좌파계열 학자들의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이 문서들은 또 북한과 소련이 미국의 군사 개입을 얼마나 심각하게 두려워했는가를 보여 주었다.

그들은 특히 미국이 원자폭탄을 쓰려는 것이 아닌가를 겁냈으며, 원폭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로 하여금 휴전의 길에 들어서게 했음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앞으로의 남북한 관계를 내다 봄에 있어서도 하나의 암시를 준다.

북한의 김일성(金日成)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이다.

그는 특히 미국의 공군력, 그리고 핵(核)무기를 겁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휴전이후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주한(駐韓) 미군의 철수를 요구해 왔고 대한민국과 미국사이의 군사적 동맹과 유대를 느슨하게 풀어 놓으려고 시도해 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겠다.

러시아 텔레비전의 ‘한국전쟁의 내막’은 한국전쟁 때 휴전협정의 체결을 먼저 제안한 쪽이 소련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이미 많은 권위있는 자료들이 증명하고 있듯이 휴전을 먼저 제의한 쪽은 미국과 영국 및 캐나다를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었다.

서방 국가들의 제의를 1951년 5월에 소련이 받아들임으로써 6월부터 휴전 회담이 열리게 됐던 것이다.

이번의 러시아쪽의 자료 공개는 한국전쟁의 진상을 밝히는 작업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러시아쪽의 자료는 더욱 공개돼야 한다.

또 이미 부분적으로 공개가 시작된 중국쪽의 자료도 더욱 폭 넓게 더욱 발리 공개돼야 할 것이다.

북한도 자신의 자료를 솔직하게 공개하는 것이 역사와 민족앞에 부분적으로나마 사죄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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