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아름다운 봄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립운동가 증조할아버지께 드리는 감사의 편지 정책기자 김윤경 2019.04.11

멀리서 웃고 계실 외증조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사실 한 번도 뵌 적 없는 할아버지께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렇지만, 전 할아버지에 대해 많이 들어와서 그럴까요? 결코 낯설지가 않네요. 할아버지께서는 교회서 독립운동 관련 등사를 하다 걸려, 일본 경찰을 피해 가끔씩 몰래 집에 오셨다죠.

이후 10년 만에 만신창이 몸으로 집으로 온 후 곧 돌아가셨고, 아들인 외할아버지가 어린 가장으로 힘겹게 살아온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습니다. 당시 전 어떻게 그런 희생이 가능했을까, 또 그 일생을 바친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궁금했었습니다. 과연 저였다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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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태극기들이 전시된 광복 70주년 기념광장은 효창공원 내에 2015년 조성됐다. 
    

할아버지, 올해로 우리나라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았어요. 

100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할아버지 심정으로 좀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한국에 있는 임시정부 장소를 다녀보려고 해요. 이 편지를 끝맺을 즈음, 전 할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까요? 우선은 할아버지께서 지켜준 이 나라, 자랑스럽게 전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오르네요.

효창공원. 독립 운동가들의 선열들이 모셔진 곳.
효창공원. 독립운동에 앞장 선 선열들의 묘역.
 

먼저 집 근처에 있는 효창공원과 백범기념관을 찾았어요. 이곳은 지난 해 8월 국가보훈처에서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조성하기로 결정한 곳이에요. 원래 효창원은 조선 왕가(정조의 장남인 문효세자 등)의 묘가 있던 곳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공원으로 된 비운의 사적지이지요. 지금은 의열사와 삼의사 묘역, 임정 요인 묘역, 김구 선생 묘역, 백범기념관 등이 있어요.

광복 50주년에 효창공원 근처에 세워진 이봉창 의사의 동상.
광복 50주년에 효창공원 근처에 세워진 이봉창 의사의 동상.
 

일단 효창공원하면 다섯 독립운동가들 이름을 딴 무궁화가 떠오르는데요. 단지 이름만 붙인 게 아니라 각각 의미를 갖고 있어요. 김구 무궁화는 마곡사(충남 공주, 독립운동 당시 승려 생활을 했던 곳)에서, 윤봉길 무궁화는 윤봉길 생가 터(충남 예산)에서, 안중근 무궁화는 명동성당(서울, 안중근 의사가 다녔던 성당)에서, 이봉창 무궁화는 숙명여대(서울, 모교 부지가 있던 곳)에서, 백정기 무궁화는 백정기의사기념관(전북 정읍)에서 가져왔다고 해요. 

다섯 독립 운동가의 저마다의 의미를 담은 무궁화.안경 모양의 김구 선생 무궁화 등 효창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다섯 독립운동가의 의미를 담은 무궁화. 안경 모양의 김구 선생 무궁화, 시계 모양의 윤봉길 의사 무궁화 등을 만날 수 있다.
 

이 무궁화는 후계목(아들, 딸 나무)으로 길러져 전국으로 전파한다고 하니, 의미가 남다르지요. 할아버지와 저는 같은 시간을 보낼 순 없었지만,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를 바라보는 이 마음은 같지 않을까요? 

푸르른 계절, 하지만 아직 망울조차 맺지 못한 무궁화를 보며 나무 안에 숨겨진 커다란 힘이 있다는 걸 믿어요. 굳건하게 피어오를 무궁화를 품은 나무, 어쩐지 우리 국민들이 가진 열정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임정요인 묘역.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선생을 모신 곳.
임정 요인 묘역.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을 모신 곳.
  
삼의사 묘역,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묘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다
삼의사 묘역.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묘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다
 

쭉 뻗은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면 묘역이 나와요. 임정 요인 묘역에 도착하니 까치 한마리가 천천히 둘레를 걷고 있었습니다. 날지 않고 묘소를 가만히 바라보던 까치의 몸짓이 왜 유독 슬퍼보였을까요? 저도 잠시 묘역에 서서 곰곰이 생각해보다 내려왔어요.

버스 정류장, 도로 등 일상에서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버스 정류장, 도로 등 일상에서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의열사를 지나면 마주하는 백범김구기념관은 ‘임정로’에 위치해 있어요. ‘임정로’를 듣자 혹시나 싶었는데, 제 느낌이 맞았더라고요. 단어 그대로 임시정부의 길이란 뜻으로 2010년 도로명칭이 바뀌었다고 해요.

또 제가 내린 버스 정류소에는 ‘이봉창 활동 터’ 라는 이름이 새롭게 붙어 있었어요. 서울시는 올해 3·1운동 및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일상에서 독립운동을 기념하고자 14개의 버스정류소에 독립운동가 이름을 넣었다고 해요. 앞으로 버스를 탈 적마다 한 번씩 떠올릴 수 있어 왠지 더 뭉클합니다.

숭고함이라는 꽃말을 지닌 목련이 둘러싸인 백범김구기념관.
숭고함이라는 꽃말을 지닌 목련이 둘러싸인 백범김구기념관.
 

할아버지, 지금 할아버지께도 들리나요? 저 공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너무 밝아 저도 모르게 빙긋 미소가 지어졌어요. 봄이 오는 공원 곳곳에는 민들레가 많이 피어 있었습니다. 언제 밟힐지 모르고, 여럿이 있어야 노란 빛으로 눈에 띄는 꽃이지요.

계절이 흐르면 그나마 존재조차 모르게 지고 말겠지요. 그렇지만 그런 소소한 꽃들이 모인 덕분에 사람들은 공원의 봄을 만끽하고 있어요. 작은 흔적들이 만들어 준 큰 힘. 저는 기억할게요.

이제는 서울역사를 지나치면서 강우규 의사의 정신을 기억하자.
이제는 서울역사를 지나면서 강우규 의사의 정신을 기억하자.
 

걸음을 돌려 예전에 남대문역이었다는 서울역으로 왔어요. 지금은 문화역으로 바뀌어 전시와 공연으로 즐거움을 주지만, 동시에 숙연한 마음도 드는 장소지요. 바로 강우규 의사가 66세 때 사이토를 암살하기 위해 폭탄을 던졌던 곳이라 그럴까요. 연령과 세대를 초월해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에 힘쓴 국민들의 심정을 생각해보니 더욱 먹먹해집니다.       

의열사안에 모셔진 이동녕, 김구, 차이석 ,조성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일곱분의 영정.
의열사 안에 모셔진 이동녕, 김구, 차리석, 조성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일곱 분의 영정.

자주 가던 곳이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보였던 건, 이런 마음을 갖고 다녔기 때문일까요? 전 같은 시대를 살진 못했지만, 할아버지와 같은 많은 분들 덕분에 제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껴요. 

비록 할아버지의 간절한 삶이 커다란 흔적을 남기진 않았다 해도, 전 충분히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이름 모를 독립 운동가들이 곳곳에 계셨음에 지금 우리가 ‘자유’ 안에서 숨 쉴 수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요.

이제 편지는 끝맺었지만, 알려주신 그 뜻대로 더 앞을 향해 나가겠습니다.
이제 편지는 끝맺지만, 알려주신 그 뜻대로 더 앞을 향해 나가겠습니다.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찍은 기념사진 속, 저는 그분들과 함께였습니다. 
    

제가 찾은 할아버지 깊은 마음, 맞는지요? 

미미한 민들레였을지도 모르나, 그 홀씨처럼 나라의 소중함을 퍼뜨려주신 할아버지 삶을 되새겨 봅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자랑스럽다는 말, 그 한마디로 감사한 마음을 전할게요. 언제든 이곳에 오면 할아버지 생각이 나겠지요. 값진 희생을 주신만큼 더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019년 4월 11일 
할아버지께 감사함을 담아 증손녀 윤경 올림 


김윤경
정책기자단|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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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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