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독립에 목숨을 걸다

[임시정부, 그 길을 가다 ⑨] 상해 의거 현장을 찾아서(노신공원, 황포탄 의거지) 정책기자 임성대 2019.04.08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전환기를 이끌고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대내외에 알린 윤봉길 의사의 홍구(훙커우)공원 의거. 하지만 이 의거가 어떻게 일어나게 됐고, 또 성공을 하게 됐는지는 정확히 몰랐다. 단지 윤봉길 의사가 폭탄 의거를 일으켰다는 그 결과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의거 현장을 돌아보며, 윤봉길 의사의 이날 의거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방향성을 재정립한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점을 확실히 알게 됐다.

상해(상하이)에 들어온 첫날부터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거쳐 팔선교 기독청년회관, 홍구공원(현 노신공원), 그리고 황포탄 의거지를 도는 강행군이었다.

윤봉길 기념관이라고 한글로 써있는 이정표가 인상적이다.
윤봉길 기념관이라고 한글로 써있는 이정표가 인상적이다.
 

노신(루쉰)공원에서 윤봉길 의사를 마주했다. 어디에도 의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공원. 한 편에 배드민턴을 치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중국 사람들의 목소리를 닮아가는 걸까. 유달리 중국 새들의 소리는 컸다.

매헌(梅軒)이라는 윤봉길 의사의 호처럼, 노신공원 내 윤봉길 기념관에는 매화꽃이 가득 피어나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윤봉길 기념관에는 윤봉길 의사의 호인 매헌처럼 매화꽃이 일행을 반겨줬다.
윤봉길 기념관에는 윤봉길 의사의 호인 매헌처럼 매화꽃이 일행을 반겨줬다.
 

이 평화로운 공원에서 1932년 그날을 힘겹게 떠올려본다. 1931년 만주사변에 이어, 1932년 상해사변에서 승리한 일본은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과 전쟁 승리를 축하하는 기념식을 상해 한복판에서 갖기로 한다. 적진에서 기념식을 여는 대단한 자신감이었으나, 그 자신감은 중국인도 아닌 바로 한인애국단 소속 윤봉길 의사의 거사로 물거품이 된다.

이 폭탄 의거로 시라카와 일본군 대장과 일본인 거류민 단장 가와바다가 즉사한다.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중장과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주중공사 시게미쓰는 중상을 입는다. 시게미쓰는 1945년 9월 2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서 패하면서 미주리호 함상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을 하게 되는데, 이때 다리를 절룩거리는 영상이 남아있다. 바로 윤봉길 의사 의거 때 입은 부상 때문이다.

윤봉길 의사의 거사 전 모습. 김구 선생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윤봉길 의사의 거사 전 모습. 김구 선생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이 거사 앞에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들이 있다. 이봉창 의사가 있었고, 또 그 전에 이름도 생소한 황포탄 의거가 있었다. 특히, 이봉창 의사의 의거로 임시정부의 활동과 도전이 국내외에 알려지게 된다. 바로 일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도쿄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한 것이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의거였다.

무력 투쟁을 기치로 내걸었던 의열단과 달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외교적인 활동에 치중했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과 열악한 여건 등으로 임시정부는 명성도, 지명도도 약해져 가는 기로에 있었다. 이에 김구 선생은 1931년 일본의 주요 인물을 암살하려는 목적으로 한인애국단을 조직했다.

그렇게 임시정부의 활로를 찾던 시절, 한 명의 청년이 다가온다. 32세라지만 중년처럼 보이는,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기노시타 쇼조라는 이름의 이봉창이었다. 

이봉창 의사의 거사 전 모습.
이봉창 의사의 거사 전 모습.

  
만주에서 일본인 가게 점원으로 일하고, 차별을 받자 일본인 양자로 들어가 당당히 이름도 기노시타 쇼조로 개명한 사람. 하지만 일본인으로 살아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자 그는 생각했다. 이 차별을 이겨내는 길은 결국 독립밖에 없다고.

밀정이 아닐까 의심을 사기도 했지만, 김구는 그의 말을 신뢰하고 한인애국단에 가입시킨다. 일본 영감이라는 별명의 이봉창은 우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기회를 살폈다. 임시정부 역시 먹고 살기 힘들었으니 기댈 수도 없었다.

임시정부는 하와이 애국단에서 보내온 자금으로 중국군 소속 김홍일과 김현을 시켜 폭탄을 만들게 한다. 이 폭탄을 가지고 이봉창은 일본으로 향한다. 사타구니 근처에 주머니를 만들어 폭탄을 숨겨간다. 그리고 거사일(1932년 1월 8일). 폭탄을 던지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안타깝게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윤봉길 기념관 전경.
윤봉길 기념관 전경.
 

비록 거사는 실패했지만 이 폭탄 의거는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서로가 공동의 목표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중국인들에게 조선의 독립 의지를 확인시키면서 중국인들의 시선을 바꿔놓게 된다.

만보산 사건(일본의 이간책으로 중국 지린성 만보산 지역에서 중국 농민과 한인 농민 사이에 일어난 유혈충돌 사건) 이후 냉랭해진 시각을 바꾸게 되는 단초를 재공한다. 

이어진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는 이봉창 의사 의거를 본보기 삼아, 성능이 업그레이드된 폭탄과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과 관심 속에 이뤄지게 된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성공으로 한인애국단과 임시정부의 존재와 한국의 강력한 독립 의지도 만방에 알린다. 

한인애국단은 외교적 활동과 노력에 기울어졌던, 그리고 존재감도 서서히 없어지고 있던 임시정부의 활력소이자 독립의 열망을 알리고 자금 또한 확보하게 된 활동이었다. 임시정부의 의지를 확인한 동포들과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도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변했다.

황포탄 의거를 무색케 하는 황포강 야경.
황포탄 의거를 무색케 하는 외탄(와이탄) 야경.
 

상해 임시정부의 거점에서 우리는 김원봉 단장으로 유명한 의열단의 의거 현장도 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의열단이 상해에서 일으킨 황포탄 의거였다. 그것은 3명의 의열단원이 투입된 작전이었다. 오성륜, 김익상, 이종암이 그 주인공들이다.

1922년 3월 28일 일본군 육군대장 다나카(田中義一)가 필리핀 마닐라로부터 귀국하는 도중에 상해에 도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다나카를 사살할 거사 계획을 세웠으나 안타깝게 실패했다. 의거는 실패로 끝났지만,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사건이다.

황포탄 의거의 김익상, 오성륜, 이종암 그리고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없었다면, 윤봉길 의사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거사의 성공은 수많은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더 많은 준비와 철저함으로 무장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과 더불어 가장 많은 국민들의 기억에 남은 윤봉길 의사의 거사는 이런 배경으로 성공하게 된 것이다.

노신공원 내 윤봉길 의사 기념관.
노신공원 내 윤봉길 의사 기념관.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중국 정부와 임시정부는 본격적으로 협력하게 되고 광복군에 대한 지원까지 받게 된다. 장개석(중국), 처칠(영국), 루스벨트(미국) 3국 정상이 참석한 카이로 회담(1943년)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약속한 그 배경에는 중국이 있었다.

카이로 회담 전 한중 수뇌부 회담으로 한국의 독립을 요청했던 것이다. 이는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중국 정부와의 돈독한 관계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당시 한인애국단의 의거나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깨닫게 된다.

탐방 내내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 황포탄 의거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리나라의 독립, 그리고 자유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건 그들의 모습이.




임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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