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이 복원되면 세종로를 통해 광화문으로 입장할 수 있게 돼 경복궁 정문으로서의 역할을 되찾는다. 복원가상도.
1395, 1867, 1968, 2009는 광화문의 역사와 미래를 나타내는 숫자다.
광화문은 1395년(태조4년) 경복궁 창건과 함께 세워졌다. 광화문은 '광피사표화급만방(光被四表化及萬方)'에서 '광화'를 따온 문구로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는 뜻이다. 조선 법궁(法宮)인 경복궁의 정문으로 조선왕실의 상징이자 임금이 직접나서 백성을 교화하고 감화하는 곳이었으며, 민의가 궁궐로 향하는 상징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광화문에 나아가 활 쏘는 것을 보고, 첨지중추원사 조석강 등 9인에게 명하여 철촉화살을 시험해서 쏘게 하였다"(세종 23년 7월 15일), 또 세조도 "임금이 궁중과 더불어 광화문에서 화포 쏘는 것을 구경하였다"(세조 5년 12월 27일)고 기록돼있다. 또 영조는 "광화문에 나가 유생들에게 오늘 직언하는 상소를 올릴 것 등을 명"(영조 46년 4월 5일)하기도 했다
조선 왕실의 상징이었던 광화문은 임진왜란으로 전소되고, 1867년(고종4년) 다시 세워졌다.
고종은 새로 광화문을 세우고 대궐문을 출입하는 규례를 정해, "모든 관리들은 광화문의 동쪽과 서쪽 옆문으로 출근하되 문관은 동쪽 옆문으로, 무관은 서쪽 옆문으로 출입"하도록 했다.(고종 4년 11월 14일) 또 "근정전의 자리에 나와 앉아서 근정문을 열때는 홍례문, 광화문도 함께 열도록 지시"했다.(고종 4년 11월 15일). 고종이 근정문에서면 홍례문, 광화문이 시원스럽게 일직선으로 이어져 관악산을 향했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신축하면서 경복궁의 기틀이 훼손됐다. 이는 일제의 우리 역사 말살 정책의 일환이다. 일제는 경복궁의 기틀과 관계없이 남산의 신사를 향해 조선총독부를 세웠고, 광화문은 1926년 해체해서 건춘문 북쪽(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입구)으로 옮겼다.
이마저도 한국정쟁 당시 폭탄을 맞아 문루는 소실되고 육축만 남았다가 현재의 자리에 광화문이 다시 선것은 1968년이다.
그러나 새로 세운 광화문은 원형과 달리 철근콘크리트를 이용했고 무엇보다 일제의 잔재인 조선총독부 청사의 축에 맞춰서 배치하면서 궁궐의 균형에 어긋났다.
역사의 상징인 광화문이 일제의 잔재를 털어내지 못한 것이다. 지금의 광화문은 원래 위치에서 북측으로 14.5m, 동쪽으로 10.9m 틀어졌으며, 중심축에서 약 5.6˚ 동쪽으로 세워졌다. 근정전에서 광화문까지 일직선이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9 광화문 복원은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 현장의 회복으로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상징이다. 1925년 이전 광화문<조선고적도보>
이처럼 80여 년 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광화문은 4일부터 철거와 복원의 대장정에 들어가 2009년 비로소 제모습을 되찾는다. 광화문 제모습찾기 선포식 행사일인 12월 4일은 1394년(태조 3년) 경복궁 창건을 위해 개토제(開土祭)와 함께 공사를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선포식 행사에서는 광화문 용마루의 취두를 철거하는 이벤트와 함께 철거·복원공사 기간동안 전면에 가림막으로 사용될 상징조형물이 제막된다. 상징물에 적힌 1395, 1867, 1968, 2009는 이러한 광화문의 역사, 제모습을 구현하고 있다. 다시 나라의 빛이 사방을 덮어 교화가 만방에 비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경복궁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사업은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의 일환인 20개년 사업으로 추진된 마지막 사업이기도 하다. 1990년 침전권역 복원을 시작으로 1999년 동궁권역, 2001년 흥례문권역, 2005년 태원전권역에 이어 2009년 광화문권역이 복원되면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경복궁의 원형을 40%(총129동 6207평) 회복하게 된다.
또한 2009년 광화문 복원과 함께 세종로 일대가 정비되면 그동안 경복궁을 관람할 때 정문을 사용하지 못하고, 흥례문권역 동측에 있는 주차장과 국립고궁박물관 앞에 있는 지하출구를 통해서 접근하던 방식에서 세종로를 통해서 광화문으로 입·퇴장할 수 있게 되어 경복궁 정문으로서의 역할을 되찾는다.
문화재청은 올해 북악산을 포함한 서울성곽의 숙정문 개방, 청와대 앞 길 개방, 신무문 개방 , 그리고 이번 광화문 복원 등을 통해 서울의 옛 모습을 되살려 역사·문화·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도시로써, 서울을 유네스코 세계역사도시로 등재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광화문이 복원되면 근정전, 홍례문 광화문이 일직선을 이루고 경복궁 정문의 역할을 되찾는다. <광화문 복원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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