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한국경제 성장의 돛이었던 교육은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덫’으로 표류하고 있다. 산업화시기 유효했던 입시위주의 낡은 교육시스템, 시험성적 중심의 인재선발 방식에 대한 일대 수술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는 이미 오래다.
낡은 교육시스템은 갈수록 늘어나는 사교육비와 조기유학붐, 교육이민, 부동산투기 등 교육적, 사회경제적 폐해를 키우고 있다. 우리사회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교육열’에 힘입어 대학진학률이 82%에 달하는 등 대학교육의 대중화를 이뤘지만 질적으로 낮은 대학경쟁력은 국가경쟁력의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고교평준화정책, 대입제도 등을 둘러싼 논란은 계층, 지역간 갈등과 이념투쟁의 양상으로 확대되면서 이미 형성된 사회적 합의를 해치고 교육의 ‘백년대계’를 어렵게 하고 있다.
국정브리핑은 난마처럼 얽힌 교육현안 중 국민적 관심이 큰 ‘대학입시정책’, ‘고교평준화정책’, ‘사교육경감대책’, ‘인적자원개발정책’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지난 교육정책의 역사를 실록형태로 정리한 ‘실록 교육정책사’를 총 16회에 걸쳐 연재한다. 연재를 끝낸 뒤에는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실록 교육정책사’는 교육정책의 탄생배경과 정책효과, 사회적 반응 등을 전·현직 교육정책 담당자들의 증언, 각종 정부기록물, 학계 연구보고서, 언론보도 등을 바탕으로 생생히 재현해냄으로써 ‘읽는 재미’와 함께 교육정책을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안목을 제공할 것이다. 또 21세기 세계화·정보화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교육시스템과 교육이념, 이를 구현할 교육정책의 원칙과 방향 등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1989년 스승의 날(5월 15일) 무렵 어느날 저녁,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한정식집에서 역대 문교부 장관 모임이 열렸다. 정원식 문교부 장관(총리 역임)은 전임 장관들에게 “학력고사를 없애고 대학입학 적성시험(훗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만들면 어떨지”를 물었다.
정 장관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교육개혁심의회가 1986년 7월 최종보고서 ‘교육개혁 종합구상’을 통해 적시한 “학력고사를 ‘대학입학 적성시험’으로 발전시킨다”는 방안을 이날 모임의 화두로 던진 것이다. 정 장관은 취임 이후 ‘수능의 산파(産婆)’ 박도순 교육부 대학교육심의회 전문위원(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역임, 전 고려대 교수)과 수능 도입 문제를 심층적이면서도 열정적으로 논의해온 터였다.
이미 수능 이전의 국가고사이던 학력고사는 수명을 다하고 있었다. “모든 교과목을 대상으로 단편적 지식을 측정함으로써 암기 위주의 획일화된 입시교육을 강화시킨 주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수능은 암기위주의 입시를 혁신했다”
수능은 교과목을 뛰어넘는 고차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겠다는 시험이라는 측면에서 학력고사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김영채 계명대 교수(철학박사)가 미국의 입시제도 등을 염두에 두고 오래전부터 ‘대학교육 적성검사’란 이름으로 제안해온 것이기도 했다.
수능 도입은 문교부가 교육부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장관도 윤형섭 장관(연세대 교수)으로 바뀐 1991년 4월 발표됐다. 교육부는 “1994학년도 대학입시부터 국가가 관리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연 2회 시행하고 각 대학별 본고사는 부활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대학입학시험제도 개선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런 문제 같으면 100점 맞겠다”
첫 수능이 치러진 1993년 8월 20일 언론은 찬사를 보냈다. “탈교과통합 출제, ‘산교육’ 기대”(국민일보) “암기식 탈피 탐구교육 전기로”(서울신문) “암기 위주 즉답형 학력고사 한계극복”(세계일보) “비정상 교육 풍토 쇄신의지 담아”(한겨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재작년 펴낸 ‘대학수학능력시험 10년사’는 당시 교육부 기자실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시험의 모습이 드러나자 시험에 대한 우려나 비난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시험 당일 교육부 출입기자들에게 문제지를 배포하고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성급하게 언어 문제지를 보던 기자들이 환성을 지르는 것이었다. ‘문제들이 너무 좋다’ '고교 졸업한 지 10년이 넘은 우리가 이런 문제 같으면 100점 맞겠다' '독서를 많이 할수록 유리하겠다' '지식 문제는 없고 모두 창의력과 사고력이 필요한 문제들 뿐이다'며 시험에 대해 후하게 점수를 줬다.”
수능은 “암기 위주의 기존 입시체제를 혁신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순항하는 듯했다.
10년 뒤 “수능이 사교육비의 주범”
1969학년도 대학입시부터 '대학입학 예비고사제'가 도입, 본격적인 국가고사 시대가 열렸다. 사진은 1972년 11월27일 대학입시 예비고사장인 숙명여고 수험장을 둘러보고 있는 민관식 문교부장관.<사진=연합뉴스>
“수능은 고교 교육을 붕괴시키는 한 원인이 된 것은 물론 학부모와 학생들의 희생을 담보로 대학에 선발 편의를 제공하는 데 그쳤습니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학부모를 사교육비 부담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수능을 폐지하거나 자격고사화해야 합니다.”
2004년 11월 24일 서울 종로구 흥사단에서 열린 ‘수능제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토론회. 박경량 참교육전국학부모회 회장은 수능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그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등 교육시민단체들도 한 목소리를 냈다. “수능을 폐지하거나 자격고사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쳤다. 학력고사 폐해론과 똑같은 이유에서였다.
“수능이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옛 학력고사와 똑같아졌다. 결과적으로 학교교육을 왜곡시키고 사교육비의 주범이 됐다. 전국의 학생을 점수로 한 줄 세워 대학서열화를 부추기고 있다.”
과연 대학입학연합고사-자격고사-예비고사-학력고사-수능으로 이어진 국가고사는 필요악인가. 우리나라에서 국가고사는 양날의 칼이다.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제도인 동시에 점수를 통한 획일적인 학력 평가로 대학서열화와 학력사회를 공고히 한다는 폐해를 지적받는다.
대학의 끊임 없는 입시부정
국가고사의 발생지점으로 되돌아가 보자.
해방 이후 1960년대 말까지 대학의 학생 선발권은 전적으로 대학에 있었다. 법적으로는 대학의 자율성을 100% 보장한 것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정부가 대학에 신경을 쓸 여력이 전혀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정부가 적은 교육예산으로 전국에 국민학교 짓기에도 벅찼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산업입국을 위한 실업계 인력 양성에 전념했다.
그 와중에도 국가고사인 ‘대학입학 국가연합고사’(1954)와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1962~63)가 자격고사 형태로 치러진 적은 있었다. 본고사만으로 대학 가던 시절에 대학들이 입시와 관련해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데 대한 정부의 개입 형식이었다. 그러나 국가고사는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학생들의 학업부담을 키운다는 등의 이유로 금세 폐지되곤 했다.
문교부의 '대학입학 예비고사제' 도입을 보도한 1968년 10월 15일자 동아일보. '대학정상화의 실마리'라는 제목에서 당시 정부의 방침을 환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가고사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은 1968년. "대학교육을 받기 적합한 자에게만 대학입학 자격을 주자"는 요구가 거세게 제기됐다. 대학의 끊임없는 입시부정 탓에 국민들은 대학입학시험의 ‘공공성 보장’을 요구했다. 결국 정부는 그해 10월 예비고사제 도입 방침을 발표했다. 다음달 교육법 제111조를 개정, ‘대학입학 예비고사제’를 도입했다. 대학이 학생 선발의 자율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면서 국민의 지탄을 받고 국가의 개입을 자초한 형국이었다. 예비고사에 대한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그해 10월 15일자 동아일보 기사 내용이다.
“문교부가 발표한 대입 예비고사제는 대학생의 자질을 높이고 대학운영을 바로 잡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계에서 대대적으로 찬성을 받고 있다. 이 제도는 문교부에서도 밝힌 것처럼 이미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이 제도의 효과는 국가가 통일적인 평균적 기준 아래 대학입학자격을 관리함으로써 대학 및 개인 간의 격차를 해소하고 고교교육의 질을 높이고 국가가 필요한 인력개발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숫자에 대한 미신’ 국가고사
국가고사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은 ‘공공성’과 ‘객관성’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덕분에 대입에서 결정적 자료로 활용돼 왔다. 명문대 입학이 곧 사회적 신분상승과 출세의 지름길로 여겨지는 학벌사회에서 입시의 공공성과 객관성은 모든 학부모와 수험생이 요구하는 절대 가치로 자리잡았다. 수능 점수야말로 대입 당락을 결정하는 최선의 기준이자 대입에 실패한 사람도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국가고사는 대학서열구조의 상층부에 있는 일부 대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학력 우수자를 싹쓸이하게 해줄 수 있는 ‘고마운’ 시험이기도 했다.
과연 수능 점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것일까.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숫자에 대한 미신”이라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 이래 역대 정부의 교육 관련 위원회에서 활동해온 박도순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수능 점수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수능은 아이들 개개인의 능력을 측정하는 데 그다지 변별력이 큰 시험이 아니다. 모든 시험에는 오차범위가 있게 마련인데 출제기간이 10일 정도에 불과한 수능의 경우 오차범위는 ±10점 이상이다. 수능 290점짜리와 270점짜리 학생 사이에 능력과 학력의 명확한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놈의 ‘객관성’ 때문에 현실에서는 290점은 합격시키고 289.9점은 일률적으로 떨어뜨린다. 공정과 객관이라는 미명 아래 학력 중심의 단일 잣대에 의한 점수로 학생을 선발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믿는가. 숫자에 대한 미신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입시지옥화, 학생의 점수 노예화, 공교육의 붕괴는 피할 수 없다.”
“좋은 일 해주고 학부모에게 욕만 먹는 시험”
국가고사의 이같은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2002 대입제도를 통해 대학이 수능은 물론 고교 성적과 비교과 활동, 논술, 면접 등 다양한 전형을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았다. 1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던 수능 점수제를 폐기하고 대신 변별력을 완화시킨 수능 등급제를 실시했다. 소수점에 의한 ‘극도의 석차화’를 막기 위해 소수점과 총점 표시를 없애고 9등급제를 도입했다. 수능시험의 변별력을 떨어뜨릴수록 공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절감, 다양한 학생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학의 수능 점수 의존도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수능이 공교육 붕괴와 사교육 창궐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정부가 국가고사를 없애면 되지 않을까. 실제 역대 대통령 자문 교육 관련 위원회들은 최종보고서를 통해 궁극적으로 국가고사를 폐지하고 내신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하자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국가고사가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는 게 한 교육계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는 대학입시와 관련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국가고사를 없애고 대학 본고사를 부활시켜도 본고사를 치를 수 있는 대학이 몇 개 되지 않는다. 정부가 나서서 국가고사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 국가고사는 정부가 대학에게 좋은 일을 해주면서 학부모에게 욕만 먹는 시험이다.”
실험으로 끝난 80년대의 논술과 주관식 문항
80년대 학력고사 시절 이른바 '눈치작전'과 '배짱지원'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유행어였다. 당시 적성과 소질보다는 학력고사 성적에 따라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수능은 1994학년도 대입부터 도입됐다. 기존의 학력고사가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를 측정함으로써 고등학교 교육의 비정상화를 초래하고 대학에서의 수학 능력을 평가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주장에 따라서다.
실제 학력고사는 4지선다형 일색이어서 암기력이 곧 학력으로 직결됐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86∼87학년도에는 대학별 논술고사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대학은 “인생과 신앙을 논하시오” “컴퓨터와 점쟁이에 대해 쓰시오” 등 무성의한 문제를 출제했다. 논술 채점의 객관성과 신뢰성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학원가에서는 ‘암기식’ 논술교육이 성행했다. 대학별 논술고사는 도입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2년 만에 폐지됐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정부는 1988학년도부터는 학력고사에 주관식 문항을 30% 출제하기로 했다. 이 역시 성공적이지 못했다. 교육부가 1992년 펴낸 ‘대학입학 학력고사의 종합 평가연구’를 들여다보자.
“학력고사 문제 중 주관식이 30%, 객관식이 70%를 출제하도록 돼 있는데 실제 학력고사 문제를 분석해 보면 사고력, 창의력 등 고등정신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주관식이 아니라 단답형과 빈칸채우기식의 문제가 대부분이어서 고등학교 교육을 여전히 암기주입식 교육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독서열풍 몰고온 초기의 수능
대입제도의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5년 3월 10일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심의회가 발족됐다. 교육개혁심의회는 1986년 7월 15일 최종 보고서인 ‘교육개혁 종합구상(1986)’을 내놨다. 거기에 수능의 맹아인 ‘대학입학 적성시험’이 거론됐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은 ‘대학입학시험 제도 개선’을 지시했다. 문교부는 1988년 5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대학입시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를 의뢰했다. 1991년 4월 2일 교육부는 “1994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수능을 연 2회 시행하고 본고사를 부활한다”는 내용의 입시 개선안을 발표했다.
수능은 도입 초기 ‘독서열풍’을 몰고 왔다. 암기 위주의 입시체제에 멍든 학교 교육을 변화시켰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문제 유형이 정형화 되는 등 또 다른 암기대상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본래 수능은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을 암기하면 풀 수 있었던 학력고사와 달리 ‘통합교과’를 지향했다. 학생들의 사고, 종합적 이해, 문제해결능력 등을 측정하자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수능은 시험과목도 대폭 줄였다. 학력고사는 국어·수학·영어·국사·국민윤리·사회·과학·제2외국어·실업 등 9개 과목을 대상으로 했으나 수능은 언어·수리·영어 등 3개 시험영역으로 국한됐다. 수능은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적격자 선발’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대학교육을 받는 데 필요한 의사소통능력(언어)과 논리적 사고력(수리), 영어 원서 독해를 위한 외국어(영어)를 중시한 것이다.
점점 늘어나는 수능 과목
그러나 수능은 시일이 경과하며 점차 시험과목이 증가하고 영역이 확대됐다. 수능에 포함되지 않을 경우 학교에서의 교육이 어렵다는 이유로 시험 교과목이 하나둘 추가됐다. ‘통합교과’를 지향한다는 도입취지는 무색해졌고 “학력고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학능력평가도 아니다”는 지적이 많아졌다. “획기적”이라던 평가는 “기존의 학력고사와 뭐가 다른가”라는 문제제기로 바뀌었다. 심지어 2003년 8월 22일 열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개원 5주년 기념학술대회’에서는 수능을 대학 학업에 관한 일반적 적성시험과 교과별 학력고사로 분리해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시행 10년째를 맞은 2003년 말, 수능은 출제위원 선정 파문과 복수정답 시비 등에 휩싸이며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수술해야 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듬해에는 휴대폰을 사용한 조직적인 수능 부정행위 파문으로 ‘자격고사화’ 또는 ‘폐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2004년 겨울은 수능 휴대전화 부정 및 대리시험으로 사회가 떠들썩했다. 2004년 12월 1일 충남지방경찰청 소속 경찰들이 대전시교육청에서 대전지역 수능시험 응시원서를 살펴보며 대리시험 여부 확인을 위해 응시자의 증명사진과 주민등록번호 등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능과 변별력…해법은 없었다
2003년 11월 28일 한국교육개발원은 사교육비 경감방안의 하나로 ‘수능의 자격고사화’를 주장, 눈길을 끌었다. 28일은 지문유출 의혹, 오답 시비 등으로 얼룩진 2004학년도 수능에 대해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이종재 한국교육개발원장은 서울 잠실동 정신여고 대강당에서 열린 사교육비 경감대책 수립을 위한 제5차 공청회에서 “대학에서 점수 위주로 학생을 선발할 경우 교육경쟁은 과열될 수밖에 없으며 수학능력시험은 기초적 수학능력의 검증에 그쳐야 한다”며 “수능이 결정적 전형자료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입시부정 터지자 본고사 포기 대학 속출
사실 수능은 대입에서 ‘결정적’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도입된 것은 아니었다. 1991년 4월 2일 교육부가 발표한 ‘새로운 대학입학시험제도 개선안’은 입학생 선발에 관한 대학의 자율성과 고교 교육의 정상적 운영, 전형과정의 공정성이라는 원칙하에 마련됐다.
내신 반영은 의무였지만 수능과 본고사 등은 대학 자율에 맡겨졌다. 대학은 ①내신 ②내신+수능 ③내신+본고사 ④내신+수능+본고사 등 다양한 유형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능 도입 한 해 전인 1993학년도 입시에서 학력고사 정답지 유출사건과 입시부정문제가 터졌다. 대학들은 본고사 실시에 따른 출제·채점·보안유지 등 자체 관리능력에 자신감을 잃고 본고사 실시를 포기했다. ②번 전형을 택한 대학은 67곳(48.5%)에서 99곳(71.7%)으로 대폭 는 반면, ④번 전형을 택한 대학은 41곳(29.7%)에서 9곳(6.5%)으로 줄었다.
수능이 대입에서 결정적 전형자료가 되자 수능을 위한 사교육이 사회 문제가 됐다. 특히 1994~96학년도까지 시행됐던 본고사가 1997학년도부터 폐지되며 대학이 신입생을 선발하는 데 있어서 수능의 의존도가 크게 높아지게 됐다. 대학의 ‘높은 수능 의존도’는 난이도 논란을 불렀다.
언론 “쉬워도 너무 쉬웠다”
대학은 수능의 변별력이 낮다는 이유로 ‘쉬운 수능’을 못미더워했다. 1점이라도 더 수능점수가 높은 학생을 뽑는 데 그만큼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다. 반면 학부모와 학생들은 ‘어려운 수능’이 사교육을 부추기고 학습의욕을 떨어뜨린다고 했다.
국민의정부는 학부모와 학생의 손을 들어줬다. 사교육을 줄이고 학교 공부만으로 높은 점수를 얻게 하자는 취지에서 ‘쉬운 수능’ 방침을 고수했다. 이번에도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1998년 1월 ~ 2000년 12월)을 지낸 박도순 교수의 증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수능을 쉽게 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나도 기본적으로 수능 시험을 쉽게 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언론에서 수능이 치러질 때마다 ‘쉬운 수능’이라고 난리를 쳤다. 그래서 이해찬 교육부 장관한테 ‘난이도를 좀 올려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절대 안 된다’였다. ‘대통령이 수능 쉽게 내는 걸 얼마나 칭찬하시는데 왜 어렵게 내려고 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1학년도 수능에서 만점자가 66명 나왔다. 380점(400점 만점) 이상의 고득점자는 전년도보다 5배 많은 3만5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른바 ‘물수능’ 논란이 급속히 확산됐다. 언론은 “쉬워도 너무 쉬웠다” “시험이 너무 쉬워 변별력이 떨어져 선발 기준으로 무의미하게 됐다”면서 교육당국이 수능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거세게 질타했다.
시험장에서 울음을 터뜨린 학생들
다음해 수능은 어려웠다. 2002학년도 수능 고사장을 스케치한 서울신문 2001년 11월 8일자 보도 내용이다.
“7일 수능시험을 보고 나온 학생들은 ‘지난해보다 훨씬 어려워 모의고사 점수보다 40점 이상 떨어지게 생겼다’면서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시험장마다 생소하고 까다로운 문제 때문에 시험을 그르쳐 울음을 터뜨리거나 중도에 시험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중략) 1,2교시 시험이 모두 어렵게 출제되자 서울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 시험장에서는 학생 6명이 ‘더 이상 시험을 보지 못하겠다’며 줄줄이 시험을 중도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불과 1년 전 ‘물수능’을 질타하던 언론은 이번엔 ‘불수능’ ‘짠수능’이라 명명한 뒤 “교육당국이 널뛰기 난이도로 아이들을 골탕먹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11월 12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난이도 논란에 대해 “쉽게 출제한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었다가 충격 받은 학부모와 학생들을 생각할 때 매우 유감스럽다”고 사과했다.
세칭 '일류대', 고득점자에만 초첨 맞춘 주장
전국단위의 국가고사가 매년 적정한 수준의 난이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상대적인 척도인 난이도가 유독 문제되는 이유는 고득점자를 편하게 뽑기가 어려운 일부 대학들의 이기심 탓이 크다. 문제가 쉬우면 고득점자가 많아지고 문제가 어려우면 고득점자가 적어질 뿐인데 말이다. ‘물수능’ 논란의 와중이던 2000년 12월 15일자 한겨레신문의 기자칼럼 내용이다.
“(수능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이들의 주장은 요컨대, ‘죽어라 공부한 학생이나 적당히 공부한 학생이나 점수 차이가 없으니, 시험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일부분만 타당한 것이다. 세칭 ‘일류대’, 그 중에서도 서울대를 염두에 둔 소수의 학생들에게만 실제적 어려움을 주기 때문이다. 수능 결과만으로 경쟁한다고 하면 분명히 이번 수능은 이들을 가려내는 기준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러나 다른 대학을 노리는 대다수 수험생들에게 이번 수능시험은 지난해에 비해 평균 점수가 높아졌다는 점이 다를 뿐 상황이 바뀐 건 거의 없다.”
국가고사의 난이도 홍역은 수능만 치른 것이 아니다. 1992학년도 학력고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쉬운 학력고사 고득점 경합 심할 듯”(한국일보, 12월 19일자), “상위권대 고득점 낙방사태, 도토리 키재기 출제논란”(중앙일보, 12월 25일자), “고득점 인플레 우열측정 혼선”(경향신문 12월 30일자). “시험이 쉬워 변별력을 잃었다”는 주장은 일부 특정대학과 고득점자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나오는 말인 것이다.
수능의 변별력 낮춰야 정상
이에 따라 국민의정부에 이어 참여정부도 대체로 평이한 수능 출제를 유지하고 있다.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수능의 변별력을 낮추고, 대학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을 줄인다는 기본 방향에 따른 것이다.
2007학년도 수능을 이틀 앞둔 2006년 11월 정강정 교육과정평가원장은 “60만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보는 시험인 만큼 출제위원들에게 문제를 쉽게 내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했다. 수능시험은 전반적으로 난이도를 들쭉날쭉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작년과 재작년 수능의 기조를 유지, 기본적으로 학교수업을 충실히 한 수험생과 EBS 강의를 들은 수험생이 풀 수 있도록 했다”고 말한 바 있다.
2008학년도에도 이러한 출제원칙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원장은 지난 7월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계획’을 발표하며 “2008학년도 수능시험은 교육과정 내용을 충분히 반영해 평이하게 출제될 것”이라고 밝혔다.
“0.5점 차이, 과연 공정한 선발인가?”
예비고사 시절이던 70년대와 학력고사와 수능의 80, 90, 2000년대의 풍속도. (위로부터)예비고사가 실시된 70년대 후반 서울의 시내 거리에 합격을 기원하는 플래카드. 88년 합격을 기원하는 어머니가 연세대 정문에 엿을 붙이는 모습. 99년 풍문여고에서 후배들이 선배들의 고득점을 기원하며 응원하는 모습. 2004년 11월 17일 풍문여고에서 고득점을 기원하며 수험생과 후배들이 기도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아직도 일부 명문대와 고교에서는 ‘행복은 성적순’이라고 믿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같은 날, 같은 문제로 치르는 국가고사를 선호한다. 게다가 변별력을 위해 이왕이면 소수점 아랫자리까지 세분화한 성적이 제공되기를 바란다.
“우리애가 학력고사에서 326점(340점 만점)을 받았다는데 떨어지다니 이럴 수가 있느냐.”
고득점자가 유난히 많았던 1993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는 ‘동점자 처리기준’에 따라 실력과는 전혀 무관한 생년월일까지 따져 합격여부를 결정했다. 동점자 처리기준은 제1지망자 우선, 학력고사 성적, 내신 성적, 면접 등급, 고교 재학생, 연소자 우선 순이었다. 총점에 의한 ‘극도의 석차화’가 낳은 웃지 못할 사건이었다.
국가고사가 “학생들을 일렬로 줄 세우고 결국 대학별 서열화의 근거를 제공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가 일괄 관리하는 시험이 존재하는 한 이런 폐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수능의 ‘자격고사화’ ‘폐지’ 논란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형일 한국교육개발원 원장은 “대학과 학부모가 수능이라는 ‘객관적 평가기준’에 의지하는 한 과감한 대입 전형은 탄생할 수 없다. ‘점수’라는 하나의 잣대가 아니라 내신 위주로 여러 줄 세우기를 해서 면접 등 다양한 전형을 통해 학생을 뽑으려면 대학과 학부모 먼저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우수학생=학업 성적 우수자’라는 등식은 완고하다. 대학입시가 성적에만 의존하는 게 과연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제기는 수십년 전부터 개진됐으나 성적 의존 관행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서명원 서울대 교수가 중앙일보 1971년 2월 2일자에서 던졌던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무자비하게 점수로 끊고 보면 0.5의 차이로 낙방의 고배를 마시게 되는 수험생이 있다. 애석한 마음으로 원서를 들여다보면 교육 환경이 좋지 못한 벽지 고교의 수석자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0.5를 더 따서 합격한 대도시 고교 출신의 평범한, 또는 열등한 학생이 과연 앞으로 4년간에 떨어진 전자보다 장래성이 있단 말인가? 과연 공정한 선발 방법인가?”
“입시제도에 연연하는한 미래는 없다”
참여정부는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교생활기록부의 비중을 높이고, 수능의 치열한 점수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성적을 등급(9등급)만 제공하는 내용의 ‘2008 대입제도 개선안’을 2004년 10월 28일 발표한 바 있다. 개선안은 시험 성적과 석차만을 강조하는 '선발경쟁'에서 벗어나 소질과 잠재력을 갖춘 학생을 발굴해 교육시키는 대학입학 전형제를 마련한다는 취지다.
당시 교육부 차관이었던 김영식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실록 교육정책사’ 특별팀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8 입시안은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내신에 중심을 두고 수능을 보조 자료로 활용할 것을 권장한 것이다. 대학들도 더 이상 편하게 수능점수로 한 줄 세우기 하지 말고 면접 등 다양한 전형을 활용해 가능성·잠재력 있는 학생을 뽑도록 노력해야한다.”
문민정부의 ‘5·31 교육개혁안’을 주도한 이명현 당시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교육부 장관 역임, 전 서울대 교수)도 마찬가지 뜻을 전했다.
“시험은 출제자의 상상력 속에 학생을 가두게 돼 있다. 출제자보다 나은 학생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점수 위주로 학생을 뽑는 것은 다양한 학생을 다양한 방식으로 뽑자는 5·31 교육개혁안 정신의 적이다. 그런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입시에 관여하는 국가고사는 없어지는 게 좋다. 그래야 대학서열화와 학벌사회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 우리가 입시제도에 연연하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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