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개발로 탄생한 최초의 국산헬기인 한국형기동헬기(KUH) ‘수리온(Surion)’’ 개발
과정에는 많은 이들의 노력과 수고가 있었다. 이들의 손으로 한국은 이제
세계 11번째 독자 헬기 개발국에 진입했고, 항공선진국으로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수리온 개발에 참여한 기술자 3인의 애환이 담긴 숨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
붕어빵 아저씨로부터 용기를 얻다 (문장수 한국항공우주산업(주)
책임연구원)
헬리콥터 로터 블레이드란, 헬리콥터가 비행이 가능하도록
양력을 발생시키는 헬리콥터의 가장 중요한 구성품 중 하나로 고정익 항공기의 날개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세계적으로 기술이전을 꺼리는 대표적인 품목으로 기술 자료의
공개가 제한되어 유사 기술자료 획득이 어렵습니다.
KAI는 로터 블레이드
개발경험이 전무한 상태여서 기술협력사인 유로콥터사(EC사)의 기술 자료를 크게
기대하였으나, EC사는 프랑스어 문서를 영어로 번역해야 한다는 구실로 기술자료
제공을 지연하는가 하면, 그나마 애타게 기대했던 자료가 수준이하이거나 핵심을
피해가는 자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블레이드 설계 관련 소프트웨어의 제공을 요청하였으나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는 등 매우 암담한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국내 연구개발로 탄생한 최초의 국산헬기인 한국형기동헬기(KUH) ‘수리온(Surion)’이 31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열린 출고 기념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방위사업청>
특히 ‘07년초
기술협의를 위해 프랑스로 출장 갔을 때 EC 담당자와 협의후 엔지니어를 통해 전달받은
자료가 담긴 CD를 EC 보안부서가 공항까지 쫓아와 회수 해 가는 등 EC는 기술이전에
무척 소극적 이었습니다.
KAI는 이처럼 열악한 환경속에서 설계이전에 블레이드의
제작개념을 파악하려는 제품연구를 착수하였습니다. 실제 블레이드를 제작하고자
하는 몰드(흔히 얘기하는 붕어빵틀)와 오븐이나 오토클레이브(붕어빵 기계) 등은
1년 이상 소요되는 장비들이어서 경남 밀양에 위치한 협력업체를 수배하게 되었고,
회사를 떠나 한 겨울에 타 업체에서 제작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협력업체에서
블레이드를 성형할 오븐은 확보하였으나 선행제작 제품을 만들기 위한 몰드는 급히
제작하여야 하는 상황에서, 제작지원을 수행하는 유러콥터의 기술자는, 그렇게 촉박한
일정으로는 몰드 제작이 불가능할 거라며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KAI는 보란
듯이 첫 번째 제품을 제작하며 EC 기술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불완전한 형상, 규격이 다른 재료, 온도, 습도 등 열악한 환경과 EC 기술자의 비협조
등으로 결국 쓴맛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이로 인해, 개발자간에는 누적된 피로와
개발 실패의 두려움 등으로 인해 설계자는 생산의 준비부족을, 생산은 설계의 기술력
부족을 험담하는 상황으로 분위기는 변하였습니다.
암울했던 어느날 사천
버스터미널 앞을 지나다 붕어빵을 사먹게 되었는데 우연히 붕어빵 빵틀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로터블레이드 몰드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붕어빵 아저씨에게 “붕어빵을
성공적으로 굽는데 얼마나 걸렸습니까”하니 붕어빵 아저씨 왈, 처음 굽기 시작한
후로 약 3개월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속안의 단팥 물이 흘러나오지 않는 제대로 된
붕어빵을 구울 수 있었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붕어빵을 제대로 굽는데도
3개월이 걸리는데 최신 복합재 블레이드 제작에서 한번의 실패로 좌절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용기를 내어 연구를 시작하였고 설계와 생산은 한 팀이 되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차례 어려움이 더 있었으나
품질개선 및 공정개선을 통한 공정 확인용 블레이드 개발을 완료하였고, 이후 시제품
일정을 준수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독자 개발로
해외협력사에 역수출 상담중 (김외철 한국항공우주산업(주)
책임연구원)
헬기의 핵심 구동품 등에 대해서 상태 모니터링을 통하여
헬기 임무를 수행 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항상 유지하게 하는 HUMS(Health and
Usage Monitoring System, 상태감시장치)는 국내 최초로 헬기에 적용되는 장비로,
해외의 경우 정비성 및 비행안정성 확보에 필수적인 장비로 인식하여 최근에는 대부분의
헬기에 적용하는 장비로 DAPU/PIP/CQAR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HUMS는 국내
원천기술 부족으로 프랑스 GEA사와 "협력개발"로 분류되었으며 국내에서
국산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계약에 의해 원천기술을 제공 받도록 되어 있었으나,
계약 발효후 GEA사는 PIP/CQAR장비는 GEA사도 구매하는 장비이므로 기술이전이 불가함을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오며 문제가 발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GEA사가
KAI에 제공한 PIP/CQAR 기술자료라는 것이 달랑 10페지 정도의 외형치수와 관련된
자료로 독자개발하기엔 터무니없는 자료들로 우리를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KAI는 국내업체에 국내독자개발을 제안하였고, KAI는 최대한의 기술지원을 약속하였습니다.
또한, 국산화율 달성 및 독자 기술확보를 위하여 국내협력업체로 선정된 위다스사와
장기간 협의을 통하여 "기술확보는 필수"임을 공감하였고, 향후 수출을
고려하여도 국내개발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당시 해외업체에 제공하는
10여페이지 정도의 문서 하나에 의존해 개발하려는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KAI의 도전에
우려를 나타내며 원천제작업체의 직구매를 권유하기도 하였으나, 10여년 이상 체계설계를
한 KAI의 경험과 초고주파 통신 중계기를 독자개발해온 위다스의 기술력에 대한 믿음으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개발에 착수하였습니다.
사실, 2,3년만 문제없이
동작하면 되는 민수제품만을 만들어온 위다스의 개발경험은 30년을 문제없이 동작해야하는
군수제품개발을 위해 서로 손을 맞잡은 것은, 더구나 경험많은 해외업체도 시험을
제외한 개발만으로도 3년 걸리는 일을 2년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개발하여 인증시험까지
거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KAI와 국내업체인 위다스는
분당과 사천을 오가며 2,3일에 한 번씩 관련 기술회의를 가지며 개발에 매달렸습니다.
기초설계가 끝나갈 무렵 위다스의 시스템 설계를 담당하는 중요한 엔지니어중 한명이
과다한 업무 스트래스로 인해 퇴사하여 개발일정에 위기를 맞기도 하였지만, 할 수
있다는 열정으로 개발에 매달렸고, 개념설계, 기초설계, 상세설계의 과정을 거쳐
최종 품질인증시험 단계를 2년 6개월여의 짧은 시간에 개발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개발후
국내 제작한 시제품을 가지고 담당 엔지니어가 수차례 HUMS 원천기술제공업체인 GEA사를
방문하여 시험을 결과, GEA사로부터 "Perfect"하다는 판정을 받았으며,
GEA사 담당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현재 독자 개발에 성공한 PIP/CQAR은
HUMS의 원천기술제공업체인 미국 GEA사가 약 270여대의 구매를 위해 국내협력업체인
위다스사와 비공식 협의 중에 있습니다.
◆ 엄마손
헬리콥터 (김세희 한국항공우주산업(주) 선임연구원)
학교
졸업을 앞두고 손에 쥐고 있던 몇 개의 취업 카드 중에서 망설임 없이 KAI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든 건 T-50 초도 비행 동영상이었다. 첫 비행을 마치고 내려온 조종사에게
물을 뿌려 축하 세례를 하고 몇몇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항공기에 문외한이었던
나의 가슴에 불을 당기고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아무도 보장하지 못하는 거대 프로젝트에 오로지 해내겠다는 신념만가지고 10여 년의
인생을 투자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같은 열정을 나눌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영광이었고 수리온 개발사업은 T-50과 같은 감격을 내 손으로 실현할 수
있는 꿈같은 기회였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게 된 KHP 업무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기술 개발은 물론이고 짧은 사업 일정을 소화하기 위한 어려움이 만만치
않았다. 주중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평일처럼 출근해야 하는 일정은 임산부인
나에겐 일과 가정 사이에 많은 가치관 혼란을 야기시켰고 의사에게 조심하라는 주의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
출산 휴가를 가기 위해 짐을 꾸리던 날은 시제기 제작에
앞서 헬기의 해석 및 설계 결과를 함께 검토하고 최종 확인을 하는 중요한 행사인
CDR을 4개월 앞둔 때였다. 엔지니어에게는 3년간 수행한 업무를 최종 평가 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출산 휴가는 CDR 2주전에 회사로 복귀하는 일정이었지만 그 동안 해온 업무를
내 손으로 마무리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으며 공백 기간 동안 팀원들에게
업무 부담을 안겨줘야 하는 것이 미안해 발걸음을 떼기 힘들었다.
더구나
나의 업무를 넘겨받은 후임자는 신입사원이라 내가 하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노파심이 없지 않았다. 나의 우려는 일주일 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임자는 조금만
큰 일이 생기면 나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했고 제왕절개 수술 후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화로 업무 지원을 해줘야 했고 때로는 전화 소리 때문에 무릎
위에 겨우 재워놓은 아기가 깨기 일쑤였다.
그렇게 삼 개월을 보내고 회사
복귀를 준비할 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일을 그만두는 것을 고민했다. 엄마 없이는
혼자서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심지어 스스로 잠드는 것조차 해내지 못하는 작은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놓고 일을 나간다는 것은 아기에게는 물론이고 나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었다. 한국 최초 헬리콥터 개발 사업에 참여해서 대한민국의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데 일조하겠다는 꿈, 여성 엔지니어로서 멋지게 성공하여 후배들에게,
미래의 내 딸에게 훌륭한 롤 모델이 되겠다는 꿈은 어린 시절의 치기로만 여겨졌다.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을 보며, 그런
엄마들을 향해 반갑게 달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여자는 아기를 낳고 아이들을
돌보고 가정을 가꾸는 것이 자연의 섭리임이 틀림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아파트 상공으로 헬리콥터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헬리콥터 소리가 너무 반가워서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가 모빌을 보고 있던 아들을
안고 나와 헬리콥터를 가리키며 이야기 해주었다.
“은산아, 저게 헬리콥터야.
엄마는 헬리콥터를 만드는 사람이야. 헬리콥터는 은산이가 살고 있는 집보다 무거운데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어. 신기하지?”
그래! 내가 언제부터 자연의 섭리에
충실하여 살았던가. 나는 8700kg의 거대한 기체를 하늘에 띄우는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가
아니었나. 아직 나는 내가 만든 헬기를 하늘에 띄울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조차 해보지
못했다. 이렇게 중단해 버리면 아들에게 ‘헬리콥터를 만드는 엄마’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2009년 7월 31일. 엄마 손으로 개발한 헬리콥터가 첫 선을 보이는
날이다. 건강하고 예쁜 아이를 위해 정성스레 태교를 하며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처럼 KAI의 모든 엔지니어들이 공들여 설계한 헬리콥터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감격적인 날이다.
한편에서는 국내 기술로 개발된 헬기가 드디어 나왔다고
축하하지만 우리에겐 이제 시작이다. 지상시험을 통해 우리가 설계한 대로 잘 만들어졌는지
검증을 하고, 2010년 3월 첫 비행 후 2년여 기간의 비행시험을 통해 각종 성능을
확인해야 비로소 우리 헬리콥터를 인증 받을 수 있다.
그때까지 엄마로서
아들이 뒤집기를 시작하는, 처음 발걸음을 떼는 소중한 순간들을 함께 하진 못하겠지만
은산이에게 멋진 헬리콥터를 선물할 것이다. 헬리콥터를 개발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20년 뒤 은산이가 군대에 가게 되면 그때 은산이가 타는 헬리콥터가
엄마가 만든 헬리콥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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