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반갑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헬기사격 및 전투기 출격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의 위원장 이건리입니다.
먼저 오늘 언론 브리핑을 하게 된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5.18 특조위는 지난 9월 11일 출범하여 약 40여 일 동안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 및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에 대해 진상규명을 위해 조사활동을 해 왔습니다.
현재까지 조사한 내용을 국민들께 알려드리고 향후 진실과 정의를 위한 보다 더 많은 국민들의 참여하에 진상 규명을 더욱 철저히 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였습니다.
다음 헬기사격 의혹과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을 조사하게 된 배경과 직접 관련자들의 입장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5.18 당시 헬기사격 의혹은 1995년 7월 18일 서울중앙지검과 국방부, 검찰 외의 합동수사결과 발표에서 당시 육군항공부대에 근무했던 관계자들의 주장과 군 관계 자료를 토대로 헬기사격은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었고 그 후에는 국가기관에서 추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특히 2007년도 국방부 과거사위원회에서도 헬기사격 의혹은 그 조사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헬기사격에 의한 피해와 목격진술은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은 최근 큰 이슈로 대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의혹을 받고 있는 당시 및 현재 군 관계자들은 ‘이미 40년이나 다 되어 가는 지나간 일을 끄집어내어 왜 분란을 일으키느냐.’, ‘왜 공연히 쓸데없는 일을 하여 군의 명예를 떨어뜨리느냐.’ 하면서 진상규명에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모습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5.18 특조위의 조사활동의 여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5.18 특조위는 한마디로 가짜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군 자료 중 중요한 부분은 제대로 기재되어 있지 않고 보존연한의 경과 등으로 폐기되었으며 존안된 자료들 일부는 왜곡되고 변질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37년 전의 군 관계자들의 진술들 중 중요한 부분들은 기억이 없다거나 사실과 다른 허위진술들이 넘쳐납니다. 자전적인 체험수기들도 천편일률적이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기재되거나 군에 불리한 내용은 누군가에 의해 삭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군의 입장에서 부정적인 시각 내용이면 회송하여 재작성하도록 지시한 사실도 확인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5.18 특조위는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가짜와의 전쟁에서 정정당당하고 의연하게 그 소임을 다해 갈 것입니다.
5.18 특조위의 조사활동의 주요 내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5.18 특조위는 1988년과 1989년에 광주청문회, 1995년부터 1997년까지의 수사와 재판, 2005년부터 2007년까지의 국방부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수집된 자료와 증언에 대한 검토 작업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서 새로운 자료와 새로운 증언을 청취하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5.18 당시 계엄군으로서 광주의 진압에 참여한 공수여단, 항공여단, 전교사를 비롯한 육군본부, 공군본부, 합참, 기무사 등 관련되는 모든 부대의 전투상보, 상황일지, 부대사 등은 각종 자료들에 대한 정밀분석과 함께 이에 추가하여 새롭게 주한미대사관, 한미연합사, 미7공군, 주한일본대사관 등 5.18과 관련하여 미국과 일본이 우리 정부나 국내 주재 외교관 등 공무담당자, 그리고 자국민들과 교환한 정보 등 5.18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고자 협조를 요청하였습니다.
또한, 이미 알려져 있는 노태우 정부하에서의 1988년도에 511위원회 또는 511연구반, 분석반 외에도 조금 후에 말씀드릴 그보다 3년 앞선 전두환 정부하에서의 1985년 6월 국무총리실과 안전기획부의 80위원회 등 국가기관을 통해서 5.18 관련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그 진상을 추적해 가고 있습니다.
80위원회와 511분석반 등 1985년도부터 국가기관이 파악하여 정리한 역사적 자료들을 발굴하여 5.18 특조위가 부여받은 헬기사격 및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에 관한 진실규명에 더욱 신뢰성을 제고해 나가고자 합니다.
암울했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 광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5.18은 과거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두려웠고 조심스러운 대화 주제였으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조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를 하면서 이제는 역사적 진실을 밝혀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점점 확산되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분들이 진실규명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분들은 처벌을 원해서 증언한 것이 아니고 역사적 진실이 규명되어야 하기에 증언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지난 9월 20일에는 진실규명을 위한 범국민적 제보 접수를 광주광역시와 언론에 요청드렸습니다. 그 결과, 기존의 제보자나 목격자 외에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용기로 증언을 적극적으로 해 오고 계십니다.
5.18 특조위는 지난 40여 일 동안 헬기사격 의혹에 관하여는 목격자 등 19명을 조사하였고,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에 관해서는 조종사와 무장사 등 29명을 조사하는 등 총 50명을 조사하였습니다.
또한, 헬기사격을 목격하거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광주 현지의 장소들을 모두 위원장을 포함하여 직접 방문하였고, 그리하여 그 증언들의 신빙성을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각급 부대를 방문하여서 수집한 관련 자료들과의 교차 점검을 실시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5.18 관련 단체들이 소장하고 있는 탄약류의 감정을 요청하여 그 결과가 나오면 우리 위원회 조사에 반영할 예정입니다.
5.18 특조위는 조사위원 9명 모두가 직접 목격자들로부터 증언을 청취하고 현장을 방문하는 등 조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매주 2회씩 조사위원회를 열어 조사범위와 조사대상자 선정, 기존 조사결과 검토와 분석 등을 실시해 나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5.18 특조위의 향후 예정 사항과 각오입니다.
5.18 특조위는 37년 전부터 이어져온 대한민국 군에서의 조작된 자료들 속에서도 역사적 진실을 발굴해 나가는 과정에서 37년 전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에 있었던 군 관계자들의 견고한 침묵의 카르텔에서 벗어나 진실을 향한 용기를 발휘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비역 군 관계자들의 단체에 5.18에 참여한 군인현황과 그곳에 참여한 분들이 그 당시 헬기사격 및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과 관련해 수행했던 역할이나 목격했던 내용에 관해 당당하게 우리 특조위에 출석하여 진실을 증인해 줄 것을 제안합니다.
벌써 37년이 지났습니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역사적인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조작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 마음을 가렸던 데에서 이 땅에 정의를 세우고 불의를 몰아내며 진실의 역사를 새로 써 나가는 데 동참해 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진실에 침묵해 왔던 분들의 인간에 대한 존엄과 양심과 선의를 믿습니다. 불의에 침묵하거나 묵인하는 것은 또 다른 불의입니다. 여러분께서 아시다시피 진실은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또한 거짓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진실로 둔갑될 수는 없습니다.
5.18 목격자들은 그 당시 진상을 증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5.18 특조위가 진실을 진실대로 규명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실정으로 그 아픈 상처가 매우 깊으며, 진실규명에 소홀했던 정부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5.18 특조위의 역할이 참으로 중차대함을 느꼈습니다.
5.18 특조위의 진상규명 작업은 광주 시민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자유와 인권, 평화와 치유를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역사적인 과제입니다.
저희 5.18 특조위는 그 소임을 마치는 순간까지 좌고우면하지 않고 머뭇거림 없이 해나가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특조위는 새로운 역사를 써가는 하나의 주춧돌이 되고 우리 국민과 대한민국 군의 과거의 잘못을 망각하지 않도록 채찍질하는 건강한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특조위는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가짜와의 전쟁에서 정정당당하고 의연하게 그 직무를 다함으로써 정의의 역사, 진실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나갈 것입니다. 언론과 국민여러분들께서 이러한 5.18 특조위의 진상규명에 적극 참여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이어서 80위원회에 관련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전두환 정부는 1985년 6월 80위원회를 구성하여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방안을 마련하였습니다.
80위원회는 전두환 정부는 1985년 6월 5일 광주사태 진상규명 관계장관대책회의를 개최하여 당시 국회 질의 및 미 문화원 점거사건 등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사회 각계의 진상규명 요구에 대한 대응으로 안전기획부, 현재 국가정보원의 전신으로서 당시의 안기부장은 장세동 씨입니다. 안전기획부의 주관하에 범정부 차원의 대책기구를 설립하였습니다. 국방부 5.18 특조위가 발굴한 1985년 6월 5일 관계장관대책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내무부, 법무부, 국방부, 문공부, 육군본부, 보안사, 치안본부, 청와대, 민정당, 안기부가 참여하는 가칭 ‘광주사태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기로 논의하였습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광주사태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종합 검토하여 광주사태 백서를 발간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업무 추진을 위해서는 실무위원회를 편성하였는데 실무책임은 안기부 2국장이 담당하고 수집정리팀, 분석작성팀, 지원팀 등 총 3개의 실무팀과 이들 실무활동을 관리하는 심의반으로 구성하였습니다.
1985년 6월 5일 관계장관대책회의 자료로는 조직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데 광주사태의 진상규명 실무위원회 위장명칭을 ‘80위원회’로 명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부 차원의 기구 구성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 했던 조치로 보여집니다.
위장명칭의 사용을 회의자료에 명기한 것은 이 기구의 구성과 활동에 대한 보안 문제를 고려한 것으로써 이번에 함께 발굴한 실무회의 자료에 따르면 육군본부의 경우에는 자료제출 시는 처장급 이상 장군 서명 후에 송부하고 ‘관계자 외 열람 금지’ 등 철저한 보안조치를 지시하였습니다.
다음 80위원회의 운영 과정과 활동 내용입니다.
국방부 5.18 특조위가 이번에 발굴한 4건의 자료에 따르면 1985년 6월 5일 관계장관대책회의 직후에 당일 오후 4시에 안기부 회의실에서 첫 번째 위원회 회의를 개최하였고 그때 실무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논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1985년 6월 6일 광주사태 실상 홍보준비위원회 회의자료 제2차에 따르면 부장님, 안기부장으로 해석되는데요. 부장님 지침에 따른 작업 방향을 1단계, 사태관련 재자료의 종합백서와 2단계, 1단계 작업과 병행해서 홍보대책수립으로 구분하고 각 기관별 수집자료 목록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습니다.
내무부, 치안본부, 육군본부, 보안사, 대검 등 기관별로 수집자료 목록을 제시하였으며 이렇게 제시된 자료 목록은 각 기관에서 실제 수집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사실은 육군본부 민사군정감실의 80위원회 회의자료에서 확인됩니다.
육군본부 민사군정감실 80위원회 회의자료는 민사군정감, 작전참모부장, 참모차장으로 이어지는 결재라인의 결재를 획득한 자료로서 이 자료에는 인사참모부, 정보참모부, 작전참모부, 군수참모부, 헌병감실, 법무감실, 민사군정감실, 관리참모부, 본부사령실의 각각 역할과 함께 수집할 자료목록까지도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있습니다.
특히 육군본부의 회의자료에 따르면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의 핵심쟁점의 하나인 계엄지휘체계, 작전명령 근거, 작전지휘체계, 일자별, 지역별, 부대별 작전상황 특히 진압과정 실탄사용량 등을 관련기관에서 확인·보고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음 80위원회 자료발굴의 의미와 향후 과제입니다.
1988년 국회청문회 과정에서 실체가 알려진 511분석반 이전에 이미 범정부 차원의 대응기구가 구성되고 운영됐다는 사실을 정부 문서를 통해서 확인하였습니다.
1988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 과정에서 보안사를 중심으로 청문회 대책기구인 511분석반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방부 저희 5.18 특조위에서 파악한 80위원회 경우는 511분석반 활동보다 무려 3년이나 앞서 구성·운영되었으며 80위원회의 활동 목표가 광주사태 백서발간과 홍보대책이었다는 사실을 정부의 공식 문서를 통해서 확인하였습니다.
특조위가 발굴한 4개 관련 문건에서 3개의 서류는 구체적인 결재라인이 명시되어 있으며 책임자들의 결재가 이루어진 자료입니다. 가령 1985년 6월 5일 관계장관대책회의 자료는 참모총장의 결재를 득한 자료로 보입니다.
다음 80위원회의 구체적인 활동 결과와 광주사태 백서의 존재 유무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조위가 발굴한 자료에는 안타깝게도 80위원회의 구체적인 활동 결과와 그 결과물인 백서의 존재를 현재까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에 당시 주관기관이었던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의 광주사태 백서의 보존 여부에 대한 확인을 오늘 요청할 계획입니다.
또한 80위원회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의 진술을 확보하여서 자료에 드러나지 않은 구체적인 활동 내역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참고로 국방부 5.18 특조위는 오늘 국정원에 제출 요청하는 80위원회의 관련 자료 외에도 5.18 민주화운동 관련해서 비밀자료를 포함한 일체의 자료 제출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이번 주 중으로 제출할 것’이라는 통보를 최근에 받았습니다.
80위원회의 활동결과가 군 기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군 자료 일부를 확인하였습니다. 특조위가 80위원회 문서와 함께 발굴한 1988년도 군사연구소가 발간한 광주사태 작전 참가요원 체험수기는 1985년과 1988년 두 번에 걸쳐서 27명을 대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군사연구소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1988년 당시 체험수기의 작성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1981년 6월 8일 제공된 체험수기에 따르면 ‘5월 21일 도청 앞 집단발포의 경우, 오후 1시 30분 자위권 보유 천명이 하달되었다.’ 그런 내용이고, 특히 간부급의 체험수기에는 ‘무릎 쏴 자세로 집단사격을 하였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담겨져 있습니다.
1980년과 1981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무사 제출자료의 체험수기와 1988년 군사연구소가 발간한 체험수기는 그 내용의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고 특정사건에 대해서는 다양한 수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체험수기의 수정과 변화에 80위원회와 같은 정부차원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당시 1985년 사회적·정치적 상황을 보시면 80위원회가 구성되었던 1985년 6월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분출했던 시기로서 전두환 정부는 국회의원 선거 참패로 처한 정치적 위기를 노신영 국무총리 임명과 각 부처 장관에 대한 개각으로 돌파하려 했습니다.
총리로 새롭게 임명된 노신영은 직전에 안기부장으로 재직하였으며, 후임 안기부장인 장세동이 실무위원회인 80위원회를 주도하면서도 국무총리실 산하의 광주사태 진상규명위원회를 두게 된 배경은 이런 정치적 관계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으로 저희가 우선 발굴한 내용 중에 80위원회 관련, 그러니까 정부차원에서 역사적 사실에 관해서 뭔가 조작과 왜곡을 시도했다는 그 부분에 관해서 앞으로 철저하게 조사해 나가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질문 답변] ※마이크 미사용으로 확인되지 않는 내용은 별표(***)로 처리했으니 양해 바랍니다.
<질문> 80위원회에 관해서 이제 설명해 주셨는데요. 80위원회가 헬기사격, 그리고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만약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면 이것이 헬기사격과 전투기 출격대기를 넘어서 5.18에 관해서 포괄적으로 진상규명을 하는 그런 신호로 봐도 되겠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답변> 저희가 보기에는 과거 1980년도에 있었던 광주에서 계엄군의 진압과정에 있었던 모든 부분에 대해서 저희가 전반적으로 다 살펴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군 관계된 현재 존안된 자료에서 거짓된 내용들이 너무도 많이 있기 때문에 그 거짓된 자료가 생산된 과정을 살펴보고, 그 이전에 원자료를 추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헬기사격 의혹 부분의 관건은 ‘헬기사격이 있었느냐? 있었다면 실제 행위자가 누구고, 그에 따른 발포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공식적인, 비공식적인 지휘체계에 관한 부분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하기 때문에 5.18 전체에 관한 그 부분은 연관성 있는 부분에 한해서 조사해 나갈 예정입니다.
<질문> 80위원회와 관련해서 지금까지 말씀해 주셨는데, 5.18 특조위가 처음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헬기사격과 전투기 출격대기 유무에 대한 확인’이었습니다.
지금 일단 80위원회와 관련해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밝혀낸 것도 성과라고 하지만, 진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답이 없었는데, 그렇다면 헬기사격과 전투의 출격대기 관련해서 지금까지 조사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나요? 그리고 보통 그런 거라면 제1항공여단이나 공군작전사령부나 그런 곳에 있었던 자료, 전투상보라든가 아니면 대기, 출격대기명령서 이런 게 문서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거든요? 원자료를 추적하고 계신다고 하셨으니까 그 부분은 어느 정도까지 추적이 됐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답변> 예. 가령 저희가 1980년도 작성된 제1항공여단의 상황일지를 입수해서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서 얼마만큼 사실대로 정부 문서가 작성되지 않았냐는 것을 예를 들면, 1항공여단 상황일지 5월 27일 상황입니다.
03시 30분 작전개시 충정, 03시 57분 도청 탄약점령, 04시 05분 도청 완전 점령, 05시 10분 광주 완전 점령, 전과·폭도 사살 2명, 생포 207명, 군인 4명 부상, 민간여자 1명 부상. 이게 제1항공여단의 1980년 5월 27일 상황일지의 전부입니다.
그 내용을 전체 다른 일정과 비교해 보면 그날그날 상황을 적어서 존안하는 게 아니고 특정시점에서 이 상황일자가 별도로 작성되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거짓된 자료로 진실규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까 511분석반 부분도 저희가 계속 조사해 나갈 것이고, 80위원회도 그런 의미에서 반드시 규명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그 자료들은 신빙성이 없다고 치고요. 그런데 아까 헬기 기총사격 관련해서 19명, 공군 전투기 출격대기 관련해서 29명을 진술을 청취했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답변> 예.
<질문> 특히 헬기 그쪽 사람들이야 예전부터 말을 잘 안 했었던 사람들인데 이 전투기 조종사들은 굉장히 확신을 갖고 얘기를 했었단 말이죠. 어떤 진술들을 받아왔나요? 지금까지.
<답변> 구체적인 진술 내용을 여기에서 설명하기는 아직 최종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이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37년 전에 있었던 내용의 어떤 상황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관해서도 언론에 보도된 제보자들을 충분히 조사하고 있고, 또 그와 관련해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또 다른 지역의 해당 언론에 제보했던 부대만 하지 않고 다른 전수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질문> 아니, 잠시만...
<답변> 그런데 상당 부분이 37년 전에 이루어졌던 일이기 때문에 기억이 안 난다고 말씀은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기억이 안 난다고 해서 그게 진심으로 기억이 안 나는 것인지, 아니면 증언을 회피하는 것인지 그 부분은 저희가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질문> 아니, 그 서류는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셨는데, 지금 중간조사 결과인데도. 그러면 진술에 대해서도 어떤 평가를 하셔야 되는 것 아닌가요?
<답변> 물론 하고 있습니다. 예. 그래서...
<질문> 그러니까 지금 그걸 해 달라는 거예요.
<답변> 저희들 위원회 위원 9명이 그 부분에 관해서 검토 중에 있습니다.
<질문> ***
<답변> 그것은 용어의 의미는 다를 수가 있는데요. 일단 저희는 그 당시 최고책임자가 아직 조사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확정적으로 단정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고, 1985년도에 있었던 80위원회 또 1988년, 1989년에 있었던 511분석반 위원회 그 부분에 관해서 조사 활동을 하겠다는 그런 말씀을 드린 겁니다.
<질문> ***
<답변> 그렇게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질문> ***
<답변> 그 부분에 관해서는 최종적으로 저희가 조사 활동을 마치고 말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먼저, 80위원회와 관련해서는 지금 처음으로 얘기가 듣게 되는데, 그러면 80위원회, 그 1985년 6월 그 당시하고, 그리고 511분석반이 있었던 1988년하고 두 차례에 걸쳐서 조작이나 왜곡 아니면 문서에 대한 조치가 있었다고 저희가 판단해도 되는 건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답변> 저희는 그 부분에 관해서 이 단서를 발굴했기 때문에 조사를 철저히 해야겠습니다.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여지는데, 또 1985년에 만들어졌던 80위원회가 1988년에 만들어졌던 511위원회나 분석반으로 업무가 인계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거는 아직 단정적인 안인데요. 그 작업으로, 일환으로 백서를 발간한다든가 업무 후속조치는 계속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은 합니다마는 여기서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질문> 헬기 사격하고 전투기 출격대기 관련해서는 지금 40일 동안 뭐 밝혀낸 게 없는 거죠?
<답변> 정부 차원에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1995년도 1차 수사... 장윤석 부장이 주임검사로 했던 서울중앙... 서울지검과 국방부, 군검찰 합동수사 1차 수사 때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다고... 그 당시에도 목격자들의 증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 관계자의 진술 또 군 자료를 토대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다고 그렇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지금 조사하는 것은 두 가지로 봅니다. 지상군에서의 총격은 저희 조사범위가 아니고, 헬기에서... 헬기, 전에 쓰는 용어는 헬기 '기총소사'라고 해서 헬기에 거총된 사격만을 지칭한 것처럼 보여지고 조사를 했지 않나 하는 그런 의문이 들고, 그래서 저희는 두 가지입니다, 쉽게 보면.
'헬기에 거총된, 무장된 장비로 사격이 있었느냐?' 또는 '헬기에 탑승한 승무원이나 별도의 군인에 의해서 개인화기로 인한 사격이 있었느냐?' 두 가지 다 가능성을 두고 조사하고 있습니다.
<질문> 그러니까 그 헬기 기총소사나 전투기 출격대기 관련해서 40일 동안 과거의 것 말고, 기존에 쌓였던 자료 말고요. 새로운 증거들이나 새로운 진술들을 통해서 밝혀낸 게 있느냐, 그게 궁금한 거거든요. 그래서 그게 있는 줄 알고 기자회견 한 줄 알았던 건데.
<답변> 그렇죠. 그런데 지금 결론을 제가 말씀드릴 수는 없고 아직 저희 위원회에서 결론을 도출한 거는 아닙니다. 그러나 상당수 희망을 가지고 지금 조사 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질문> 고생하시는데요. 다른 게 아니고 이 지금 기자회견을 보면서 좀 안타까운 게 지금 심증을 너무 많이 얘기를 하셔서, 지금 기자들은 사실 '어떤 게 사실이고 어떤 게 이번 조사를 통해서 드러났느냐?'를 저희들이 기사를 써야 되지 않습니까? 물론 추정할 수 있고 심증할 수 있고 5.18 광주민주화항쟁이 많이 은폐됐다는 건 저희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런데 지금 오늘 발표하신 거는 결국에는 ‘1988년 이전 3년 전에 5.18과 관련된 정부 차원의 대책기구가 설립됐다.’ 이거 하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리고 ‘그 기구의 역할이 5.18 관련 백서발간이었다.’는 것이고 그러면 이 기구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느냐는 또 밝혀야 되는 부분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답변> 예.
<질문> 그러니까 지금 오늘 기자회견에서 나온 것은 3년 전에 ‘1988년보다 3년 앞선 1985년에 80위원회가 구성이 됐다.’ 이거 하나잖아요. 그렇죠?
<답변> 그 점은 수사 과정의, 조사 과정의 자료 중 하나를 설명드렸고요. 그전에 저희들이 조사위원회에서 40일 동안 해왔던 것을 간략하게 보고드린 거죠. 그런데 구체적으로 설명드릴 수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질문> 아니, 저희들이 써야 될 게 뭔지를 저희들이 잘 알 수가 없어서 여쭤보는 겁니다.
<답변> 그러니까 지금 전투기 출격대기 관련해서는 금년에 이슈화됐던 부분이고 물론 1980년 당시에도 ‘폭격설’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분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정부 차원의 조사라든가 언론보도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 1980년 당시에도 광주 폭격설은 ‘폭탄 투하’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헬기사격 부분도 주로 그 당시에는 물론 아시겠지만 정치적인 상황으로 해서 역사적인 심판에 맡긴다는 그런 큰 줄기 때문에 피해자나 목격자들의 증언은 상당히 가치 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저희 조사위원회에서 그 부분에 관한 증거 가치를 새롭게 판단해 나갈 예정이고, 기본적으로 헬기사격 의혹 관련해서는 1980년 당시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기 때문에 기존의 검찰이나 청문회에서 증언했던 분들을 제외하고 새롭게 증언자, 제보자를 발굴해 나가고 있습니다.
<질문> 특조위의 구성 목적이 헬기 기총소사와 전투기 출격 의혹을 조사하는 건데, 지금 위원장님께서 말씀하셨는데 80위원회가 또 새로 발굴돼서 특조위 조사 구성 범위라든지 그게 또 확대가 되는 겁니까? 그러면 인원도 늘어나고 조사기간도 늘어나는 건가요? 아니면 이게 앞으로 초점이... 그러니까 저희들이 이해하기는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그 두 가지 사실에 대한 사실 관계 확인이 아니라 ‘은폐’ 그러니까 5.18 민주화운동에서 정부차원의 조직적 은폐로 이게... ‘변질’이란 표현을 써서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바뀌는 건지 이 두 가지...
<답변> 저희의 조사대상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첫째,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사람의 증언 중요하고 또 관련된 자료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본 자료를 추적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왜곡된 부분들 반드시 규명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사활동 기간 부분에 관해서도 물론 지금 현재 특조위 훈령, 국방부 장관의 훈령으로서는 81일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11월 30일까지로 돼 있지만 조사해야 할 내용에 따라서는 장관님께서 검토한 의견 또 저희 위원회에서 검토한 의견을 해서 저희 생각으로는 ‘조사활동 기간은 연장될 수 있다.’ 그렇게 예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1차 기한 내에 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께서 아시다시피 국회에 이미 제출된 5.18 관련 특별법의 제정 과정도 저희 조사활동 기간 관련해서 서로 연관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질문> 사소한 질문하기에 앞서 특조위 고생하시는 건 알겠는데요. 몇 가지 좀 지적하고 넘어갈게요. 일단 오늘 보도자료 보고 많은 기자들이 좀 화가 났는데 소제목에 조직적 정황, 개입 정황을 포착했다고 하고 내용에 아무것도 없어요. 이런 식으로 보도자료 안 내주시기를 바라겠고요.
사실 이 발표도 아까와 같은 맥락인데 저는 정견발표 듣는 줄 알았거든요. 이게 중간 결과발표면 이게 팩트에 따른 우리가 뭐를 새롭게 발견하고 이것에 대한 기사 쓸 거를 해야 하는데 계속 진실, 저는 진짜 이게 중간결과발표인지 정견발표인지 약간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그런 부분은 좀 신경 써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중간에 이제는 특조위에서 발견한 게 4개의 서류가 있는데, 제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는데 3개 서류의 결재라인에 그분이 지시권자는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결재라인에 서명이 명시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뒤에 ‘참모총장으로 보인다.’ 이게 좀 안 맞는 것 같아서.
그 결재라인에 명시된 분들을 밝혀주실 수 있는 건지, 아니면 명시된 것은 맞는데 그분들이 누구인지가 모르셔서 그렇게 보인다고 얘기를 하신 건지 그 부분을 좀 명확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답변> 참모차장 란 또는 참모총장님 란에 사인이 한자로 한 자가 되어 있습니다. 한글로 분명하게 돼 있으면 바로 확인이 되는데요. 그래서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아마 그 부분은 확인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질문> 80위원회 구성이 어떻게 돼 있는 겁니까? 위원장이나 위원이나 뭐 조직위 위상이나 이런 거나 그런 것 자세히 아시는 대로 설명 좀 해 주십시오.
<답변> 지금 직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게 80위원회... 80위원회가 아니고 관계장관대책위원회죠. 국무총리실 실장이 위원장이고, 관계부처에는 국장이 위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80위원회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안기부 2국장이 위원장이고, 거기 관여된 분들은 관계부처의 과장급으로 되어 있습니다.
<질문> ***
<답변> 지금 저희가 가지고 있는 부분은 육군이죠.
<질문> ***
<답변> 그것은 80위원회고.
<질문> ***
<답변> 아니, 결재한 부분 말이죠.
<답변> (관계자) ***
<답변> 육군참모총장 또는 참모차장이 결재하신 부분입니다.
<질문> 짧게 2개만 여쭤보려고요. 지난번에 나왔던 511분석반 그때 자료는 1988년 5월부터 1989년 12월까지 총 18개월간 활동했잖아요? 이번에 80위원회 이것은 활동기간이 나왔나요? 언제까지 활동했는지가?
<답변> 지금 메모로 되어 있는 부분은 그렇게 길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구체적으로 그 부분은 더 조사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질문> 그러니까 종료... 아까 시작점은 1985년 6월이라고 발표하셨는데,
<답변> 예, 1985년 6월...
<질문> 이 위원회의 종료시점은 안 나왔다 이거죠?
<답변> 그렇습니다.
<질문> 두 번째, 그리고 지난번에 511분석반 국회자료를 보면 시민군 무기탈취 시간을 조작한 게 그때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시민을 폭도로 몰기 위해서 오후 5시 30분을 오전 8시에 무기탈취를 했다, 이것을 제보 조작을 했다고 나왔었는데, 이번에 80위원회에서 핵심적인 조작을 했거나 개입했던 내용이 있다면 뭐가 있는 거예요?
<답변> 그게 영향을 받아서 아까 말씀하신 그 체험수기 같은 부분도 영향을 받았지 않겠는가. 특히 말씀드렸듯이 군에 불리한 내용이 기재되어있을 때는 회송해서 재작성토록 하라는 그런 문구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연관성은 조사해 봐야 할 부분이고요.
지금 저희가 각종 상황일지라든가 특히 아까 분석반이라든가 그 국회, 임시국회에 대비한 자료 등을 보면, 군에서 준비한 자료에 보면 시민들이 무기를 탈취한 시간이나 또는 자위권 행사 지시, 또는 여러 가지 군 관련된 자료들이 자료마다 가령 계엄사 또는 육군본부 또는 2군사, 전교사, 각 관여된 사단의 어떤 특정 상황 자체가 그 시점이 달리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관해서는 교차 검토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질문> 이것을 구체적으로 문서로 한번 보도자료 내 주실 생각 없으세요? 저희가 511분석반처럼 딱 집어서 알고 싶어서 그래요.
<답변> 그 부분은 우선 더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현재로서 오늘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는 그렇습니다.
<질문> 추가질문 드릴게요. 고생 많이 하셨는데 이 건 관련해서 관련자 방문조사 같은 것, 가령 전두환 씨가 있잖아요? 전두환 씨를 비롯해서 당시 쿠데타 세력들이 주도했었는데 그때 핵심관계자들 혹시 방문조사 했거나 그런 사실 있으신가요?
<답변> 지금 현재 실무, 직접 행위자라 실무 쪽에, 물론 공군전투기 출격대기 부분은 그 당시 조종사나 무장사 등 정비사를 통해서 지금 조사하고 있고, 헬기사격 의혹 부분에 관해서는 우선 기존에 1995년도에 준비됐던 자료를 토대로 목격자, 피해자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 목격자 또 그간에 나왔던 증언들의 진실성 여부에 관해서 저를 포함해서 직접 위원들이 광주 현지에 2번 방문해서 현지답사를 전부 했습니다.
<질문> 결국 최고보고권자가 전두환 씨잖아요? 전두환 씨 방문조사 한번 하실 의향 없으세요?
<답변> 저희 조사 활동에는 어떤 지위고하 제한을 두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선 전반적인 사실 확정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요. 그것은 추후에 또 검토가 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질문> 위원장님이시죠?
<답변> 네, 그렇습니다.
<질문> 제가 보면서 앞으로 발표될 사안에 참조할 만한 그런 말씀을 드릴게요. 앞서서 똑같은 얘기가 나왔지만, 지금 이 광주민주화운동 전체적으로 보면 굉장히 방대하고 조사할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국방부가 지금 특조위를 만든 게 특정해서 두 가지 사안을 먼저 하라고 지금 특조위를 만든 거지 않습니까?
<답변> 그렇습니다.
<질문> 특조위는 일단 그 부분에 집중을 하시고 오늘같이 예를 들어서 80위원회가 이런 새로운 문서가 나왔다, 그러면 이런 문서는 의미가 뭔지, 이게 어떤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지 이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설명을 해 주셔야만, 국민들도 안 헷갈리고 또 기자들도 쉽게 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오늘같이 이렇게 장황하게 하지 마시고 그런 부분 좀 유념해서 발표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답변> 예, 감사합니다.
<질문> 80위원회의 서류는 이번에 그러면 기무사 25건 확보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어떤 과정에서 이거 확보하게 되신 거예요? 설명을 한번 해 주시기를 부탁드릴게요.
<답변> 기무사 자료에 있는 자료는 아닙니다.
<질문> 그러면 어디, 어떤 과정에서 자료가...
<답변> 다른 국가기관에 기록을 관리하는 부서가 있습니다.
<질문> 그 당시에 그러면 국가 기록을 관리하는 부서가 있었다는 거예요?
<답변> 보존연한에 따라서 또 조직의 존폐에 따라서 그 기록을 계속 관리하지 않고 일정한 기간이 되거나 기록... 국가기관의 존재... 폐지가 되면 기록원에 넘기도록 돼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저희도 조사위원회 활동이 공식적으로 마감하게 되면 그 자료를 반드시 넘기도록 돼 있습니다.
<질문> 그러니까 정확히 어느 부서인지는 아직...
<답변> 그 부분은 국가기록원이죠, 국가기록원.
<질문> 지금 헬기 기총소사 그리고 전투기 출격대기와 지금 오늘 80위원회 발표와 관련이 멀어 보인다, 이런 지적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헬기 기총사격 그리고 전투기 출격대기 이 두 가지를 조사하시는 과정에서 검토하고 계신 자료들 가운데 왜곡이나 조작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있어서 따라가다 보니까 80위원회가 나온 것인지, 아니면 그런 부분들을 같이 보고 조작된 부분 정황을 보고 검토하고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원본 자료 같은 것을 좀 확보하고 계신 부분이 있으신지 여쭙고 싶고요.
두 번째는 80위원회 활동으로 인해서 좀 조작·왜곡된 사례를 아까 한두 가지 읽어주셨는데 읽어주시는 것 외에 이렇게 문서로 공개를 이 자리에서 일부라도 해 주실 수 있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답변> 우선 현재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하겠습니다. 80위원회 관련된 자료를 저희가 더 공개하는 것은 아직은 좀 조사활동을 더 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80위원회 부분은 과거에서부터 백서 관련해서 여러 가지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주안점을 두고 저희가 국가기록원을 통해서 자료 발굴하는 작업에 그것을 발굴해 낸 것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청문회 수사나 또는 기무사 자료에 80위원회 관련된 언급은 없습니다.
<질문> 당초 특조위의 조사대상인 헬기 기총소사와 그다음에 전투기 출격대기 두 가지에 대해서 아까 50명으로부터 진술을 청취하셨다 했는데 구체적인 내용까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지만 그게 어려우시다면 전반적인 진술 취지를 좀 말씀해 주십시오. 그게 피의자의 방어권 보호나 피의사실 공표와도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취지 정도는 말씀해 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이 됩니다. 안 된다면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시죠.
<답변> 그래요. 아까 어떤 분께서 질의하신 내용과도 연관되는데요. 제가 어떤 의견을 들으면 언론에서 결론에 이르는 정도로 아마 평가를 하실 겁니다. 그래서 지금 단계에서, 최종 조사 결과 발표를 하지 않은 단계에서 그 말씀을 드리는 건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저희 지금까지 40일 동안 조사해 온 바로는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진상규명은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질문> 이 80위원회 조직의 구성 목적과 아까 백서 같은 거 못 찾으셨다고 그랬잖아요. 그럼 회의록 같은 거 그런 거 통해서 이 조직이 어떤 목적으로 구성됐고 어떤 활동을 했다, 그런 게 나오고 있습니까?
<답변> 저희가 찾아가야 할 부분입니다.
<질문> 그러면 정체는 모르는 거네요? 구성만 아는 거지, 도대체 80위원회가 왜 만들어졌고, 뭘 했는지...
<답변> 아까 말씀드린 그 내용입니다.
<질문> 그러면 아까 말씀드려 주신 그 내용을 좀 자료로 주실 수 있어요?
<답변> 그거는 마치고 바로 판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질문> 그럼 아까 전에 백서발간을 목적으로 했다고 말씀하시는 거는 분석팀이나 정리팀 이런 걸 통해서 추정을 하신 말씀이신가요?
<답변> 아닙니다. 그거는 조직표가 있습니다.
<질문> 조직표에 그렇게 목적이 명기가 돼 있는 겁니까?
<답변> 각자의 그 역할이 참여하는 기관이 있고 각자의 팀마다 역할분담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령 그에 위원회 진행을, 80위원회 진행을 위해서 육군 같은 경우에 아까 말씀드린 대로 각 부서별로 해야 할 구체적인 역할이 있습니다.
<질문> 백서발간이라는 게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게 명기돼 있습니까?
<답변> 1차... 예,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얘기는 오래전부터 시중에 나와 있던 얘기인데 그것의 구체적인 단서를 확인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저희 특조위에서 그 부분을 발굴해 낸 것입니다.
<질문> 아까 말씀해 주신 부분 중에 80위원회 지침 가운데 군의 입장과 다른 것은 회송을 해서 재작성하도록 한다는 지침 부분이 있다는...
<답변> 그것은 체험수기 부분입니다.
<질문> 체험수기, 그러면...
<답변> 군에 불리한 내용이 있는 기재돼 있는 경우에는.
<질문> 체험수기가 만약에 내용이 자필로 쓴 건데 내용이 잘못됐다 하면 돌려보내서 다시 쓰도록 했다는 말씀이신데.
<답변> 예, 그렇게 명시돼 있습니다.
<질문> 그렇게 명시가 돼 있고 그러면 그런 정황이 있는 수기도 있습니까?
<답변> 그 부분은 이미 자료가 돼 있고 그중에 잠시 후에 보여드리겠습니다마는, 저희가 보기에는 내용상으로 조금 더 ‘조준사격’이라든가 어떤 시민에 대해서 사격에 따른 충격이 컸던 부분은 좀 가렸지 않나, 그런 의문이 있습니다. 주요 지휘관들 증언에 보면 3줄, 4줄을... 원래 제출한 다른 분들은 원래 제출한 그게 체험수기로 작성돼 있는데 3줄, 4줄을 지우고 복사된 본이 거기에 첨부돼 있습니다. 다른 본과 달리.
그런데 또 하나는 특별하게도 아마 위협사격, 그러니까 공중으로 위협사격만 한 것으로 했을 텐데, 공중사격 혹은 지면사격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 지면사격은 사람에게 향한 것으로 해석을 해서 그런지 그 부분은 화이트로 지웠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질문> 지금 계속 내용들이 짬뽕돼서 저도 헷갈리는데요.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80위원회에 대한 얘기는 충분히 들었고 그러니까 헬기사격과 전투기 대기에 대해서 그러니까 특히 전투기 대기가 문제가 됐던 게 일부 언론보도에서 나온 것들이 다 입장차들이 있고 사실 이게 확인된 문건이 없기 때문에 이게 뭐, 지시가 내려왔다, 라는 그거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잖아요. 사실 현재까지는, 아직까지는 문건 같은 게 나온 게 없으니까.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헬기사격이나 전투기 대기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피해자나 아니면 관련자들을 증언 청취하는 과정에서 일부 우리가 본 기자들, 언론에서 나간 사항들이 아니라 피해자 청취하는 과정에서 이 사람들의 발언들이 시점상으로 연결되는 고리 그래서 신빙성이 올라가는 그런 연결고리 같은 것들이 추가로 나온 게 있나요? 현재 상황에서?
<답변> 지금 특히 헬기사격 의혹 부분에 관해서는 가장 많이 거론되는 날짜가 5월 21일 오후 그리고 5월 27일 새벽 상황입니다. 그에 관해서 기존에 증언하지 않았던 많은 분들의 진술을 청취해서 상호 진실성 여부를 검토하고 또 보강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지 여러 가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질문> 마지막에 체험수기 관련돼서 구체적으로. 그 체험수기라는 게 80위원회가 백서를 발간하기 위해서 수집한 그러니까 5.18 때 광주에 갔던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수기인가요?
<답변> 예, 그렇습니다.
<질문> 80위원회가 수집한 그 수기인 것이죠?
<답변> 그 체험수기에 그 연관성은...
<질문> 그거는 아예 별도의...
<답변> (관계자) ***
<질문> 예, 알겠고요. 그러니까 저희들이 지금 쓸 만한 게 ‘80위원회 새로 구성된 걸 발견했다는 것하고, 체험수기에 일부 조작의 증거가 있다.’라는 것인 것 같아서 구체적으로 좀 여쭤보려고 그래요.
그러니까 그 체험수기라는 게 말씀하셨던 ‘일부 화이트로 지우고 다시 수정해서 재송부하라.’고 했던 그 체험수기라는 게 언제적, 언제 수집한 체험수기냐, 이건 거죠.
<답변> (관계자) 그 자료 공개하실 겁니까?
<답변> 그게 이제 1985년과 1988년에 작성된 내용입니다.
<질문> 그런데 그게 이제 1985년, 1988년에 작성된 체험수기가 일부 이렇게 되어 있었고, 재송부하라는 것은 1985년도 얘기인 건가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답변> (관계자) 예, 자세한 것은 자료공개 하면서 말씀을 나누면 되니까요.
<답변> 그것은 이제 1982년에 한 거 아니야? 재송부 그것은? 1988년?
<답변> (관계자) 위원장님, 이상으로 브리핑 마치고요. 자료공개하면서 추가적으로 질문하시면 개별적으로 받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오늘, 5.18 특조위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답변> 많은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 (관계자)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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