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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14]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200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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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1기: 영화로운 삶의 재현

고구려 고분벽화의 전개과정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제1기는 3세기말에서 5세기초에 걸치는 기간으로 고구려의 영토가 크게 확장되는 시기이다. 벽화는 주로 무덤 안에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 시기에 즐겨 택해지는 생활풍속계 벽화고분은 무덤칸 구조와 벽화 내용이 죽은 자 생전의 저택구조를 재현하거나 상징적으로 드러내도록 서로 맞물리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무덤은 흔히 무덤칸의 모서리와 벽의 위 부분에 자주색 안료로 기둥과 들보 등 목조가옥의 뼈대를 그려 무덤 안을 주택과 같이 꾸민다.

생활풍속은 죽은 자 생전의 공적(公的) 생활 가운데 기념할만한 것과 사적(私的) 생활의 풍요로움을 무덤 안에 그림으로써 내세에도 이와 같은 삶이 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택해진 벽화주제이다. 때문에 생활풍속을 주제로 한 고분벽화에서는 무덤주인이나 무덤주인부부가 남녀시종들의 시중을 받으며 춤과 노래, 놀이를 즐기는 장면, 대규모 행렬에 둘러싸여 출타하는 장면, 산야(山野)를 질주하며 사냥하는 장면 등이 자주 나온다. 벽화 속의 인물들은 흔히 신분과 계급, 지위 정도에 따라 각각 다른 사람의 몇 배, 혹은 몇 분의 1 크기로 그려지며, 모자와 머리모양, 입은 옷의 무늬와 빛깔, 소매나 가랑이의 너비와 길이 등이 다르게 묘사된다.

생활풍속을 주제로 한 평양․안악지역의 고분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묵서(墨書)로 쓰인 명문(銘文)이 남아 있는 안악3호분과 덕흥리벽화고분을 들 수 있다. 안악3호분(357년)은 회랑에 10.5m에 걸쳐 250명 이상의 인물이 그려진 대규모 행렬도로 특히 유명하다. 덕흥리벽화고분(408년)은 중국의 하북성을 포함한 북중국 동북의 넓은 영역에 걸쳐 설치되었던 유주(幽州)의 13군태수(郡太守)가 무덤주인인 자사(刺史) 진(鎭)에게 나아와 배례(拜禮)를 하는 장면, 60여 개의 별자리 및 견우(牽牛), 직녀(織女)를 비롯해 신화, 전설상의 존재로 가득한 하늘세계의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무덤이다.

제1기에 속하는 국내(國內, 현재의 중국 길림성 집안)지역의 벽화고분으로는 각저총(角抵塚), 무용총(舞踊塚)이 잘 알려졌다. 집안의 우산(禹山) 남쪽기슭에 서남향으로 나란히 축조된 두 무덤의 내부는 목조가옥의 뼈대그림에 의해 벽면과 천장부가 나누어졌으며, 화면의 각 제재는 커다란 나무로 구분되었다. 각저총은 매부리코의 서(西)아시아계 인물과 고구려인 사이의 씨름그림으로 잘 알려졌지만, 무덤주인과 두 부인의 그림으로도 일반에게 익숙한 벽화고분이다. 무덤주인부부와 시종을 비롯해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볼에 군살이 없이 얼굴 선이 깔끔하게 내려오는 고구려인 특유의 갸름한 얼굴을 지녀 볼과 턱이 살진 평양권 벽화고분인 안악3호분 벽화 인물들의 얼굴과 대조를 이룬다.

무용총은 산을 넘나드는 기마사냥 장면과 무용그림, 두 역사(力士)가 수박희(手搏戱)라고도 불리던 태껸류의 격투기를 벌이는 장면, 하늘로 떠오르는 연꽃과 연봉오리, 선인(仙人)과 청룡(靑龍), 백호(白虎) 및 갖가지 상서동물들로 가득한 하늘세계 그림으로 잘 알려진 무덤이다. 무용 장면은 말을 타고 나가는 무덤주인과 그 뒤의 시동(侍童), 무덤주인을 배웅하는 무용수와 합창대로 이루어진 그림의 일부인데, 5세기 전반 국내지역 화가의 기량을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2)제2기: 복잡해진 하늘세계

제2기는 5세기 중엽에서 6세기초에 걸치는 시기로 동북아시아의 지배자 고구려가 내륙아시아의 패자 유연(柔然), 중국의 남조(南朝)와 북조(北朝) 등과 함께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좌우하는 4대 강국의 하나로 군림하던 시대이다. 이 시기 고구려의 외방이나 두방무덤에는 생활풍속과 사신, 혹은 생활풍속과 장식무늬가 공존하는 그림, 장식무늬만을 주제로 한 다양한 유형의 그림들이 그려진다. 사신이 무덤칸 안에 그려질 때에는 방위나 방향에 맞추어 좌(左[東])청룡, 우(右[西])백호, 전(前[南])주작, 후(後[北])현무의 순서로 그려진다. 사신은 무덤자리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사신 형상의 지세인 사세(四勢)에 해당되지 않거나 최선의 자리가 아닐 경우, 이를 대신하여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생활풍속과 장식무늬, 혹은 장식무늬가 벽화주제인 무덤은 427년의 평양 천도 이후, 고구려 북방의 정치․문화중심으로 기능하던 옛 수도 국내(國內) 일대에서 다수 발견된다. 벽화의 장식무늬로는 동심원문(同心圓文), ‘왕’자문(‘王’字文), 연꽃문, 구름무늬, 얽힌용무늬[交龍紋], 인동무늬 등이 선택되며, 이 가운데 연꽃문을 주제로 한 경우가 벽화고분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들 연꽃문은 5세기에 이르러 고구려에서 불교가 크게 유행한 것과 관련이 깊다. 무덤칸 안에 그려진 연꽃문은 죽은 자의 정토왕생(淨土往生)을 희구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제2기를 대표하는 국내지역의 벽화고분으로는 장천1호분(長川1號墳)과 삼실총(三室塚)을 들 수 있다. 장천1호분은 전형적인 두방무덤으로 무덤주인과 그의 손님을 위해 펼쳐지는 여러 가지 놀이 장면, 여래와 보살, 비천과 기악천 등 불교적 존재들로 가득한 하늘세계와 이 하늘세계를 떠받치는 서아시아계 역사(力士)들의 모습, 두 사람의 동남동녀(童男童女)가 연꽃에서 화생(化生)하는 장면 등으로 내외의 관심을 모았던 벽화고분이다. 삼실총은 널방 세 칸이 ‘ㄷ’자 모양으로 이어진 특이한 형태의 벽화고분이다. 무덤 안의 두 번째, 세 번째 널방 각 벽에 가득 차게 그려진 역사는 장천1호분 벽화의 역사들과 같은 서아시아계이다. 초원의 길을 매개로 한 고구려와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와의 문화교류를 짐작하게 하는 존재 가운데 하나이다.

평양 및 안악지역의 생활풍속계열 무덤에서는 생활풍속과 사신(四神)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초기단계에는 사신이 무덤칸 천장부에 별자리와 함께 그려지지만,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벽면으로 내려와 결국 벽면 전체를 차지하면서 생활풍속 장면을 소멸시킨다. 제2기에 속하는 평양․안악지역의 벽화고분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쌍영총, 수산리벽화분, 덕화리1호분 등이다.

두방무덤인 쌍영총 벽화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앞 시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깔끔하고 세련된 필선으로 묘사된 갸름한 계란형 얼굴의 인물들이다. 남자들은 고구려 특유의 모자인 절풍(折風)을 머리에 쓰고, 선(襈)을 덧댄 왼섶 저고리에 통 넓은 바지를 입었으며, 여자는 선을 덧댄 저고리에 주름치마를 입었다. 수산리벽화분의 벽화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의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5세기 후반에 이르면 고구려 회화에서 고구려식 인물표현의 한 전형이 완성됨을 알게 한다.

3)제3기: 보호받는 쉼터

제3기는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전반에 걸치는 기간이다. 5세기 후반에 성립시킨 범(汎) 고구려 문화의 성과가 고분벽화를 통해서 확인되지만, 이어진 정치․사회적 불안정으로 말미암아 동북아시아 패권국가로서의 지위가 흔들리고 동북아시아 문화중심으로서의 역할도 도전 받는 시기이다. 고분벽화는 주로 무덤칸의 다듬어진 돌면에 그대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제작되는데, 안료 제작상의 기술적 진보를 읽게 하는 부분이다. 널방만 있는 외방무덤에 사신도(四神圖)가 즐겨 그려진다.

제3기 벽화고분들은 모두 구릉기슭에 남향으로 축조되었으며, 뒤로는 산을 지고 앞으로는 들을 내다보는 이른바 ‘명당’의 기본조건을 갖춘 곳에 위치하였다. 이 시기 사신은 각각 널방의 한 벽면씩을 차지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현상은 사신이 단순히 하늘의 28별자리[28星宿] 가운데 동서남북 각 방위별 7별자리씩이 형상화된 방위신 정도가 아니라, 신선신앙과 불교신앙이 혼합된 형태의 내세를 지켜주는 우주적 수호신으로 여겨진 것과 관련이 깊다.

제3기 평양지역 벽화고분을 대표하는 강서대묘와 강서중묘 벽화는 고구려회화가 6세기 전반 중국 남조로부터 받아들인 미술사조의 영향에서 벗어나 나름의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나갔는지를 잘 보여준다. 두 무덤 모두에서 사신(四神)은 아무런 배경 없이 벽면에 그려졌으나, 세련된 필치와 선명한 채색으로 말미암아 상상적 동물임에도 마치 실재하는 존재인 듯이 느껴진다. 강서대묘의 현무, 강서중묘의 백호가 획득한 실재성(實在性)은 무(無)배경의 벽면에 깊은 공간감을 주어 벽면이 마치 아득한 하늘세계처럼 보이게 만든다.

제3기에 속하는 국내지역 고분벽화는 고구려 특유의 힘과 긴장감, 6세기경 국내 문화만의 화려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함께 담아내고 있어 고구려 후기문화의 지역적 성향과 특징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시기 국내 고분벽화의 특징은 오회분5호묘와 오회분4호묘 널방의 벽 및 천장고임 그림에 잘 담겨 있다. 널방 벽의 사신은 인동과 불꽃, 혹은 화생(化生)중의 인동(忍冬) 및 인동연꽃 위의 화생천인(化生天人)으로 채워진 화려한 연속변형귀갑문 위에 세련되고 숙달된 필치로 묘사되었다. 사신의 몸체는 세부까지 세밀하게 묘사되었고, 오색(五色)으로 화려하고 선명하게 채색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선명한 윤곽선과 엄격하게 구분된 채색띠, 규칙적이고 도식적인 세부표현 등은 오히려 신수(神獸)로서 사신이 지녀야할 신비성과 사실성을 약화시키는 면도 있다.

두 고분벽화의 천장고임에는 해와 달, 별자리 외에 해신과 달신을 비롯해 불의 신, 농사의 신, 대장장이 신, 수레바퀴의 신, 숫돌의 신 등 여러 종류의 문명신(文明神)과 악기를 다루는 천인(天人)들이 등장한다. 고구려 특유의 힘과 긴장감을 담은 자세로 해와 달을 받쳐들고 있는 해신, 달신 등은 평양지역의 고분벽화에는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같은 시기 중국 남북조의 회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닫으며

고구려 고분벽화는 동북아시아가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권으로 존재했음을 확인시켜주는 역사적 증언이자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3세기말부터 모습을 보이는 고분벽화는 고구려가 자국을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려고 애쓰던 과정, 동북아시아를 고구려의 ‘천하’라고 자부하며 이루어낸 문화적 성과를 생생히 잘 보여주는 역사현장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전호태(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제공: 해외홍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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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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