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전자정부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콘텐츠 영역

6월 이달의 전쟁영웅 노종해 경감

글자크기 설정
목록

 6월의 6.25전쟁영웅 노종해 경감

 (1922.1.14∼1950.6.26)

 ◈오늘의 이 시간이 대한민국을 살리는 시간이 될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노종해 경찰 경감을 6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1군단은 서울을 점령하고, 2군단으로 하여금 춘천-홍천-수원으로 내려와 국군의 퇴로를 차단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계획에 따라 북한군 1군단은 서울로 진격하여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였고 2군단은 춘천으로 진격하여 26일 오전에 춘천을 점령하려고 하였다.

이때 북한군의 춘천진격을 1시간 이상 저지시켜 북한군의 진격을 늦추고 국군 제6사단의 주저항선 구축에 기여하여 북한군의 계획을 수포로 만든 전투가 1950년 6월 26일의 내평지서 전투이다.

당시 화천에서 춘천으로 가는 46번 도로 내평리 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내평지서는 춘천시내로 진입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했으며, 내평지서에는 지서장인 노종해 경위(전사 후 경감 추서)를 포함 12명의 경찰관과 대한청년단 단원 3명이 있었다.

전투 당일 내평지서는 통신마저 끊기고 고립되었지만 노종해 경위를 포함한 15명은 죽음을 각오하고 1만명이 넘는 북한군 제2사단과 1시간 이상 치열한 교전을 벌였고 급기야 북한군은 82밀리 박격포를 대거 동원 내평지서를 완전 폐허로 만든 다음에야 점령 할 수 있었다.

이 전투로 노종해 지서장을 포함한 12명이 전사하였다. 우리 국군의 주저항선 구축에 크게 기여한 내평지서의 결사항전이 없었다면 춘천이 북한군에게 쉽게 함락되었을 수도 있고 이로 인하여 북한의 초기 작전이 성공하였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내평지서 전투는 춘천전투에서 큰 의미가 있는 전사에 길이 남을 전투였다.

“이 자료는 국가보훈처의 보도자료를 전재하여 제공함을 알려드립니다.”

공공누리가 부착되지 않은 자료는 담당자와 협의한 후에 사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정책브리핑 공공누리 담당자 안내 닫기

이전다음기사

다음KTX, “탈선 대비 초동 훈련, 인명피해 최소화”

정책브리핑 게시물 운영원칙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게시물은 삭제 또는 계정이 차단 될 수 있습니다.

  • 1. 타인의 메일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 또는 해당 정보를 게재하는 경우
  • 2.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경우
  • 3.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시키는 경우
  • 4. 욕설 및 비속어의 사용 및 특정 인종, 성별, 지역 또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용어를 게시하는 경우
  • 5. 불법복제, 바이러스, 해킹 등을 조장하는 내용인 경우
  • 6.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광고 또는 특정 개인(단체)의 홍보성 글인 경우
  • 7. 타인의 저작물(기사, 사진 등 링크)을 무단으로 게시하여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글
  • 8. 범죄와 관련있거나 범죄를 유도하는 행위 및 관련 내용을 게시한 경우
  • 9. 공인이나 특정이슈와 관련된 당사자 및 당사자의 주변인, 지인 등을 가장 또는 사칭하여 글을 게시하는 경우
  • 10. 해당 기사나 게시글의 내용과 관련없는 특정 의견, 주장, 정보 등을 게시하는 경우
  • 11. 동일한 제목, 내용의 글 또는 일부분만 변경해서 글을 반복 게재하는 경우
  • 12. 기타 관계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 13. 수사기관 등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는 경우

히단 배너 영역

정책 NOW, MY 맞춤뉴스

정책 NOW

저출생 극복 나도 아이도 행복한 세상
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MY 맞춤뉴스 AI 추천

My 맞춤뉴스 더보기

인기, 최신, 오늘의 영상 , 오늘의 사진

오늘의 멀티미디어

정책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