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14일(수), 6·25전쟁 당시 뱃속의 딸을 두고 자원입대한 후 전사한 고(故) 진성대 이등중사(현 계급 병장)와, 어린 두 딸을 남긴 채 입대 후 전사한 고(故) 이석우 하사의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가 울산광역시 동구에서 합동으로 거행됐다.
ㅇ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단장 전병희)은 2017년 4월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노항리 일대 및 2026년 4월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각각 국군 제8사단 소속 고 진성대 이등중사와 제7사단 소속의 고 이석우 하사로 확인했다.
ㅇ두 호국영웅은 올해 국유단이 열한 번째, 열세 번째로 신원을 확인한 호국영웅이며,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 개시 이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279번째, 281번째 국군 전사자다.
* 열두 번째 신원확인 전사자는 11월 중 제주도에서 귀환행사 및 안장식 예정
□ 진성대 이등중사의 유해는 유해발굴을 위한 사전 탐사 중 최초 식별됐으며, 이후 국유단 전문 발굴팀에 의해 수습됐다.
ㅇ국유단은 2017년 4월 영천시 임고면 노항리 진격산 440고지에서 제50보병사단과 함께 유해발굴을 진행했다. 본격적인 유해발굴이 진행되기 전 사전 탐사 과정에서 위팔뼈 1점이 최초로 식별됐고, 이후 국유단 전문 발굴팀이 투입되어 고인의 유해를 수습했다. 6·25전쟁 당시 영천지구 전투가 벌어진 이 고지는 과거 6차례 발굴 작업을 거쳐 총 80여 구의 유해가 출토된 곳이다.
ㅇ유가족 유전자 시료는 고인의 유해가 발굴된 지 7년 후인 2024년, 민·관·군이 협업한 유가족 집중찾기 일환으로 53사단 소속 예비군 동대장이 채취했다. 2024년 1월 고인의 딸 진정자 씨(1949년생, 당시 75세)는 예비군 동대장의 권유로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했고, 국유단은 2025년부터 올해 4월까지 유해-유전자 비교 분석을 통해 고 진성대 이등중사와 진정자 씨가 부녀(父女)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경상북도 경주 출신인 고 진성대 이등중사는 1948년 12월 자원입대 후, 1950년 9월 13일 '영천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ㅇ고인은 1929년 9월 경상북도 경주시 상서면에서 7남매(4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이후 아내 김일녀 씨와 뱃속의 딸을 남겨둔 채, 1948년 12월에 자원입대했다. 딸 진정자 씨는 고인이 입대한 지 6개월 후인, 1949년 5월에 태어났다.
ㅇ고인은 6·25전쟁의 전환점을 이룬 영천지구 전투(1950. 9. 5. ∼ 13.)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영천지구 전투는 국군 제8사단을 주축으로 제6사단과 제1사단의 각 1개 연대 등 총 7개 연대병력이 투입되어 낙동강 전선 동반부를 방어하는 데 성공한 전투로, 이때부터 전세가 역전되어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작전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발판을 굳히게 됐다. 이 공을 인정받은 고인은 전사 후 1950년 12월 30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 이석우 하사의 신원확인은 선배 전우를 찾기 위한 국유단 전문 조사·발굴팀의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버지와 형님을 찾기 위해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한 두 딸과 남동생의 간절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ㅇ국유단은 지난해 3월 24일부터 6주간, 강원 인제군 북면 월학리 칠성고개 452고지에서 제20기갑여단과 함께 유해발굴을 진행했다. 고인의 유해는 452고지 정상부의 콘크리트 벙커 주변에서 출토됐다.
ㅇ이번 신원확인에는 국유단이 보관 중인 고인의 두 딸(이복필 씨, 이귀조 씨)과 남동생(이정우 씨)의 유전자 시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장녀 이복필 씨가 2009년 울산 동구 보건소에서 시료 채취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에는 차녀 이귀조 씨가 서울 서대문구 보건소에서, 2020년에는 남동생 이정우 씨가 경주시 보건소에서 시료를 채취했다.
□ 경상북도 경주 출신인 고인은 1950년 9월 입대한 후 국군 제7사단 소속으로 '경주-서울 진격전'과 '38도선 돌파작전' 등의 반격작전을 거쳐 '소양강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ㅇ고인은 1924년 4월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에서 5남매(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3년 심분이 씨와 혼인한 후 슬하에 두 딸을 둔 고인은 4살, 1살 딸을 남겨두고 1950년에 입대했다.
ㅇ고인은 1950년 9월에 부산의 육군훈련소에 입대한 후 국군 제7사단으로 배치받았다. 이후 이듬해 4월 소양강 부근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 이번 귀환 행사는 두 유가족의 고향인 울산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보훈복지회관에서 울산 동구청장, 울산전몰군경유족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합동으로 진행됐다.
ㅇ고 진성대 이등중사의 유가족 대표 진정자(1949년생, 77세) 씨는 "아버지 유해를 찾은 것이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며 "그동안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한 만큼 국립묘지에 안장해서 자주 찾아뵙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ㅇ고 이석우 하사의 유가족 대표 이복필(1946년생, 80세) 씨는 "매년 6월 울산 유족회에서 서울현충원을 방문하면 우리 아버지는 위패로만 모셔져 있어서, 안장되신 분들이 부러웠다"며 "드디어 아버지를 묘지에 안장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아버지 유해를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ㅇ행사를 주관한 전병희 국유단장은 유가족에게 호국영웅 귀환 패와 신원확인 통지서, 발굴 유품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했다. 이어 고인의 참전 경로와 유해발굴 경과, 신원확인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ㅇ전병희 단장은 "70여 년 전 소중한 딸들을 남겨두고 나라를 구하신 두 호국영웅의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드리게 되어 기쁘다"며 "한 날 같은 지역에 사시는 두 유가족분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게 됐는데, 앞으로도 전국에 계신 많은 유가족분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으나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6·25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ㅇ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 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 기준으로 친·외가 8촌까지 신청 가능합니다. 제공하신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정부 24"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ㅇ6·25전쟁이 발발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현재 참전용사와 유가족의 고령화 등으로 유가족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만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절실합니다.
ㅇ국유단은 전국 각지에 계신 유가족분들을 찾기 위해 오늘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시료를 제공하고 싶어도 거동이 불편해 참여가 어려운 분들께서는 대표번호 1577-5625(오! 6·25)로 언제든 연락 주시면 직접 찾아뵙고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드리고 있습니다. <끝>
“이 자료는 국방부의 보도자료를 전재하여 제공함을 알려드립니다.”
이 자료는 텍스트에 한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의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텍스트를 제외한 사진·이미지·일러스트·동영상 등 자료의 대부분은 정책브리핑이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이용 전 해당 저작권자의 허락을 반드시 받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