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사랑, 축복이 가득한 가정의 달을 맞이하며 5월의 추천도서를 소개합니다.
1. [문학] 마음에 없는 소리│김지연, 문학동네
사 년 전에 <작정기>라는 단편소설로 등단한 김지연의 첫 번째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첫 문장을 이렇게 쓴 건, 그동안 이 작가의 책을 기다려 왔다고 말하고 싶어서이다. 패기 넘치고 반짝이는 수많은 젊은 작가 중에서 김지연의 소설이 눈에 띈 이유는 몇 가지 개성 때문이었다. 기존의 서사 체계를 안정하게 습득하고 있는 듯하지만 다 필요하다고 생각한 상황마저 계획적으로 생략해서 전달하는 솜씨나 중의적 표현으로 의미의 폭을 확장하는 글쓰기 방법 같은 것들이.
최근에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단편 <공원에서>를 읽다가 그 명확해진 작가의 개성과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에 조용히 감탄했다. 이 시대에 주체성을 가진 여성으로 산다는 것, 사랑을 하는 일 등 별것 아닌 일이지만 쉽지 않은 이런 일상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 작가는 첫 소설집인 『마음에 없는 소리』에서 벌써 다 보여 준 것 같다. 얼핏 힘없고 존재가 미미해 보이는 인물들이 자기만의 끈질긴 방식으로. 그들을 우리 보통 사람과 닮았다고 말해도 좋을까. 그러니까 아직 세상에 기대하는 게 있으며, 어떤 “좋은 미래”를 꿈꾸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다시 돌아보게 될지 모른다. 그동안 알고 있다고 믿었던 환대와 도덕과 윤리에 대해서. 어쩌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 타인에게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면.
서정적이며 유머러스하고 슬프고 서늘한, 그런 여덟 편의 여운 있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 있다.
_조경란 위원, 소설가
2. [인문예술]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 남방의 포로감시원, 5년의 기록│최양현·최영우, 효형출판
이 책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가 통치하던 인도네시아에서 포로감시원 생활을 했던 최영우 선생이 포로감시원 생활 및 수형 생활에 관해 스스로 남긴 기록을 그의 외손자가 정리한 결과물이다.
이 책의 독특함은 일제 강점기 포로감시원으로 근무한 조선인 청년이 자신의 삶에 관해 남긴 일종의 자서전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 군대가 전쟁을 위해 동원한 조선인들은 군인, 군속, 노동자, ‘위안부’ 등에 이르기까지 약 800만명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 최근까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이들이 태평양전쟁 당시 포로감시원으로 근무했던 이들이다. 이 책은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한글로 남긴 몇 안 되는 기록물이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전쟁에 휩쓸린 식민지 청년의 다면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최영우 선생은 분명 식민지 출신이지만 또한 직업상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포로로 잡혀 있는 서양인들을 문명인들이라고 칭하면서도 포로감시원으로서 그들에 대해 알 수 없는 우월감을 느끼고, 일본군을 열렬히 환대하는 현지 원주민들을 보면서 뿌듯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군대 내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의 상시적인 차별을 경험하고, 위안소 내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조선인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충격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그는 위안소에서 원주민 여성을 상대한다.
선생은 포로감시원 생활을 하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는 역으로 전범 행위자로서 2년여 동안 포로 생활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가 겪는 물리적·정신적 고통은 이 책이 드러내는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역설의 절정을 이룬다. 민족주의의 시각에서 벗어나서 일제 강점기 및 전쟁의 비극을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_진태원 위원, 성공회대 연구교수
3. [사회과학] 니는 내맹쿠로 살지 마래이│최종렬, 피엔에이월드
세상은 획일적인 속도로 바뀌지 않는다. 빠르게 변하는 곳이 있으면 천천히 달라지는 곳도 있다. 보통 사람들은 빠르게 바뀌는 곳에만 시선을 집중하며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찬찬히 여기저기를 바라보면 세상은 전혀 바뀌지 않고 거의 옛날 그대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젠더 문제도 그런 경우의 하나다. 다 바뀐 것 같지만 과거가 하염없이 반복되고 있기도 하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외쳤지만 한참 후에 보면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책의 저자는 『복학왕의 사회학』에서 대구·경북 지역의 젊은이들이 수도권 젊은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밝혀낸 최종렬이다. 이번 책에서는 대구·경북 지역 할머니-어머니-딸로 이어지는 여성 삼대 이야기를 현장 인터뷰와 사회학 언어를 교차시켜 소설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사회학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면서 돌봄(밥)-노동(일)-에로티시즘(사랑)이라는 세 영역에서 가부장제가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사회학 언어를 사용하여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매여 ‘가족 자아’로 살아 가는 타성적 삶을 벗어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성스러운 자아’로 살아가는 창조적 삶을 제안한다.
_정수복 위원, 사회학자/작가
4. [자연과학] 동물을 돌보고 연구합니다│장구, 김영사
서울대 수의학과 장구 교수의 동물 이야기. 실험 동물, 질병 저항성이 있는 슈퍼동물과 복제, 배양으로 만든 고기, 물고기와 말, 소의 출산 이야기, 반려견 이야기, 동물의 수혈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각각의 동물들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그에 수반되는 과학적 사실과 관련된 최신 지식도 친절하게 알려주는 교양과학서로서 손상이 없다. 무엇보다 미려한 편집과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의 모음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우리가 동물을 돌보고 연구하는 이유는 수많은 영역에서 동물의 삶은 인류의 삶과 교차되며, 이들이 없는 인류의 삶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의학자는 이러한 동물들을 돌보는 사람이며 인류를 위해 식량으로, 또는 실험 대상으로 희생되기도 하는 것이 동물의 운명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수의학자의 시선은 따뜻하기 그지 없다.
_권복규 위원, 이화여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5. [실용일반]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심혜경, 더퀘스트
저자 심혜경 씨는 27년 동안 정독도서관, 남산도서관 등 서울시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했다. 현재 예순네 살. 은퇴가 다가오면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8년 동안 한국방송통신대에서 영어영문학·중어중문학·프랑스언어문화학·일본학 학사를 땄다. 15권 넘는 책을 옮기며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저자의 공부는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본다는 식과는 거리가 멀다.
독일어 공부는 문법만 배우다 멈춘 상태, 태극권 수업은 중도하차. 수채화는 맘에 드는 그림 한 장을 건지자마자 그만 두었다. 이 책은 그런 배움의 과정과 거기에서 얻은 통찰을 기록한 것이다. “중도하차하는 순간에도 내가 그려낸 결과물들을 보면 후회가 들지 않았다. ‘그림 하나 건진 게 어디야’라며 오히려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저자는 지속가능한 공부에 비결은 없다며 이렇게 말한다. “즐겁게 부담 없이 공부하고, 하기 싫으면 그냥 하지 않기.”
왜 하필 외국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들인 걸까? “외국어 공부는 다른 공부를 하면서도 할 수 있고, 자신의 생활방식에 맞춰 충분히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공부다. 무엇보다 누구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인생 중후반기에 들어 공부를 한다고 하면 ‘그 나이에 그런 걸 배워서 뭐해?’라는 말을 듣기 일쑤인데, 외국어 공부를 한다고 하면 오랜 시간을 투자해도 계획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감정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은 공부 성공기(成功記)가 아니며 공부법 실용서도 아니다. 노년기 저자의 책이라고 해서 꼭 노년을 위한 책인 것도 아니다. 공부를 취미로 삼고 싶은 사람, 새로운 할 일을 찾는 사람,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격려가 되는 책이다. ‘인생이라는 장거리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한 매일매일의 기록’이라는 부제목은 그래서 적절하다. 저자가 말한다.
“뭔가를 시작했다 금세 그만둬도 괜찮다. 그 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꾸준히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는 말 것.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친다.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도 내 경우엔 부질없는 일이다.”
_표정훈 위원, 평론가
6. [그림책/동화] 오늘의 햇살│윤슬 저·국지승 그림, 문학과지성사
자기만의 아픔을 지닌 어린이들이 친구들과 생명의 위로를 받으며 아픔을 치유하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담은 저학년 동화다.
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들어가야 하는 소도시에 사는 소유, 은하, 진호에겐 각각의 상처가 있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만의 가족에 대한 결핍을 갖고 있다. 엄마 대신 고모를 엄마라 부르며 자라는 소유, 자신을 살뜰히 챙겨주는 외할머니와 아빠가 있지만 엄마의 빈자리가 여전히 큰 은하, 할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늘 할머니가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이는 진호.
하지만 아이들은 세상의 생명에 자신을 비춰보고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며 나아간다. 수로에 빠진 새끼 고라니를 구한 소유는 어미 잃은 고라니에 자신을 투영하고, 은하는 친구들과 함께 열대어 베타의 짝을 찾고, 할머니와 둘이 사는 진호는 사이 좋게 지내는 고양이와 오리를 보며 성장해나간다.
아이들의 삶이 그 안에서 얼마나 만만치 않은지, 또 아이들이 자기 삶을 뚫고 나가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를 보여준다. 어린이에 대해, 친구에 대해, 가족에 대해, 그리고 우리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생명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애틋한 작품이다.
_최현미 위원, 문화일보 문화부장
7. [청소년] 어느 날 문득, 내가 달라졌다│김이환 외 4인, 생각학교
자존감은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대한 주관적 자기 평가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로 자존감이다. 자기 가치를 스스로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물론 타인과의 관계도 긍정적이며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다. 자존감은 자신감으로 이어져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미친다. 매일 아침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제각각이지만 온전히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나이, 성별, 학력, 직업 등과 관계없이 낮은 자존감은 자아를 병들게 한다.
자본주의가 홍수처럼 쏟아내는 신제품과 광고는 우리 몸을 조절하고 통제한다. 큰 키, 예쁜 얼굴, 날씬한 몸매, 보기 좋은 근육을 위해 우리는 쉴새 없이 소비하고 각종 브랜드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래서 자아 정체성이 형성될 시기인 청소년들은 혼란에 빠지기 쉽다. 자연은 개별적 존재에게 나름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부여했으나 어느새 획일적 미적 기준이 우리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몇몇 연예인과 셀럽을 추종하며 그들의 몸과 자신을 비교하는 청소년들이 행복할 리 없다. 자기만의 개성을 존중받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받아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 몸의 변화에 민감해지기 때문이며,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을 한다. 이런 이유로, 다섯 명의 소설가가 청소년의 ‘몸’을 주제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매우 의미 있고 주목할만한 형식의 소설집이다.
경쾌하고 발랄한 상상력을 지닌 젊은 작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가슴, 눈, 머리, 다리, 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체의 각 부분은 표면적인 소설의 대상이지만 여기에는 콤플렉스, 왕따, 수치심 등 심각한 청소년 문제들이 녹아 있다. 근엄한 목소리로 타이르고 뻔한 말로 위로하는 대신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을 통해 독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청소년은 어른이 되기 위한 과도기의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판단하며 주체적인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에 놓여 있을 뿐이다. 몸의 성장과 변화가 자연스레 정신과 영혼의 성숙으로 이어진다. 자기 몸을 긍정하고 그 변화를 수용하며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야기라면 우리 모두 함께 읽어야 하지 않을까.
_류대성 위원, 『읽기의 미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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