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국민대학교 교수 |
시작하는 글
대한민국은 동·하계 올림픽 및 패럴림픽, FIFA 월드컵,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대회,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등 각종 국제스포츠경기대회(International Sports Event)를 다수 개최하였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국제스포츠경기대회 유치 및 개최가 주춤하고 있지만, 상황이 나아지면 다수의 국제스포츠경기대회가 다시 대한민국을 찾아올 것이다.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각각 30개와 24개, 총 54개의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선정하여 예산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당초에 계획되었던 국제스포츠경기대회들이 취소 또는 연기되는 등 제대로 치러지기 어려웠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극복된 이후에는 적어도 매년 50개 이상의 국제스포츠경기대회가 대한민국에서 개최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처럼 국제스포츠경기대회 휴식기에 앞으로의 국제스포츠경기대회 유치 및 개최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고 체계적으로 대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에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글을 시작해보고자 한다. ‘그동안 유치하고 개최된 수많은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국제스포츠경기대회 개최능력은 일취월장하였는가? 혹은 유치 및 개최를 통한 지식들이 체계적으로 축적되고 전수되어 오고 있는가?’
필자는 대학에 임용되기 전까지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에서 근무하면서 국제스포츠경기대회 개최지 선정 업무를 담당한 바 있다. 세계태권도연맹은 30여 개의 동·하계 올림픽 종목 국제연맹 중 하나로 세계선수권대회,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그랑프리 시리즈 및 파이널, 그랜드슬램 등 다양한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보유하며, 매년 10여 개의 국제스포츠경기대회 개최지를 선정한다. 달리 말하자면, 세계 각국 또는 주요 도시들을 대상으로 매년 10여 개의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판매한다. 국제스포츠경기대회의 성공적인 유치와 개최를 위해서는 국제스포츠경기대회 구매자의 관점에만 머무르기보다는 국제스포츠경기대회 판매자의 관점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스포츠경기대회 주최자 그리고 주관자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소유한 측(이하 주최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련 지식과 노하우(Know-how)가 축적되고 발전하나, 각 국제스포츠경기대회의 개최지 혹은 조직위원회(이하 주관자)는 대체로 백지에서 시작하며 해당 국제스포츠경기대회가 끝나고 나서야 충분한 지식과 개최능력이 갖춰지지만 그 순간 조직위원회는 해산하게 된다.
국제스포츠경기대회의 주최자와 주관자는 다양한 협상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른바 정보비대칭 상황이 펼쳐진다. 즉, 주최자는 국제스포츠경기대회와 관련한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으나, 주관자는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최자에게 기회주의적 행동 또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면, 주관자는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혹은 응당 얻어야 하는 바람직한 결과물을 충분히 얻지 못하거나(효과성의 문제),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투입이 발생하게 될 수도 있다(효율성의 문제).
물론, 주최자와 주관자 모두 해당 국제스포츠경기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것이 이해관계에 부합하므로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상호 협력한다. 그럼에도 상호간 다양한 사안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협상이 벌어진다.
협상의 대상이 되는 흔한 내용 중 한 가지는 국제스포츠경기대회 개최에 필요한 자원을 누가 더 많이 제공하느냐와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서, 주최자는 주관자가 가급적 많은 부분을 부담하도록 하려고 하고, 주관자는 반대로 주최자가 더 많은 부분을 부담하게 하려는 경우가 있다. 결국 국제스포츠경기대회 개최를 위해서 반드시 수행되어야 하는 부분을 누가 더 많이 담당할 것인가를 두고 협상을 벌이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같은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더라도, 주최자가 원하는 예산 투입 분야와 주관자가 원하는 예산 투입의 분야가 서로 다른 상황이다. 예를 들어, 주관자는 국제스포츠경기대회의 개·폐막식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개최도시를 홍보하거나 개최도시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을 해당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통해서 홍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대체로 선진국이 아닌 경우에 더욱 그러한 경향을 보인다.), 주최자는 경기 운영의 품질을 높이는 영역에 더 많은 예산이 할당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있다.
성공적인 대회 위한 경험과 지식 공유
최근 국제스포츠경기대회 영역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영역 중 하나는 유산(legacy)과 관련된 분야일 것이다. 국제스포츠경기대회의 주관자가 선정되는 시점이나, 주관자가 국제스포츠경기대회 준비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비교적 유산과 관련하여 주최자와 주관자의 의견이 대체로 합치한다.
하지만 대회가 임박해 올수록 주관자는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치러내는 데 급급해지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결국 주관자는 국제스포츠경기대회의 중장기적인 개최효과 또는 유산에 대해 고심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즉, 기초적인 영역이 갖추어진 후에야 중장기적인 성과를 달성할 여유가 생길 텐데, 대회가 다가옴에 따라 그러한 여유는 사라져만 간다.
모든 주관자들이 위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세계태권도연맹의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세계 각국에 판매할 때 필자를 긴장시키는 국가들이 있었다. 그 긴장감은 건강한 의미에서의 긴장감을 말한다. 바로 덴마크 또는 영국을 개최지로 선정하면서 그러한 건강한 긴장감을 느꼈다.
덴마크의 경우는 ‘스포트 이벤트 덴마크(Sport Event Denmark)’라는 전문 조직을 두어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전략적으로 선별하여 유치하고 개최한다. 영국의 경우는 ‘유케이 스포트(UK Sport)’라는 조직이 국제스포츠경기대회와 관련된 전략을 총체적으로 지휘한다. 이 두 국가는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국제스포츠경기대회에 대한 이해도가 대단히 높으며 국가 차원에서 중장기적인 국제스포츠경기대회 전략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므로, 때로는 주최자들보다 더 높은 기준과 전문성으로 국제스포츠경기대회에 접근한다. 이러한 상황이 주최자가 건강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덴마크 또는 영국 체계의 국내 도입은 비교적 대규모의 정책적 변화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교적 규모는 작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신속히 만들 수 있는 방법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옵저버 프로그램(observer program)’이다. 영국에서 유케이 스포트가 주최하는 옵저버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영국 내에서 개최를 준비 중인 다양한 국제스포츠경기대회 주관자들(조직위원회 관계자 등)이 특정 국제스포츠경기대회 개최 현장에 모여 해당 국제스포츠경기대회의 개최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행사이다.
아래는 2019년 7월에 영국 리버풀(Liverpool)에서 개최된 ‘넷볼 월드컵(Netball World Cup)’에서 실행된 옵저버 프로그램의 개요이다.
위 옵저버 프로그램은 넷볼 월드컵이라는 국제스포츠경기대회 개최를 계기로 다양한 국제스포츠경기대회 조직위원회, 국제스포츠경기대회 개최에 관심이 있는 지방자치단체 및 종목단체(National Federation) 등이 참가하여 현장감 있는 최신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다. 참가규모는 영국체조연맹, 영국배드민턴연맹, 영국수영연맹, 영국스키&스노보드연맹, 영국하키연맹, 피지넷볼연맹 등 20여 개 단체 50여 명이었다. 특히, 남아공 케이프타운 시의원 및 도시 관계자들이 향후 국제스포츠경기대회 개최에 관심을 보이며 참석하기도 하였다.
다만, 대회 고유 업무가 과중한 조직위원회에게 옵저버 프로그램 개최를 위한 추가적인 예산과 역량을 투입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으므로, 프로그램의 운영비(물품·인쇄물 제작, 회의실 임차, 케이터링 등)와 참가자 지원 업무 등을 유케이 스포트가 상당 부분 부담하였다. 아울러 영국 내에서 유케이 스포트의 지원을 받아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개최하고자 하는 경우, 옵저버 프로그램의 개최 또는 참석을 승인조건으로 제시하여 옵저버 프로그램이 정착되도록 하는 정책적 지원도 있었다.
맺는 글
이 글은 다음의 질문으로 시작한 바 있다. ‘그동안 유치하고 개최된 수많은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국제스포츠경기대회 개최능력은 일취월장하였는가? 혹은 유치 및 개최를 통한 지식들이 체계적으로 축적되고 전수되어 오고 있는가?’
우리가 위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매년 50개 이상의 국제스포츠경기대회 유치 및 개최로부터 발생하는 양질의 경험과 지식 유산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공유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매년 50여 개의 국제스포츠경기대회 모두가 매번 새하얀 백지에서 시작한다면, 관련 경험과 지식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유치하고 개최하는 영국이 누리는 만큼의 혜택은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체계가 갖춰진다면,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중앙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의 이익과 스포츠의 발전을 알뜰히 챙겨내는 것에 큰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유치하고자 하는 주체들, 국제스포츠경기대회의 유치에 성공해서 개최를 준비하고 있는 주체들,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이미 개최해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주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질문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한국형 옵저버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도 영국이 누리는 혜택을 알뜰히 챙겨내고, 국제스포츠경기대회 주최자들에게 건강한 긴장감을 안겨줄 날을 기대해 본다.
*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기고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