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8일, 미국 스포츠전문지 <디 애슬레틱(THE ATHLETIC)>은 NBA(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미국프로농구협회) 현역선수 108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다. 설문항목 중에는 ‘가장 함께 뛰고 싶은 감독’도 있었는데, 가장 많이 표를 얻은 인물이 눈길을 끌었다. 바로 고희(古稀)를 넘긴 현역 최고령 감독 그렉 포포비치(Gregg Popovich)였기 때문이다. 손자뻘인 20대의 백만장자들이 주를 이루는 NBA에서 할아버지 감독이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된 비결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 비결은 오늘날 대한민국 스포츠의 리더십을 관통하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무엇이 달랐나
무승부가 있는 축구, 야구와 다르게 농구는 무승부가 없다. 경기 종료음이 울렸을 때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몇 번이고 연장전을 치러서라도 승패를 결정한다. NBA는 1950년대 6번의 연장전을 치르고서야 경기를 마친 적이 있었고, 2009년 KBL(Korea Basketball League/한국프로농구)에서도 5번이나 연장전을 치른 끝에 승패를 결정지었다. 어느 스포츠종목이건 단 한 골, 1점이라도 앞선 팀이 이긴다. 그렇기에 0.5초만이 남아있더라도 공격이든 수비든 방심하지 말고 집중해야 한다. 정해진 작전과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특히 감독은 벤치에서 선수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끌어줘야 하며, 승리할 수 있는 작전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이긴 뒤에도 감독의 역할은 끝나지 않는다. 다시 다음 승리를 위해 굶주린 상태가 될 수 있도록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
NBA 선수들이 70대 노감독, 즉 그렉 포포비치 감독과 함께 뛰고 싶다고 한 이유는 바로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이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콧대 높은 스타선수들이 그의 한 마디에 귀 기울이게 하고, 세계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팀’으로 뭉치는데 있어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온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소속팀을 5번 우승으로 이끌었고, 7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NBA 역사상 가장 많이 이긴 감독이 되었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뛰어난 조직 관리자이기도 하다. 코치진(Coaching Staff)을 훌륭히 성장시켰다. 미국에서는 농구팀 감독을 ‘헤드 코치(Head Coach)’라 하고, 그를 보좌하는 코치들을 ‘어시스턴트 코치(Assistant Coach)’라고 부른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과 함께 한 어시스턴트 코치들은 대부분 다른 팀의 감독으로 스카우트 됐다. 앞서 언급한 <디 애슬레틱>의 설문에서 2위에 이름을 올린 스티브 커(Steve Kerr) 감독도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배출한 대표적인 제자다. 2022-2023시즌 NBA ‘올해의 감독’ 수상자인 마이크 브라운(Mike Brown) 감독 역시 그렉 포포비치 감독 밑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의 제자들이 NBA 팀들의 영입 1순위에 올랐을 정도로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지도자 양성’에서도 ‘공인 인증’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인기가 1위인 이유는 여전히 놀랍다. 현재 NBA의 중심축을 이루는 대다수가 ‘Z세대’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Z세대의 남다른 행동 및 사고방식에 대한 다양한 연구 논문 및 통계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미국 스포츠 현장에서도 세대 차이에 대한 연구는 큰 화두다. 그런 Z세대들 조차 그렉 포포비치 감독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리더십을 들여다보면 오늘날 국내에서 존경받아 온 지도자들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1.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공군 출신이다. 대부분 군인 출신이라 하면 상하 관계를 명확히 하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그는 그 반대였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헤드 코치의 ‘Head’를 맨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가장 먼저 책임지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종종 프로스포츠에서는 경기에 패배한 뒤, 심판판정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선수들의 미숙함부터 탓하는 감독도 있다. 잠시의 망신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조직의 원망은 남게 된다. 이는 신뢰가 깨지는 첫 단계다. 하지만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남 탓’을 자제한 채 조직을 품었다. 대신 팀이 잘 되는 날에는 어김없이 공로자를 수면 위에 떠올렸고, 함께 칭찬해주고 함께 기념하며 자신감을 북돋워 주었다.
2. 유연한 사고방식의 전술가
그러나 마냥 ‘잘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선수와 지도자 간의 신뢰에 금이 가는 계기 중 하나는 선수들 스스로가 감독의 밑천이 떨어졌다고 판단할 때다. 즉, 준비가 덜 됐다고 느끼거나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함께 쌓아온 신뢰라는 빙산은 사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훈련을 통해 충분히 준비가 잘 됐다고 느낄 때 서로의 신뢰가 굳건해지고 자신감이 올라온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방식도 중요하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1996년 첫 지휘봉을 잡은 후, 농구계는 수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5명이 40분(NBA는 48분)간 경기해서 더 많이 득점한 팀이 이긴다는 기본 틀은 변함이 없었지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핵심 요소는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해왔다. 빠른 농구, 수비 중심의 농구, 3점 슛 중심의 농구 등 유행이 바뀌어 온 것이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자기 철학만 고집하기보다는 시대 변화에 맞춰 훈련과 전술을 바꿔갔다. 흔히들 ‘명 감독’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대표 전술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에게는 그런 전술은 따로 없다. 그래서인지 그렉 포포비치 감독의 훈련을 본 뒤 ‘누구나 다 아는 작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농구팀에서의 감독은 단 한 경기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한 경기, 한 라운드, 한 시즌,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팀을 자신의 철학대로 이끌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그렉 포포비치 감독의 유연한 자세가 큰 도움이 됐다. 즉,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하나만 고집하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팀을 키운 것이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긴 시간 그가 소속팀들을 강팀으로 군림할 수 있게 한 이유다.
3. ‘식구’라는 단어의 의미
시대를 풍미한 강팀에는 고유한 문화가 있다. 이는 새로운 선수가 와도 자연스럽게 따르게 되는 그런 팀의 고유한 문화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있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에는 ‘스퍼스 문화’가 있었고, KBL을 지배한 울산 현대모비스는 유재학 감독이 이식한 ‘모비스 문화’가 존재했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그 문화의 바탕을 ‘가족’으로 둔다. 돈이 오고가는 ‘프로스포츠’와 ‘가족’이란 단어는 좀 이질적이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개인 종목과 달리 농구는 코트 위 5명이 정확한 타이밍에 움직여야 한다. 행여 1명이 욕심을 냈다가는 순식간에 조직력이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서로를 이해해야 하며, 선수마다 무엇을 잘하고, 어떤 식의 움직임을 좋아하는지 꿰고 있어야 한다.
또한 한국이든 미국이든 프로스포츠 리그는 1~2달이 아닌, 반년에 가까운 긴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운동장 밖에서의 호흡도 중요하다. 가족보다도 자주 보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문화’에 집중한 이유다. 그는 소속팀에 대해 “우리 팀의 성공은 와인 한 잔에서부터 시작됐다”라고 말한 바 있다. 원정 경기를 갈 때면 직접 식당을 예약하고, 함께 마실 와인을 골라 대화를 나누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에는 브라질, 프랑스, 아르헨티나, 튀르키예, 호주, 심지어 중국까지 유독 해외에서 온 선수들이 많았다. 각기 다른 문화에서 나고 자란 선수들이었기에 단순히 ‘농구’라는 공통분모만으로 묶기에는 쉽지 않았다. 지금은 SNS(Social Network Service/소셜네트워크서비스), OTT(Over The Top/인터넷동영상서비스) 등이 워낙 우리 생활에 밀접해있어 다른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지만, 2010년 이전만 하더라도 이를 ‘생활’로 쉽게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이는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유독 다 같이 함께하는 자리와 대화를 강조한 배경이다.
미국의 스포츠전문매체 <ESPN>은 기사를 통해 그의 집무실을 묘사한 적이 있는데, 그렉 포포비치 감독의 서재에는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책이 잔뜩 쌓여 있었다고 했다. 타지에서 온 선수가 긴장할 때면 그 선수 나라의 언어로 ‘힘내’라고 격려하며 다가갔다. 슬럼프에 빠진 선수를 위해서는 식사 초대를 하는 일도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승리와 패배, 그리고 돈이 지배하는 프로스포츠에서는 그야말로 낭만적인 접근이었다. 그래서일까. 함께 뛰었던 선수들은 그렉 포포비치 감독에 대해 ‘나의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4. 공평한 대우
프로스포츠에서도 농구는 한 개인의 기량이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큰 종목이다. 예를 들어 2m가 넘는 장신 선수 1명이 팀 전체를 바꿀 수 있고, 패스를 잘하는 선수 1명이 팀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다. 언론은 이들을 ‘스타’라 부른다. 구단 역시 스타선수들에게 막대한 연봉을 지급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NBA에서는 스타선수 한 명의 몸값이 팀 전체 예산의 30%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그들이 구단에서 초월적 권한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큰 역할을 맡았을 뿐, 팀의 일원임은 변함이 없다. 다만 자신의 존재감을 악용해 몽니를 부리는 선수들도 있는데, 이때 감독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 선수의 투정을 받아주고 그 선수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놔둔다면 제아무리 특급 스타라고 해도 언젠가는 다른 일원들의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차별 대우는 지도자가 선수들로부터 신뢰를 잃는 가장 보편적인 사례다. 하나의 예외는 또 다른 예외를 낳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강경한 입장이었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 곁에는 팀 던컨(Tim Duncan)이라는 스타선수가 있었다. MVP(Most Valuable Player/최우수선수)부터 우승, 국가대표까지 선수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룬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간판이었다. 그러나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그런 팀 던컨에게 조차 예외를 두지 않았다. 경기를 시작한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를 빼버린 적도 있었다. 이유는 ‘경기를 뛸 자세가 안 되어 있어서’였다. 이는 다른 후보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주었고, ‘저 감독은 규칙을 어기는 선수는 누구라도 가차 없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5. 공감
‘스타선수가 명장이 되는 것은 힘들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NBA만 봐도 그 말이 증명된다. NBA 30개 구단 중 NBA 선수 경력을 가진 감독은 겨우 11명뿐이다. 다른 19명 중에도 프로선수 경력자가 있긴 하지만, NBA에선 뛰지 못한 채 각국에서 떠돌이 선수생활을 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 NBA 선수 경력이 있는 11명의 감독 중에서도 주전으로 오래 뛰었던 사람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이 과연 전 세계에서 농구 실력으로 손꼽히는 선수들만 모인 NBA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는 게 가능할까? 물론이다. 지도자로서 선수를 성장시키고, 조직을 이끄는 능력은 선수 때의 실력과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할 일이 많다. 프로는 코치진과 선수들을 발전시켜 가며, 가능한 많은 승리를 거둬 우승에 도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아마추어, 즉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무대에서는 좋은 선수를 수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선수가 ‘사회’에 성공적으로 발걸음을 내딛도록 발전시켜야 한다. 학생의 책임이라 할 수 있는 학업에도 소홀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최근 구단들은 감독을 ‘잘 가르치는 사람’을 넘어 ‘잘 관리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런 면에서 관리자의 최고 덕목 중 하나는 첫 번째 선수부터 가장 비중이 적은 열다섯 번째 선수까지, 바로 밑에서 자신을 보좌하는 수석 코치부터 막내 직원까지 잘 파악하고 돌보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공감능력’이다. 감독과 막내 직원, 감독과 말단 선수 간의 ‘공감 격차’를 얼마나 좁히느냐다. 한때 KBL에서는 “아파? 많이 아파? 나도 아파!”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적이 있다. 모 감독이 힘들어하는 선수를 보며 내뱉은 말이다. 아마도 이는 선수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왜 이런 플레이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니?”라며 ‘잘하지 못하는 선수’들을 타박하는 것이다. 필자 역시 취재현장에서 이런 유형의 지도자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선수들은 처음부터 다 잘할 수가 없다. 지도자는 못하는 선수들의 이유를 찾아내어 문제점은 무엇인지, 해결책은 어디서 찾아야 할지 함께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어야 한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매사가 따뜻한 감독은 아니었다. 가정적이긴 했어도 때로는 혼도 내고 독설도 했다. 그러나 방황하는 선수들을 잡아주고 역할을 주면서 자신감을 올렸다. 내 코트 안팎에서의 스트레스를 이해해주고 품어주는 지도자였다.
오늘날 선수와 팬의 거리는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SNS와 멀티미디어 덕분이다. 팬들은 원할 때면 언제나 선수들의 다양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선수들도 새로운 매체를 이용해 본인들의 또 다른 매력을 유감없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부담이 될 때도 있다.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는 만큼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때로는 경기 중 저지른 실수 하나가 계속 확대 및 재생산되어 괴롭힐 때도 있다. 경기에서 지는 날이면 ‘역적’이 되어 댓글 창이 시끌벅적해진다. 원치 않는 인신공격을 당할 때도 있다. 새로운 스트레스를 낳는 것이다. 2014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티브 커 감독은 선수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군사훈련에 임하는 군인만큼이나 높다고 했다. 그깟 공놀이로 치부하기에는 산업규모가 크고, 부상으로 선수 생명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만큼 ‘잃을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것이다. 선수들이 이제 막 세상을 배워갈 10~20대들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국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산만한 상태에 놓인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계속 집중하여 열심히 해야 할 이유를 제공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지도자의 가장 큰 역할이 되고 있다. 백만장자 선수들이 고령의 그렉 포포비치 감독을 가장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서 열거한 5가지의 장점을 이용해 선수들을 품고 다독이고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리더십을 가진 감독들이 주목 받고 있다. 2021-2022시즌 서울 SK 나이츠의 지휘봉을 잡은 전희철 감독은 ‘스타 출신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깬 몇 안되는 감독이다. 선수들을 품어주고, 고충을 함께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주려 노력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는 무섭게 호통을 치지만, 친형 같은 따뜻함으로 실수를 위로한다. 전략적인 면에서도 준비가 철저하다. 덕분에 서울 SK 나이츠는 2021-2022시즌에 우승을 달성했다. 2022-2023시즌에는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잇몸’들을 활성화시키며 결승에 진출하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희철 감독이 감독 데뷔와 동시에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건 오랜 준비 덕분이었다. 선수생활 은퇴 후 10년간 코치로 감독을 보좌하며 습득한 노하우가 힘이 됐다는 것이다. 안양 KGC 인삼공사의 김상식 감독도 같은 유형의 지도자로 뽑힌다. 잘 안되는 부분을 강조하여 질책하기보다는 돋보일 수 있는 부분을 강조하며 자신감 있게 임하도록 유도한다. 안된 것을 되짚기보다는 다음 작전에 집중하길 기대한다.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안 풀린 부분을 지적하기보다는 본인을 탓하며 반등을 약속한다. 이런 지도방식은 10~15년 전만 해도 ‘유약하다’, ‘강단이 없다’는 평이었지만 오늘날 선수들에게는 적합한 지도방식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안양 KGC 인삼공사는 정규리그 개막 후 마지막 날까지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으며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맺음말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체로 스포츠에서의 성공한 리더십은 승자에 의해 정의되어 왔다. 우승팀의 방식이 최고의 리더십으로 여겨져 온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스포츠의 리더십은 대체로 ‘호랑이 감독의 리더십’으로 통했다. 정신력, 근성을 강조하는가 하면 때로는 체벌도 묵인됐다. 그러나 다그쳐서 되던 시대는 지났다. 반년에 가까운 긴 시즌 동안 선수단과 코치진이 전술, 체력, 정신력 등의 조화를 이루고, 지속가능한 ‘하나의 팀(One Team)’을 만들 수 있는 관리자형의 ‘형님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렉 포포비치 감독의 지도 방식은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떠나 모든 지도자가 참고해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132호에 게재된 기고문 입니다.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