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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사회적 위험성에 맞는 안전제도 절실하다

2026.03.16 송창영 광주대 방재안전학과 교수(한국재난안전기술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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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생한 대형 사고들은 전형적인 '제도적 사각지대'의 산물이다. 이에 이제는 사고 후 대책을 마련하는 구태를 벗어나, 법적 구조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일을 위한 촘촘하고 빈틈없는 제도적 안전 설계다.
송창영 광주대 방재안전학과 교수(한국재난안전기술원 이사장)
송창영 광주대 방재안전학과 교수(한국재난안전기술원 이사장)


대한민국은 첨단 기술력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 성적표'는 여전히 낙제점이다. 최근 발생한 대형 사고들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급변하는 산업 구조와 신기술의 특성을 법과 제도가 담아내지 못해 발생한 전형적인 '제도적 사각지대'의 산물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사고가 터진 뒤에야 법을 고치는 '사후 약방문' 식의 대응을 반복할 것인가.

광주 대표도서관 건립 현장의 붕괴 사고는 기초적인 '건축구조감리'의 부재가 핵심이었다. 전문가의 검증이 생략된 현장은 사소한 오류에도 처참히 무너졌다.

더욱 교묘한 법적 사각지대는 동서발전 울산 화력발전소 해체 현장에서 드러났다. 사고가 난 거대 보일러 구조물은 위험도가 매우 높음에도, 법적으로 건축물이 아닌 '기계장치'로 분류되었다. 이로 인해 '건축물관리법'상의 엄격한 해체계획서 작성과 외부 전문가 심의를 모두 우회할 수 있었고, 안전 통제가 사라진 현장은 결국 붕괴라는 비극을 맞이했다. 시설물의 행정적 분류가 생명을 보호해야 할 법의 목적을 가린 셈이다.

신산업 분야의 위협도 구체적이다.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 온도가 순식간에 치솟는 '열폭주' 현상을 동반하지만, 지하 주차장 중심의 우리 주거 환경은 이를 제어할 소방 기준이 전무하다. 육상 풍력발전 역시 산악 지형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설치 이후의 구조 안전성과 노후 설비 점검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환경영향평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사고의 위험성은 수치로 증명된다. 해체 및 철거공사는 2020년 243건에서 2024년 261건으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며, 사망률은 일반 건설업 평균의 2배 이상이다. 2025년 10월 기준, 해체 현장에서만 이미 174건의 사고가 집계되어 제도 개선의 시급성을 알리고 있다.

전기차 화재는 2020년 11건에서 2024년 73건으로 4년 만에 약 6.6배 급증했다. 재산 피해 또한 15배 이상 폭증하며 2025년 상반기에만 누적 100억 원에 육박한다. 육상 풍력발전 역시 노후 설비 수명 도래로 최근 2년 사이 화순, 영덕 등 5개 지역 이상에서 붕괴와 화재가 발생하는 등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강남구 안전한국훈련'에서 소방대원들이 전기차 화재진압을 위해 이동식 소화수조를 조립하고 있다. 2025.10.20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강남구 안전한국훈련'에서 소방대원들이 전기차 화재진압을 위해 이동식 소화수조를 조립하고 있다. 2025.10.20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러한 사고의 근저에는 세 가지 공백이 존재한다. 첫째, 시설물 분류와 감리의 형식화다. 거대 구조물을 '기계'로 분류하면 안전 심의망이 작동하지 않으며, 실제 시공 단계에서 구조 안전성을 검증할 '상주 구조감리' 강제성도 약해 감리가 시공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둘째, 신기술 대응의 입법 지체다. 현행법은 내연기관 차량 기준이라 전기차 열폭주 대응 기준이 없다. 

셋째, 전 생애주기 관리 표준의 부재다. 풍력발전 등은 설치 단계의 규제는 있지만, 운영 및 노후화에 따른 유지보수 가이드라인은 기술 발전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우리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미국은 국제건축기준(IBC)에 따라 건축주가 시공사와 독립된 '특별 검사관(Special Inspection)'을 고용해 구조 안전성을 상시 점검하도록 강제한다. 용도가 무엇이든 구조적 위험이 있다면 전문가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또한 NFPA 855 기준을 통해 배터리 화재 대응을 위한 소방 설비 기준을 법으로 명시하여 기술의 속도에 발을 맞추고 있다.

일본은 건설 리사이클법을 통해 해체 공사를 단순 철거가 아닌 고도의 엔지니어링 영역으로 관리하며, 설비와 건축물의 구분을 넘어 해체 시의 안전성을 이중으로 검토한다. 이는 울산 사고와 같은 분류의 맹점을 방지하는 훌륭한 본보기다.

이제는 사고 후 대책을 마련하는 구태를 벗어나, 법적 구조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

울산 사례와 같은 공백을 막기 위해, 건축물 여부와 관계없이 일정 규모 이상의 '거대 산업 구조물'은 건축물관리법에 준하는 해체심의와 안전 관리를 받도록 법적 정의를 확대해야 한다.

고난도 시공 및 해체 공정에는 시공사로부터 독립된 구조기술사가 상주하는 '제3자 구조 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모델(BIM)과 현장을 대조하는 스마트 감리 시스템 도입을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지하 주차장 내 상방향 스프링클러와 내화벽체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성능위주 소방설계 기준을 개선해야 하고, 제조사의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데이터를 소방 당국과 공유하는 기틀을 닦아야 한다. 풍력발전 또한 노후 진단 주기를 명시하고 '데이터 기록 장치' 장착을 의무화해야 한다.

안전 사각지대는 법이 미처 닿지 못한 곳이 아니라, 우리가 효율이라는 명목하에 애써 외면해온 현장의 틈새다. 

법은 사회의 최소한의 안전망이어야 하며, 그 안전망에 구멍이 뚫려 있다면 기술이 아무리 화려하게 발전한들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고 후의 탄식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촘촘하고 빈틈없는 제도적 안전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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