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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미술사 대논쟁, ‘선이냐, 색이냐’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루벤스 파 VS 푸생 파

2014.10.13 변종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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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서 라이벌은 당사자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추종자들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17세기 프랑스 화단에서 일어난 ‘루벤스 파’와 ‘푸생 파’의 대립이 그렇다. 두 계파간의 대립은 정작 동시대를 살았던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와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사이의 싸움은 아니다.

‘루벤스 파’와 ‘푸생 파’의 대립은 루벤스 화풍의 추종자들과 푸생 화풍의 추종자들이 시대를 넘어 프랑스 미술계를 양분한 라이벌 간 싸움이다.

두 진영의 갈등요소는 선과 색이었다. 푸생 파는 ‘선’을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조형요소로 꼽았고, 루벤스 파는 ‘색채’를 조형요소의 핵심으로 꼽았다.

사실 선(소묘)과 색(색채)은 화가들이 작품을 제작할 때 가장 크게 고민하는 조형 요소이다. 심하게 말하면 미술사는 선과 색을 놓고 논쟁한 역사다.

라파엘로와 티치아노, 루벤스와 푸생, 들라크루아와 앵그르 등 14세기에서 19세기까지 미술사는 가히 선과 색의 논쟁이라 할 만하다.

캔버스에서 대상을 없애버린 추상미술이 등장하기까지 지속된 선과 색의 갈등은 회화사에서 일어난 가장 오래된 싸움이다.

그 중 루벤스와 푸생의 화풍을 놓고 벌어진 ‘루벤스 파’와 ‘푸생 파’의 대립은 각 진영을 대표하는 리더들 간의 싸움으로도 유명하다.

필립 드 상파뉴와 가브리엘 블랑샤르 사이의 색채논쟁도 뜨거웠지만, 실제 두 진영의 흥미로운 대결은 르 브랭과 로제 드 필 간에 펼쳐진 논쟁이다.

◇ 루벤스 파 VS 푸생 파

푸생 파를 이끈 실질적 리더는 샤를 르 브랭(Charles Le Brun, 1619~1690)이다. 르 브랭은 1663년 왕립 미술관 관장, 1664년에는 궁정 수석 화가로서 당대 프랑스 화단을 이끈 수장이었다.

르 브랭은 왕립회화·조각 아카데미의 학장에 있으면서 고대부터 고전주의를 이끈 화가들의 위상을 공적에 따라 서열화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는 1672년 ‘루벤스 파’와 ‘푸생 파’의 논쟁에서 색채보다 소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당시 유럽을 휩쓴 바로크 양식 대신 고전주의 대가인 푸생의 화풍을 아카데미 교본으로 삼아 표현방법을 규칙화하고자 했다. 푸생처럼 엄격한 형식과 교훈적 서사가 뚜렷한 그림을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취급했다.

르 브랭의 주장은 거부할 수 없는 절대원칙처럼 인식되며 아카데미 공식 견해로 다음 세기까지 프랑스 미술계를 이끌었다.

푸생 파에 맞선 루벤스 파의 대표주자는 로제 드 필(Roger de Pile, 1635-1709)이란 비평가다.

사실 로제 드 필은 당대를 주름잡던 화가도 아카데미 정식회원도 아닌 아마추어 고문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는 루이 14세의 외교사절로 유럽의 여러 나라를 방문했을 때 각국의 미술관을 관람했던 경험 등을 토대로 미술사를 심도 있게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는 개인적으로 푸생 파가 내세운 소묘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정작 회화의 본질을 드러내는 힘은 색채에 있다고 주장했다. 색채와 명암법이야말로 조각에는 없는 회화만의 특성으로 회화의 위대성을 판가름하는 핵심 요소라는 논리를 펼치며 ‘루벤스 파’와 ‘푸생 파’의 논쟁에서 루벤스 파를 지지했다.

푸생을 아카데미 화풍의 표본으로 삼고 있던 르 브랭에 루벤스를 옹호하는 로제 드 필의 등장은 권위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아카데미 화풍의 견고한 규칙을 흔들 만큼 파괴력이 컸다.

루벤스파와 푸생 파의 대립은 티치아노의 작품에 대한 비평에서부터 강하게 부딪혔다.

라파엘로(왼쪽)와 티치아노의 비교
라파엘로(왼쪽)와 티치아노의 비교

르 브랭은 티치아노를 라파엘로에 견주어 색채의 성취를 위해서 회화의 진리를 저버린 화가라고 비판했다. 반면, 로제 드 필은 티치아노를 가장 뛰어난 색채화가로 평가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 화가의 서열체계화와 예술을 재는 저울

르 브랭이 고대부터 고전주의까지 화가들의 서열체계를 완성했던 것처럼 로제 드 필 역시 화가들의 재능을 비교분석하여 순위를 매기는 작업을 했다.

1708년 자신의 오랜 경험과 이론을 바탕으로 시각 예술 일반에 대한 평가 기준을 찾고자 출간한 것이 ‘그림들의 대차 대조표(La balance des peintures)’이다.

이 책은 르 브랭이 주도한 아카데미 화풍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예술을 재는 저울’로 통하는 이 책에서 로제 드 필은 당대까지 미술사를 주름잡던 화가들을 구성, 드로잉, 색채, 표현의 4가지로 나누고 항목별로 20점을 만점으로 점수를 매겼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49점), 미켈란젤로(37점), 라파엘로(65점)라는 르네상스 3대 거장부터 티치아노(51점), 루벤스(65점), 렘브란트(50점)는 물론 당시 프랑스화풍을 이끄는 푸생(53점)과 자신과 끝까지 대립했던 르 브랭(56점)까지 점수를 매기고,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는 기준으로 제시했다.     

화가

선(소묘)

색(색채)

레오나르도 다빈치

16

4

미켈란젤로

17

4

라파엘로

18

12

티치아노

15

18

렘브란트

6

17

루벤스

13

17

푸생

17

6

르 브랭

16

8

르 브랭이 ‘인물배치’, ‘인물소묘와 비례’, ‘인간정신의 표현’, ‘원근법과 색채’라는 4가지 관점을 중심으로 서열체계를 세운 것에 견주어 로제 드 필은 오히려 4가지 조형요소로만 나누고 각 항목별 점수에 따라 서열화하였다.

‘루벤스 파’와 ‘푸생 파’의 갈등이 색채 논쟁에 있었던 만큼 로제 드 필의 점수표에서 주목할 항목은 화가별 소묘와 색채의 비교이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루벤스와 푸생에 대한 평가이다. 로제 드 필의 총점에서 루벤스는 65점, 푸생은 53점으로 루벤스가 월등이 높았다.

두 사람의 차이는 부문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소묘에서 푸생은 17점이고 루벤스는 13점에 불과하다. 반대로 색채에서는 루벤스가 17점인데 비해 푸생은 6점밖에 되지 않는다.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612년, 패널, 벨기에,안트웨르펜 대성당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612년, 패널, 벨기에,안트웨르펜 대성당

점수에서 나타났듯이 로제 드 필의 저서는 고전주의 화풍을 고집하는 화가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될 요인을 지니고 있었다.

◇ 끝나지 않은 논쟁

‘루벤스 파’와 ‘푸생 파’간 선과 색을 놓고 양립했던 두 계파간의 대결은 르 브랭이 죽고 난 이후 아카데미 화풍(푸생화풍)의 기세가 꺾이면서 루벤스 파 쪽으로 기울었다.

이 같은 흐름은 르 브랭의 조수로 활동했던 샤를 라 포스가 왕립아카데미 원장이 돼 ‘소묘와 색채의 싸움’에서 르 브랭 대신 친구였던 로제 드 필의 손을 들어주면서 확실하게 루벤스 파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결국에는 ‘선과 색의 논쟁’에서 색채를 중시한 로제 드 필의 주장이 승리했다.

푸생, 솔로몬의 심판, 1649, Oil on canvas,101x150cm, 루브르
푸생, 솔로몬의 재판, 1649년, Oil on canvas,101x150cm, 루브르

루벤스 파의 승리는 미술시장에도 영향을 끼쳤다. 당시의 컬렉터들은 권위 있는 아카데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푸생의 작품 대신 루벤스의 작품을 구입했다.

절대권위를 자랑하던 푸생화풍 대신 미술사가와 이론가로 역할을 확대해온 로제 드 필의 체계적인 이론과 뛰어난 감식안에 컬렉터들의 마음이 움직였던 셈이다.

어찌됐든 색채를 중시한 루벤스 파의 위세는 18세기 프랑스 미술을 주도한 로코코까지 이어졌다.

그렇다고 루벤스 파의 승리가 영원히 지속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고전주의 화풍을 열망한 새로운 화가들(신고전주의)이 등장하면서 ‘선과 색의 논쟁’은 재점화 되었다.

그리고 이 논쟁은 현대미술에서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에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4.2)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 겸 편집위원, ANCI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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