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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와 정치영화

[영화 A to Z, 시네마를 관통하는 26개 키워드] ⓩ 영화 ‘제트 Z’

2020.12.16 이지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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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영화감독은 항상 지성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영화란 카피의 예술이고, 가장 작은 ‘세상의 모방’이다. 사건이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영화는 현실을 절단하고 정화해 보여주는 수단이 된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피사체가 아닌, 카메라 뒤쪽의 ‘주제’를 포착한다. 그리고 사고한다. 이때 한 편의 영화가 내미는 한정적인 세계는 ‘모범적 역사의 이야기’를 담는다.

바디우에 따르면 구체적인 글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초월적 진실로 느슨하게 제시되는 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존하는 모든 영화는 정치적 패턴을 띤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는 ‘지배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 시네필의 외적 시선

코스타 가브라스의 영화 <제트>(1969)를 보면서 알랭 바디우가 떠올랐다.

<제트>는 그리스의 혁명가 ‘램브라키스의 암살’을 다룬 영화로, ‘Z’라 불리는 좌파의원이 원인 모를 습격을 받아 죽음에 이르게 된 사태를 쫓는다. 영화 속에서 정부는 진실을 가리려고 판결을 조작한다. 이에 젊은 검사와 기자가 주축이 되어 감춰진 진실을 추적한다.

영화는 사회적인 상황을 장르적으로 수용한다. 기존의 프로덕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플롯이 주장하는 역사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이용한다. 그러니 <제트>와 같은 정치적 드라마를 말하기 위해서는 알랭 바디우의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즉, 내러티브의 관점으로 작품을 살펴야 한다.

지난 해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열린 오픈토크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해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열린 오픈토크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영화이론에서 이러한 글쓰기는 ‘시네필적 접근’으로 분류된다. 영화를 이용해서 사회적 상황을 관망하거나, 정치적 주제를 언급하기 위해 영화를 ‘거쳐’ 가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시네필은 영화에 대해 직접 얘기하지 않는다. 아니,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화이론가가 아니고, 들뢰즈와 같은 영화사상가도 아니다.

비견컨대 바디우가 출간한 영화 관련 서적들은, 들뢰즈처럼 영화문법을 기반으로 작성되지 않는다. 무르나우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다룰 때에도 바디우는 마르크스레닌주의나 문화적 행동기관을 언급한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그의 모든 저작이 이러한 관점에서 완성되었다.

요컨대 영화 자체가 아닌 ‘시네마의 가짜 움직임’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에 관해 바디우는 집중한다. 푸코나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사유하는 시네필에게 시네마는 애매하고 일시적인 가시적 사상의 반영체일 뿐이다.

◈ 고다르의 내적 접근

<제트>와 비슷한 시기, 그러니까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극장의 인기가 줄어들던 시절에 장 뤽 고다르는 독자적인 행보를 보였다. 68혁명 이후 고다르는 ‘비디오’를 이용해서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새로운 매체가 영화의 산업적인 매커니즘을 해체할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당시 고다르는 시각적인 코드와 제작 수단의 본질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에게 있어 영화는 공개적이고 대중적이며 (동시에 텔레비전과 비교해서) 연약한 미디어였다. 따라서 재설계가 필요해 보였다.

만일 미디어로서 상대적인 이득을 챙기지 못한다면, 영화는 ‘사상의 이익’을 추구해야 했다. 이러한 생각으로 고다르는 ‘지가 베르토프 그룹’을 형성한다.

1969년에서 1973년 사이에 “누구를 위해?” 혹은 “누구에 대항해서?”라고 질문하며 지가 베르토프 그룹은 영화를 제작했다. ‘정치적인 영화를 정치적인 태도를 가지고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그들은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정치적으로 생각하길 바랐다. 하지만 작품에 답을 담지는 않았다. 움직이는 사운드에 스틸사진을 배치하고, 화면에 비친 이미지와 내레이션 목소리를 분리하는 등 변증법적 방식으로 관객들의 사고를 자극했다.

지가 베르토프 그룹은 영화전문가처럼 행동하는 것을 거부한다. 영화이론의 관습적인 법칙도 거절한다. 대신 저렴한 필름이나 비디오를 이용해 ‘활동가’적 행보를 보인다. 정확히 말해 그들이 만든 것은 정치영화가 아니라 ‘행동주의 영화’이다. <블라디미르와 로자>(1970), <만사형통>(1972),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1972) 등이 이에 속한다.

◈ 디지털 시대의 정치영화

이제 와서 ‘영상’이 ‘책’보다 모호한 기록 장치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영화는 취향을 고루 담아내는 유연한 매체이며, 영화가 지닌 산업적인 측면은 예술적이고 내부적인 패턴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니 고다르처럼 미학적인 접근에 치우치지 않고도, 혹은 가브라스처럼 프로덕션의 영속성에 기대지 않고도 둘 다 성취할 수 있다. 봉준호의 <설국열차>(2013)가 좋은 예다. 이 영화는 ‘취향’ 뿐만 아니라 ‘경험’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정치적이고 또한 상업적이다.

20세기 영화가 역사의 격변을 기록하는 데 적극 참여했다면, 21세기의 영화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는 예나 지금이나 정치와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역사나 정치에 관한 영화의 기록 횟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내부’와 객관적이고 물리적 ‘외부’의 공존도 드물지 않다. 그런 면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화는 혁명적이다. 매체로써 시네마의 매력은, 바로 이점에서 시작된다.


이지현

◆ 이지현 영화평론가

2008년 '씨네21 영화평론상'으로 등단한 후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제작사 롱메트라지필름의 대표이며, 공주대학교 영상학과에서 영화 관련 수업을 진행한다. 다큐멘터리 <프랑스인 김명실>(2014)과 중편영화 <세상의 아침>(2020)을 연출했고, 현재 탈원전 주제의 다큐멘터리 <전선을 따라서>(2021)를 작업 중이다. 13inoch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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