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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한 운율로 서민의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

[문인의 흔적을 찾아서] 경남 사천 박재삼 문학관

2020.12.21 이광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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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시 팔포바닷가 언덕 위 노산공원에 자리한 박재삼 문학관. 언덕 아래 바닷가에 그의 생가가 있다.
경남 사천시 팔포바닷가 언덕 위 노산공원에 자리한 박재삼 문학관. 언덕 아래 바닷가에 그의 생가가 있다.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 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한恨>) 박재삼은 감나무쯤 되고 싶었던 시인이다. 그의 한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갔듯이, 그의 시어는 서러움 속에서 익은 감의 색처럼 붉다.     
‘문명에 길든 것은/ 모두 날카로운/ 직선을 이루고 있건만,/ 거기에 때가 묻지 않은 것은/ 가령 눈 덮인 경치와 같이/ 얼마나 순박한 곡선을 긋고 있는가’ 가을, 감나무에 열린 붉은 열매가 서럽기는 해도 둥글 듯이 겨울, 눈 내린 세상은 날카로운 직선을 모두 덮어버리고 순박한 곡선을 긋고 있다. ‘저 눈을 쓴/ 자태 속으로 들어가면/ 그 밑바닥에는 시방/ 녹은 물이 자기네들끼리 모여/ 고향의 예닐곱 살 적의…’(<신은 낮게 곡선을 그리며>) 그렇게 서럽고 날카로운 것들 속에도 한 세상이 있다. 언 시내의 밑바닥에는 녹은 물이 자기네들끼리 모여 ‘세상이 즐겁고 기쁘기만 한, 노래를 하기에만 골똘한’ 고향 예닐곱 살 적의 옛 이야기가 시냇물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시인의 흉상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 문학관 입구.
시인의 흉상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 문학관 입구.

박재삼은 1933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세살 때 어머니 고향인 경남 삼천포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지게 노동으로, 어머니는 생선 행상으로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1946년 수남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에 올라가지 못하고 신문배달을 했다. 그러다가 삼천포여중 어느 여선생의 도움으로 학교 급사로 들어갔다. 이듬해 삼천포중학 병설 야간중학교에 입학하여 낮에는 여중에서 사환으로 일하고 밤에는 공부했다. 1948년 교내신문 ‘삼중(三中)’ 창간호에 동요 <강아지>, 시조 <해인사>를 발표했다.

‘국민학교를 나온 형이/ 화월여관 심부름꾼으로 있을 때/ 그 층층계 밑에/ 옹송거리고 얼마를 떨고 있으면/ 손님들이 먹다가 남은 음식을 싸서/ 나를 향해 남몰래 던져 주었다/ 집에 가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 누이동생이/ 부황(浮黃)에 떠서 그래도 웃으면서/ 반가이 맞이했다/ 나는 맛있는 것을/ 많이많이 먹었다며/ 빤한 거짓말을 꾸미고/ 문득 뒷간에라도 가는 척/ 뜰에 나서면/ 바다 위에는 달이 떴는데/ 내 눈물과 함께 안개가 어려 있었다’(<추억에서> 30)

그의 대표작 <울음이 타는 가을 강>과 그의 시작 유품들.
그의 대표작 <울음이 타는 가을 강>과 그의 시작 유품들.

눈물과 안개가 어려 있던 그 시절, 박재삼은 야간 중학교에서 수석을 한 덕분에 학비를 면제받고 주간 중학교 학생이 되었다. 삼천포여중에서 교편을 잡던 시조시인 김상옥에게서 시를 배웠다고 한다. 김상옥의 첫 시조집 <초적(草笛)>을 살 돈이 없어 그것을 공책에 베껴 애송하는 등 시에 더욱 심취했다. 제1회 영남예술제 ‘한글 시 백일장’에서 시조 <촉석루>로 입상했다. 1950년에는 진주농고에 다니던 김재섭, 김동일과 함께 동인지 <군상>을 펴냈다. 1953년 삼천포고등학교를 졸업(제1회)하던 해, 시 <강물에서>가 모윤숙에 의해 <문예>에서 추천된다.

1955년은 그의 생에서 복 받은 한해였다.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고, 시 <정적(靜寂)>이 서정주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되었고, 시조 <섭리(攝理)>가 유치환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또 스승 김상옥의 소개로 그해 창간된 <현대문학>(주간 조연현, 편집장 오영수)에 임상순, 김구용과 함께 편집사원으로 입사했다. 대학생이 되면서 시인이 되었고 취직도 하게 된 것이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1961년에는 구자운, 박성룡, 박희진, 성찬경 등과 함께 ‘1960년대 사화집(詞華集)’ 동인으로 참여했다.
1962년에 첫 시집 <춘향이 마음>을 출간했다. 이후 <문학춘추> 창간에 참여하면서 문예지에서 일했고 언론사(대한일보) 기자를 거쳐 삼성출판사에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바둑에 관한 이력도 많다. <월간 바둑>의 편집장으로 일했고, ‘서울신문’ 등에 바둑 관전기를 쓰고, 대한기원 이사를 지냈으며, 바둑에 관한 산문 <바둑한담>을 출간하고, 조남철 조훈현 등 당대 일류기사들과 친분이 깊었으니 바둑실력도 상당한 고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박재삼은 평소 소탈하고 소박했으며 정이 많았다. 그는 수많은 문학계, 바둑계 사람들과 교유했다. 사진 가운데가 김동리 선생이다.
박재삼은 평소 소탈하고 소박했으며 정이 많았다. 그는 수많은 문학계, 바둑계 사람들과 교유했다. 사진 가운데가 김동리 선생이다.

그의 직업은 전부 책을 만드는 일이었고, 가난 속에서도 평생 글을 쓰고 시를 썼다. 1995년 백일장 심사 도중 신부전증으로 쓰러진 뒤에도 이듬해 열다섯 번째 시집 <다시 그리움으로>를 출간했으며 1997년 지병이 악화되어 영면에 들 때까지 시집 15권, 시조집 1권, 수필집 10권, 시선집 13권을 남겼다.

사천시는 시인을 기리기 위해 2008년 박재삼 문학관을 건립했다. 문학관은 그의 생가가 있던 삼천포 팔포 바닷가 언덕 위 노산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슬픈 것을 노래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노래한 것이다’는 그의 시어에서 따 온 말을 걸어 놓았다. ‘박재삼은 다른 어떤 시인보다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는 시를 썼고, 말소리와 말뜻을 조화시킨 오묘한 운율을 만들어 서민의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광복 무렵과 한국전쟁기간 전후 우리 겨레 대부분이 경험해야 했던 경제적 빈곤을 뼈저리게 겪으면서 일상적인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누구나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는 시를 지었다.’고 문학관은 그의 시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시 <첫 사랑 그 사람은>이 육필 원고 그대로 쓰인 아래로 담배를 태우며 함박웃음 짓는 시인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천진하다.
시 <첫 사랑 그 사람은>이 육필 원고 그대로 쓰인 아래로 담배를 태우며 함박웃음 짓는 시인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천진하다.

그는 김소월, 서정주를 잇는 전통 서정시인으로 생동감 있는 구어를 통해 모국어의 질감을 눈부시게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우리 교과서에 실린 그의 대표작이 <울음이 타는 가을 江>이다. 저무는 강가에 서서 노을에 비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산골의 작은 골에서 발원한 물이 강을 건너 넓은 바다에 다다른 뒤에는 소리 없이 사라진다. 그것이 삶과 같고, 스메타나의 <몰다우>와 같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서 시인은 인간의 유한한 삶을 서러운 눈길로 응시하고 있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문학관 가는 길은 ‘박재삼 길’로 명명되었고, 그곳에서 해마다 ‘박재삼문학제’가 열리고 있다.

이광이

◆ 이광이 작가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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