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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빼앗긴 절망적 삶 속에서도 문학과 예술의 꽃을 피우다

[문인의 흔적을 찾아서] 남해유배문학관/김구

2021.01.05 이광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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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남해유배문학관. 남해에 유배 왔던 자암 김구를 비롯해 서포 김만중, 약천 남구만, 소재 이이명, 후송 류의양 등 문인 6명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10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남해유배문학관. 남해에 유배 왔던 자암 김구를 비롯해 서포 김만중, 약천 남구만, 소재 이이명, 후송 류의양 등 문인 6명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내님믈 그리ᅀᆞ와 우니다니/ 山 졉동새 난 이슷ᄒᆞ요이다/ 아니시며 거츠르신ᄃᆞᆯ 아으/ 殘月曉星이 아ᄅᆞ시리이다/ 넉시라도 님은 ᄒᆞᆫᄃᆡ 녀져라 아으’
고려 때 정서(鄭敍)가 지은 가요 <정과정곡(鄭瓜亭曲)>의 부분이다. 고려 가요 가운데 작자가 확실한 유일한 작품으로 <악학궤범>에 전한다. 정서가 참소를 받아 동래 귀양지에서 지은 곡이다. 내님이 그리워 눈물로 보내는 시간들, 봄날 산에 우는 접동새와 다름없구나, 아니라 하고 거짓이라 한들 누가 알아줄까, 저녁달과 새벽별만은 알아주시겠지, 죽은 넋이라도 임과 함께 하고 싶어라, 대강 그런 내용이다. 유배지에서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정을 애절하게 노래한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 정과정곡은 우리 유배문학의 효시로 훗날 수많은 ‘연주지사’의 원류가 된다. 
 
하동에서 노량해협을 건너면 남해이다. 천리 길 진주에서 남으로 더 내려간 절해고도, 남해는 고려·조선시대 180여명의 유배객이 다녀간 역사의 귀양지였다. 2010년 ‘남해유배문학관’이 그곳에 건립됐다. 문학관에는 자암 김구를 비롯해 서포 김만중, 약천 남구만, 소재 이이명, 후송 류의양 등 유배 문인 6명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절망 속에 핀 꽃, 유배문학의 산실’이라는 문학관의 설명처럼, 역설적이게도 유배는 문학의 토양이었다. 기름진 땅에서, 권력과 부귀 속에서, 예술은 고뇌와 깊은 사유를 담을 수 없다. 척박한 땅에서, 가난과 백척간두의 시련 속에서, 설중매처럼 핀 꽃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법. 이백과 백거이, 한유와 소동파가 그렇고, 정철과 허균, 윤선도와 정약용이 그렇다.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든지,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죄와 벌> 같은 세기의 걸작들도 대개 생사의 기로에 선 유배지에서 나온 절망의 산물들이다. 

자암 김구,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조광조에 발탁되어 홍문관 부제학을 지낼 정도로 승승장구했으나 기묘사화 때 남해에 유배되어 13년의 오랜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자암 김구,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조광조에 발탁되어 홍문관 부제학을 지낼 정도로 승승장구했으나 기묘사화 때 남해에 유배되어 13년의 오랜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녹파주와 소국주에 맥주와 탁주 등 여러가지 술에다/ 황금 빛나는 닭과 흰 문어 안주에다 유자잔을 접시대에 받쳐 들어/ 아! 가득 부어 잔을 권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정희철씨는 밀밭만 지나쳐도 크게 취해버리느니/ 아! 어느 때 슬플 적이 있을고(5장)// 서울의 번화로움을 너는 부러워 하느냐/ 붉은 단청을 올린 지위 높은 벼슬아치 집 대문 안, 거기 있는 술과 고기를 너는 좋아 하느냐/ 돌무더기 밭 가운데 있는 띠집에서나마, 사계절이 화순하여 오곡이 풍등하게 되면/ 이 향촌에서 갖는 모임을 나는 좋아 하노라(6장)’

김구의 경기체가 <화전별곡(花田別曲)> 5·6장이다. 남해 유배 당시 그곳의 뛰어난 경치와 풍류를 즐기던 정서와 감회를 노래했다. 총 6장으로 1장은 총괄 서사(序詞), 2∼5장은 자랑거리를 노래한 본사(本詞), 6장은 자신의 감회를 담은 결사(結詞)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경기체가의 특징인 ‘위(偉)∼경(景) 긔엇더ᄒᆞ니잇고’라는 감탄구절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점, 궁중의 악장으로 지어진 공적작품(公的)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바탕으로 한 사적작품(私的)으로 경기체가의 변천기에 해당하는 특징 때문에 우리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르적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 문학적 평가 외에도, 밀밭만 지나쳐도 취해버리니 아! 어느 때 슬플 적이 있었던가? 서울의 번화로움과 단청을 올린 높은 집과 좋은 술 고기 안주가 그대는 부러운가? 등의 반문과 자문 속에 적잖이 들어있는 체념과 애잔함, 자기연민 같은 감회들이 유배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한껏 높여주고 있다.

문집 <자암집>에 ‘화전별곡’이 전한다. 화전별곡은 경기체가의 변천기에 해당하는 특징 때문에 우리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문집 <자암집>에 ‘화전별곡’이 전한다. 화전별곡은 경기체가의 변천기에 해당하는 특징 때문에 우리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김구(金絿 1488~1534)의 자는 대유(大柔), 호는 자암(自菴), 시호는 문의(文懿)로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다. 한석봉, 양사언, 안평대군과 더불어 조선전기 4대 서예가 중의 한사람으로 그의 서체를 ‘인수체’라 부른다. 1507년 20세에 소과에, 26세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도학정치를 꿈꾸던 젊은 개혁정치가 조광조에 의해 발탁되어 32세에 홍문관 부제학을 지낼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화순에 유배되어 사사될 때, 그는 남해에 유배되어 13년의 오랜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1533년 유배에서 풀려 고향 예산으로 돌아갔지만 그간에 병을 얻어 1534년 4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사후 선조 때 이조참판에 추증되고 예산의 덕잠서원, 군산의 봉암서원 등에 배향되었다. 그의 문집으로 <자암집>이 전하며 작품에 <자암필첩>, <우주영허첩> 등이 있다. <화전별곡(花田別曲)>을 비롯한 대부분 작품들이 남해 유배 당시 씌어졌다.

남해유배문학관은 향토역사실, 유배문학실, 유배체험실, 남해유배문학실, 김만중 특별실, 다목적홀과 야외공원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향토역사실에는 남해대교 모형과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 팔만대장경 판각지였던 남해의 역사, 민요 직접 듣기 코너가 있고 김구의 <화전별곡>도 전시되어 있다. 유배문학실에는 옛날 형벌의 종류, 세계 각국의 유배 이야기, 유배문학작품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유배체험실에서는 관람객이 유배객이 되어 유배지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소달구지 함거에 갇힌 채 3D입체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고문서와 고서적, 민속품 등 2600여점과 김만중의 서포만필 필사본, 송시열의 문집 등을 소장하고 있다.

김구는 한석봉, 양사언, 안평대군과 더불어 조선전기 4대 서예가 중의 한사람으로 그의 서체를 ‘인수체’라 부른다. ‘기나긴 봄 햇살에 강과 산이 빛나고 봄바람에 꽃과 풀이 향기롭다’는 두보의 시를 김구가 인수체로 쓴 작품이다.
김구는 한석봉, 양사언, 안평대군과 더불어 조선전기 4대 서예가 중의 한사람으로 그의 서체를 ‘인수체’라 부른다. ‘기나긴 봄 햇살에 강과 산이 빛나고 봄바람에 꽃과 풀이 향기롭다’는 두보의 시를 김구가 인수체로 쓴 작품이다.

어명을 받고 세상에서 멀어지는 사람들, 그들은 지금으로 하면 정치사상범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남긴 유배문학에 대해 문학관은 이런 글을 걸어놓았다. ‘권력도 부귀도 모두 빼앗긴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문학과 예술의 꽃을 피웠던 유배객들의 정신을 느끼고 배우는 공간입니다. 오늘의 절망이 내일의 희망을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유배객들은 자신의 정신과 사상을 학문과 문학과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들이 유배지에서 남겼던 유산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져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주고 있습니다.’ 두루 아이들 데리고 찾아가보면 즐기고 배울 것이 많은 곳이다.    

이광이

◆ 이광이 작가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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