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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 1000번을 읽은 불굴의 독서왕…17세기 조선 최고의 시인

[문인의 흔적을 찾아서] 증평 김득신 문학관

2021.06.11 이광이 작가
증평의 김득신 문학관. 현관 앞에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마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라는 그의 묘비에 새겨진 글귀가 크게 장식되어 있다.
증평의 김득신 문학관. 현관 앞에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마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라는 그의 묘비에 새겨진 글귀가 크게 장식되어 있다.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시인이다.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栢谷)으로 대개 이름 앞에 호를 붙여 부르지만 이 사람 이름 앞에는 독특한 수식어 ‘독서왕’이 붙는다. 

독서왕 김득신은 증평의 명문가 자손이다. 조부 김시민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3천여 명의 병력으로 2만여 왜적을 격퇴하고 전사한 명장이다. 아버지 김치(金緻)는 20세에 과거에 급제한 수재로 동래부사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를 지냈다. 

‘독서왕 김득신’을 소개하고 있는 문학관 내부.
‘독서왕 김득신’을 소개하고 있는 문학관 내부.

김득신은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어려서 천연두를 앓으면서 지각 발달이 늦고 아둔했다. 그는 남들보다 늦은 10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을 깨우쳤다. 이후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하지만 <십구사략(十九史略)>을 석 달이나 읽고도 첫 구절 26자를 외우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나빴다고 한다. 주위에서 공부를 포기하라고 권유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달랐다. “분명 나중에 문장으로 이름을 크게 날리게 될 것”이라며 어린 그가 좌절하지 않도록 격려해 주었고, 남들이 과거에 합격하는 스무 살 무렵 비로소 아들이 글을 지은 것을 보고서도 꾸짖기는커녕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미련한 자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성실히 노력하는 자세를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런 아버지 덕분에 그는 주변의 손가락질에 굴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공부했으며 자신만의 특별한 공부법을 찾아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그것은 끊임없이 읽는 것이었다. 남들이 1번 읽을 때 10번을 읽었고, 남들이 10번을 읽으면 김득신은 100번, 1000번을 읽었다. 

효종으로부터 ‘당나라 시에 견줄만 하다’고 칭찬을 받은 시 「용호」. 용산에 있는 정자에서 바라본 한강의 모습을 그림처럼 잘 묘사한 시다.
효종으로부터 ‘당나라 시에 견줄만 하다’고 칭찬을 받은 시 「용호」. 용산에 있는 정자에서 바라본 한강의 모습을 그림처럼 잘 묘사한 시다.

조선후기의 학자 홍한주가 남긴 문집 <지수염필>에 김득신 관련 일화가 전한다. 하루는 말을 타고 어느 집 앞을 지나다가 글 읽는 소리를 듣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디서 많이 듣던 글귀인데…생각이 나지 않는구나” 그러자 말고삐를 끌던 하인이 웃으며 대꾸한다. “아니 저 글귀는 ‘부학자 재적극박’(夫學者 載籍極博, 대체로 학문을 하는 데는 참고할 서적이 매우 많지만…) 어쩌구 하는 말이잖아요. 나리가 평생 읽으신 글귀 아닙니까? 저도 지겹도록 들어서 외웠는데…” 

사마천의 <사기> 「백이열전」 첫 문장이다. 그가 34~67세까지 읽은 책을 스스로 기록한 「독수기(讀數記)」를 보면 「백이열전」을 1억3000번 읽었다고 나온다. 당시의 1억은 10만을 뜻하는 단위여서 지금 수치로 환산하면 11만3000번이다. 그는 자신이 1만 번 이상 읽은 책만 「독수기」에 적어 놓았는데 무려 36권이나 된다. ‘부학자 재적극박’이 그가 그렇게 많이 읽었던 「백이열전」의 글귀라는 것을 하인의 말을 듣고서야 깨달은 것이다. 

‘바보에서 17세기 조선 최고의 시인이 되다’라는 글귀가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59세에 과거에 급제한 김득신을 잘 설명하고 있다.
‘바보에서 17세기 조선 최고의 시인이 되다’라는 글귀가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59세에 과거에 급제한 김득신을 잘 설명하고 있다.

<숙종실록>(1684년10월9일자)에는 ‘김득신은 젊어서부터 늙어서까지 부지런히 글을 읽었지만 사람됨이 오활(迂闊, 사리에 어둡고 세상물정을 잘 모름)해서 쓰임을 받지 못했다’는 인물평이 나온다. 김득신은 그래도 굴하지 않고 오직 한 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가 1662년 꿈에 그리던 과거에 급제했으니, 그의 나이 59세였다. 인간승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남긴 시 한수.  

‘한유 문장 사마천 <사기>를 천 번 읽고서야(韓文馬史千番讀)/ 금년에 겨우 진사과에 합격했네(菫捷今年進士科)’

김득신은 성균관 학유를 시작으로 정선군수, 동지중추부사 등의 벼슬을 지냈다. 책을 많이 읽었던 만큼 그의 문장도 대단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용호’는 용산에 있는 정자에서 바라본 한강의 모습을 그림처럼 잘 묘사한 시다. 

「고목은 찬 구름 속에 잠기고(古木寒煙裏)

가을 산에는 소낙비 들이친다(秋山白雨邊)

저무는 강에 풍랑이 이니(暮江風浪起)

어부가 급히 뱃머리를 돌리네(漁子急回船)」

이 시는 효종으로부터 “백곡의 ‘용호’는 당나라 시에 견줄 만하다”고 크게 칭찬을 받았으며, 이식은 “백곡이 당대 최고의 문장”이라 극찬했으니 드디어 시인으로 이름을 떨치는 경지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김득신의 작품들과 지역 작가들의 책들이 전시된 문학관 내부.
김득신의 작품들과 지역 작가들의 책들이 전시된 문학관 내부.

벼슬에 큰 뜻이 없었던 김득신은 2년 뒤 충청도 괴산으로 낙향해 선조들 묘 가까운 곳에 두 칸 초당(草堂)을 지어 ‘취묵당(醉墨堂)’이라 이름 짓고 은거했다. 취묵당은 ‘깨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취해도 입을 다물어야 재앙을 모면할 수 있으니’ 침묵을 금으로 여기며 살겠다는 뜻이다. 

그 안에 작은 서재 ‘억만재(億萬齋)’를 두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또다시 책을 읽으며 여생을 살다가 80세에 숨졌다. 시를 잘 지었을 뿐만 아니라 시를 보는 안목도 높아, <종남총지(終南叢志)> 같은 시화도 남겼다. 이 책에는 정사룡·정철·권필·김석주·홍만종 같은 당대 문사들의 시를 뽑아 거기에 나름의 비평을 덧붙인 내용이 담겨있다. 그는 술과 부채를 의인화한 가전소설 <환백장군전>과 <청풍선생전>을 남기기도 했다.

2019년 증평군은 증평읍 송산리에 ‘김득신 문학관’을 개관했다. 문학관에는 김득신 관련 서적과 지역 문인들의 작품, 추천 도서들과 후손이 기증한 유물 15점 등이 비치되어 있다. 군립도서관과 통로로 연결되어 주민들과 어린이를 위한 교육·문화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행사도 진행한다. 

김득신이 만년에 서재로 지어 공부했던 ‘억만재’의 이름을 단 문학관 앞 정자.
김득신이 만년에 서재로 지어 공부했던 ‘억만재’의 이름을 단 문학관 앞 정자.

스스로의 부족함을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극복하고, 늦은 나이에 과거급제까지 이뤄냈으며, 끝내 명시인의 반열에 오르는 독서왕 김득신. 그 불굴의 정신을 기려 군은 그의 묘가 있는 증평읍 율리 마을입구에서 묘소까지 이어지는 500m 구간을 ‘김득신 길’로 조성했다. 둘레길 곳곳에는 책을 읽는 모습을 한 캐릭터와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득신의 묘비에는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마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재주가 부족하거든 한 가지에 정성을 쏟으라.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광이

◆ 이광이 작가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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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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