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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과 변명으로 친일 행적 인정한 작가

[문인의 흔적을 찾아서] 군산 채만식 문학관

2021.07.07 이광이 작가
금강 하구 금강철새 조망대와 이웃하여 자리한 채만식 문학관. 소설 <탁류>의 배경이었던 자리에, 정박한 배의 형상으로 소박하게 지어진 이곳에서 <레디메이드 인생>의 작가 채만식을 만날 수 있다.
금강 하구 금강철새 조망대와 이웃하여 자리한 채만식 문학관. 소설 <탁류>의 배경이었던 자리에, 정박한 배의 형상으로 소박하게 지어진 이곳에서 <레디메이드 인생>의 작가 채만식을 만날 수 있다.

1930년대 우리나라 근대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시작하여 호남관세박물관, 근대미술관과 건축관, 진포해양공원과 뜬 다리 부두, 신흥동의 일본식 가옥을 거쳐 동국사 등을 둘러보는 ‘시간여행’ 코스가 유명하다. 

2.5km 길이의 옛 철도가 놓인 경암동 철길마을도 가볼만 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전국 5대 짬뽕 맛집, 70년 역사의 호떡집 등 맛집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문학관 1층 전시실 입구에 서 있는 채만식의 작은 동상.
문학관 1층 전시실 입구에 서 있는 채만식의 작은 동상.

또 하나 더 빠뜨릴 수 없는 곳이, 금강철새 조망대와 이웃하여 강변에 자리한 ‘채만식문학관’이다. 소설 <탁류>의 배경이었던 자리에, 정박한 배의 형상으로 소박하게 지어진 이곳에서 <레디메이드 인생> <태평천하>의 작가 채만식을 만날 수 있다. 

1층에는 전시실과 자료실이 있는데 파노라마식으로 그의 문학 여정을 따라갈 수 있다. 2층 영상세미나실에서는 작가의 일대기를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문학관 주변은 콩나물 고개를 상징하는 둔뱀이 오솔길, 호남평야에서 수확한 쌀을 수탈했던 기찻길 등을 조성해 놓아 아이들과 함께 걷기에도 좋다. 

채만식의 작품이 수록된 당시의 잡지들.
채만식의 작품이 수록된 당시의 잡지들.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은 전북 옥구 태생으로 어려서 서당에 다니며 한문을 배웠다. 1922년 중앙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교 고등학원에 들어갔다가 간토 대지진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귀국했다. 강화도 학교에서 교사로 일했으며, 1924~1936년까지 동아일보, 개벽, 조선일보 등의 기자로 근무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24년 단편 <새길로>를 <조선문단>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34년 발표한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은 지식인 실직자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린 대표작 중 하나이다. 채만식 특유의 반어적이고 풍자적인 어법으로 그린 이 작품을 계기로 사회 고발적 동반자문학에서 냉소적 풍자문학으로 전환했다. 

그는 1930년대에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탁류>를 1937년 <조선일보>에 연재했으며, 이듬해 <천하태평춘>(태평천하)을 <조광>에 연재하는 등 왕성한 집필활동을 벌였다. 

그는 식민지 체제에서 살아가는 농민의 가난한 생활과 지식인의 고뇌, 도시 하층민의 몰락 등 민중의 모습과 광복 이후 혼란상 등을 그리면서 풍자와 반어와 역설을 통해 시대를 비판하는 특유의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장편 <탁류>에서는 아버지가 ‘미두(米豆)’라는 투기행위로 전 재산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주인공이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게 되고 결국 파멸에 이르는 모습을 통해 일제의 미곡 수탈을 고발하는 민족의식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다작으로 유명하다. 장편·단편소설이 200여 편에 이르며, 동화·희곡·평론·수필 등을 포함하면 50년이 안 되는 짧은 생애동안 1천여 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문학관에 전시된 채만식의 사진.
문학관에 전시된 채만식의 사진.

채만식은 일제 협력을 거부하며 저항하다가 1937년 ‘독서회 사건’ 가담자로 투옥되어 고문에 시달린 뒤 결국 일제의 회유와 압력에 굴복, 5개월 만에 풀려나면서 친일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1942년 조선문인협회가 주관한 순국영령 방문행사에 참석한 뒤 <춘추>에 발표한 산문, 1943~44년 <매일신보> 등에 발표한 산문과 소설을 통해 징병, 지원병을 선전, 선동했다. 또 국민총력 조선연맹이 주관하는 예술부문 관계자 연성회, 보도특별정신대, 생산지 증산 위문파견 등 친일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친일 작품은 일제 강점기 말기에 발표한 <아름다운 새벽> <여인전기> 등 소설 2편을 포함, 총 14편에 이른다. 그는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문학부문에 선정되었으며,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용맹하지도 못한 동시에 영리하지도 못한 나는 결국 본심도 아니면서 겉으로 복종이나 하는…’ 그의 글이 새겨진 문학관 내부.
‘용맹하지도 못한 동시에 영리하지도 못한 나는 결국 본심도 아니면서 겉으로 복종이나 하는…’ 그의 글이 새겨진 문학관 내부.

채만식은 해방 이후 1947년 자전적 성격의 단편 <민족의 죄인>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나와 김, 그리고 윤이라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나는 일제의 강압이 다가오자 붓을 꺾고 낙향하지만 시골까지 쫓아와 협력을 강권하는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문인보국회에 나가 협력하게 된다. 김은 가족의 생계 때문에 신문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일제의 지시에 따라 친일신문을 제작한다. 윤은 신문사를 사직하고 낙향하여 일체의 문필활동을 끊고 은둔한다. 해방이 되어 세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며, 구차하게 생존한 자들이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된다는 내용이다. 

김상태 전 이대교수는 <한국현대문학사>에 쓴 평론 ‘해방공간의 소설’에서 ‘일제치하에서 목숨을 부지한 모든 사람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 있다. 친일의 한계를 어디서 그어야 하느냐 하는 기준문제이다. 문인들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아픈 상처를 치료하고 싶은 속죄의 심정일 것이다’고 쓰고 있다. 

‘나 가거든 꽃수레에 들꽃 가득가득 날 덮어주오. 마포 한 필 줄을 메어 들꽃 상여 끌어주오’. 문학관 정원 울타리에 채만식의 유언문 중 일부를 써 놓았다.
‘나 가거든 꽃수레에 들꽃 가득가득 날 덮어주오. 마포 한 필 줄을 메어 들꽃 상여 끌어주오’. 문학관 정원 울타리에 채만식의 유언문 중 일부를 써 놓았다.

채만식은 <민족의 죄인>을 통해 자신의 친일 행위를 우회적으로 고백하고 변명했으며, 스스로 친일 행적을 인정한 최초로 작가로 평가받는다. 초기 카프 계열의 ‘동반자 작가’로 시작하여 풍자와 역설을 통해 일제강점기 사회비판적 작품으로 우리 문학사에 독특한 영역을 개척했던 ‘소설가·수필가·극작가’로서의 채만식. 그러나 그 이력 뒤에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오명의 꼬리표를 떼지 못했던 백릉 채만식, 그는 ‘한번 살에 묻은 대일협력의 불결한 진흙은…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죄의 표시지였다’는 말을 남겼다. 1950년 6월11일 한국전쟁 직전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9세. 

이광이

◆ 이광이 작가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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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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