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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마무리는 베토벤 ‘합창’과 함께

[클래식에 빠지다] 베토벤의 <합창>

2021.12.31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코로나 팬데믹으로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연말은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공연들로 가득 차있다.

세계 유수의 극장에서는 오페라 <라 보엠>과 발레 <호두까기 인형> 그리고 헨델의 <메시아>가 크리스마스 전까지 자주 공연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연 프로그램도 비슷하지만 성탄절이 지나고 연말 밤이 되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송년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실 세계의 모든 도시에서 울려 퍼질 것 같은 베토벤의 <합창>은 우리나라 외에 일본과 몇몇 도시들에서 송년공연으로 자주 연주되고있다.

하지만 그 외 세계의 중요한 공연장과 오케스트라의 칼렌더에서는 자주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송년음악회에 항상 베토벤의 <합창>이 공연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베토벤이라는 인물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그와 그의 교향곡 <합창>”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어떤 것인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의 의미가 베토벤의 <합창>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 악성(樂聖) 베토벤

모두가 알다시피 음악가로써 사형선고와도 같은 청력이상으로 베토벤의 삶이 평탄하지 못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한 인터뷰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 선생님은 음악에서 베토벤의 위치에 대해 문학에서의 셰익스피어, 미술에서의 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적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음악의 성인이란 뜻의 악성(樂聖)이란 단어가 붙는 음악가는 베토벤이 유일하다. 그의 음악이 높은 평가를 받는 데에는 그가 살아온 인생과 철학, 삶에 대한 의지등이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베토벤 동상.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오스트리아 빈의 베토벤 동상.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베토벤은 귀족가문의 궁정베이스가수인 조부와 같은 이름을 물려받으며 태어났다. 조부만큼의 재능은 아니지만 아버지도 궁정음악가로서 일을 하며 아들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베토벤을 학대하며 고된 연습을 시켰다고 전해지는데 확실하지는 않은  듯하며, 주변의 좋은 음악가들로부터 오르간과 피아노, 친척들로부터 현악기도 배웠다.

지금처럼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모차르트 아버지 레오폴드는 전 유럽을 아들과 순회하며 아들의 천재성을 알리며 공연으로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다.

자식의 성공을 꿈꾼 베토벤의 아버지도 어린 아들을 신동으로 선전하며 공연에 아들을 세웠으며 수줍음이 있었던 베토벤도 음악으로 자신감을 높이게 되며 성장한다.

사실 베토벤이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모차르트만큼 어린 시절의 성공을 거뒀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후세에 사람들은 선천적인 천재를 모차르트라 하고 후천적 천재를 베토벤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베토벤이 음악가로서 날개를 펴기 시작한 시점은 아마도 그가 스승인 하이든을 따라 비엔나에 정착하면서부터이다.

◆ 비엔나(Vienna)

지금도 비엔나는 고풍스럽고 전통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18세기 합스부르크가가 지배하던 제국의 수도 빈은 수많은 음악가들이 모여서 활동하던 음악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약관의 베토벤은 하이든의 가르침은 물론 바쁜 스승을 대신해서 살리에리(Antonio Salieri)등 여러 뛰어난 음악가들에게 작곡을 배웠다. 그리고 처음에는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지만 곧 그의 작품들도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하지만 굴곡 없는 인생은 없듯이 청각에 이상이 생기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숨기면서 도피와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이어 자살을 생각하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이후 음악이 더 웅장하고 깊어지게 된다.

이는 이후 성숙기에 들어선 그의 음악인 교향곡3번 에로이카와 현악사중주 라주모프스키, 열정 피아노 소나타 등에 잘 나타나 있다.

비엔나에서 그의 예술은 꽃피웠지만 그의 생활은 이와는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무번이 넘는 이사를 다니며 이웃과의 마찰을 빚었으며, 실제로 비엔나 유학시절 여기저기 베토벤이 살았다고 하는 장소가 동네마다 있었던 걸로 기억난다.

괴테와의 일화로 유명한 테플리츠사건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의식이 강한 인물이며 고집스런 사람이었는 알 수 있다.

테플리츠 사건은 베토벤과 괴테가 담소를 나누며 걷던 중 황후일행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괴테는 길을 비켜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고 베토벤은 황후일행을 아랑곳하지 않고 가던 길을 그대로가 황후일행이 비켜섰던 일화다.

그의 행동에는 당시 일어나고 있었던 계몽주의와 평등사상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프랑스혁명으로 시민의식이 깨어나고 있었고 베토벤의 철학과 음악은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받아들이며 단순히 교회음악과 귀족들의 여흥거리였던 음악을 시민과 대중들에게 돌려주었다.

특히 그의 심포니 9번 <합창>은 변화에 둔감하며 보수적인 합스부르가의 수도 빈에서 일어난 하나의 쿠데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1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열린 바렌보임 평화콘서트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웨스트이스턴 디반오케스트라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2011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열린 바렌보임 평화콘서트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웨스트이스턴 디반오케스트라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심포니(Symphony)

교향곡을 뜻하는 심포니는 ‘함께’라는 뜻의 그리스어 ‘Syn’과 ‘울리다’라는 뜻의 ‘phone’를 어원으로 같은 그리스어 ‘쉼포노스’에서 유래했다.

쉼포노스는 ‘조화로운’이라는 뜻이다. 즉 오케스트라 안의 모든 악기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연주하며 하나의 감정과 정신을 공유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도구 중 하나가 심포니라 할 수 있다.

베토벤은 이 심포니에 자신만을 사상과 철학을 집어넣어 인류의 유산으로 남겨놓았다. 베토벤 이전의 교향곡은 거의 종교적이거나 귀족들을 위한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베토벤 보다 약간 앞선 모차르트도 귀족을 위한 작품만 한 건 아니지만 그가 후원 받는 궁정과 귀족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베토벤이 활동을 시작한 19세기초반는 평등사상과 자본주의의 힘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었다.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음악시장이 태동하였고 예술가가 귀족에 속박되지 않고 독립적인 프리랜서로서 점점 대접받기 시작했다.

그의 교향곡을 듣기 위해 커다란 홀이 생겨났고, 대중들은 이제까지 귀족들의 여흥을 즐기기 위한 가벼운 음악으로서가 아닌 진중하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 당시 베토벤 7번을 듣고 있는 청중을 그린 스케치를 보면 조용히 감상하면서 집중하고 생각하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심포니는 역사적으로 베토벤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5번이후부터는 거의 완벽한 틀 안에서 작품을 빚어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5번 이전작품도 훌륭하지만 초창기는 스승인 하이든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은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베토벤은 단 9곡의 교향곡만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후대작곡가들에게 미쳐 현대의 쇼스타코비치 이전까지 9곡의 교향곡을 넘게 작곡한 작곡가는 없었다.

베토벤을 존경한 브람스는 평생 동안 4곡의 심포니만을 남기고, 슈베르트와 말러 모두 9번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의 심포니가 주는 무게감이 후배들에게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바 이다.

◆ 합창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베토벤과 <합창>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베토벤 9번교향곡은 성악과 합창을 교향곡에 접목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종교적 작품이나 미사곡이 아닌 심포니에 성악을 접목시킨 것은 당시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교향곡 <합창>은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참패 이후 전쟁에 지친 사람들이 아름다운 멜로디의 롯시니(Rossini)나 슈베르트(Schubert)의 음악을 선호하고 더 이상 그의 진중한 음악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을 때 오랜 침묵을 깨고 나온 작품이다.

초연은 빈에서 친구인 미하엘 움라우프(Michael Umlauf)의 지휘로 공연되었으며, 영화처럼 그가 지휘를 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악장에 나오는 쉴러(F.Schiller)의 시 <환희에 부쳐>를 알게 된지 34년만에 완성된 교향곡 9번은 역사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다.

나치는 그들의 선전용음악으로 올림픽에 이용했으며 가스실의 유대인들은 합창가사에 나오는 “우리 모두 형제가 되자! 빛이 가득한 성스러운 곳으로 돌아가자!”라는 가사를 들으며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많은 의미를 던져주는 합창의 환희의 송가(Ode an die freude)는 원래 자유의 송가(Ode an die freiheit)였다. 당시 ‘자유’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너무 급진적 이였기 때문에 바꾼 것이지만 베토벤이 추구하고자 하였던 의미는 ‘자유’와 인류의 ‘해방’이었을 것이다.

베토벤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들 모두가 자유 의지로 평화로운 가운데 서로 의지하며 살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2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반목과 갈등은 항상 존재해왔다. 지난했던 한 해의 끝과 시작에 와있는 지금, 베토벤은 그의 합창 교향곡을 통해 갈등과 대결을 넘어 화합과 화해를 노래하고 있다.

우리에게 베토벤과 합창교향곡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키고 나아가야 할 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도 베토벤의 유토피아를 향한 항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 추천음반

칼뵘(Karl Bohm), 카라얀(Karajan), 푸르트뱅글러(W.Furtwangler) 등 명반들이 많으나 개인적으로 귄터 반트(Gunter Wand)의 음반을 좋아한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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