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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년 전 항구의 뒷골목에서 태어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이탈리아/제노바(Genova)

2022.03.28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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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바는 한때 지중해 일대에 군림하던 해양 공화국으로 베네치아 공화국과 경쟁했다. 제노바는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의 이탈리아 본명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Cristoforo Colombo)이다.

그는 1451년에 태어났는데 당시 제노바에는 5층짜리 건물들이 해변을 따라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이 정도 높이의 건물이 있는 도시는 유럽에서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바다에서 보는 제노바는 볼품없는 건물들이 언덕 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도시로 보인다.

그러나 좁은 골목길 틈새로 한때 크게 번영하던 도시국가였음을 증언하는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특히 항구주변 해변 길에는 번영하던 해상공화국의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그 뒤로 산 로렌쪼 대성당이 보인다.

제노바 해변의 옛 건물들.
제노바 해변의 옛 건물들.

1841년 9월 19일의 일이다. 산 로렌쪼 대성당의 대주교는 제노바가 낳은 세기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 1782-1840)가 기독교 예식에 따라 매장되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이유는 그가 악마의 신봉자이며 비밀리에 검은 마술단에 가담하고 있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생전에 파가니니의 얼굴은 창백했고 그의 눈동자는 모든 것을 불사를 듯한 눈빛으로 이글거렸다고 한다. 또 공교롭게도 ‘파가니니’(Paganini)는 ‘작은 이교도들’을 뜻한다. 따라서 그의 외모와 이름은 괴소문을 더욱 부채질했던 것이다.

파가니니는 1840년 5월 27일 남부 프랑스의 니스에서 요양하다가 숨을 거두었는데 임종시 고해성사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곳의 묘지에도 묻힐 수 없었고 고향에서도 매장되는 것이 거부되었으니 그는 죽어서도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떠돌아 다녀야 했다.

그는 1782년 10월 27일 햇빛이 제대로 들지 않는 ‘검은 암고양이의 통로’(Passo del Gatto Moro)라고 하는 뒷골목에서 태어났는데 이 길 이름부터 뭔가 음산한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그의 어머니는 꿈에서 파가니니가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등장하여 나중에는 성인(聖人)이 된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제노바의 좁은 골목길.
제노바의 좁은 골목길.

예리한 청각을 타고난 어린 파가니니는 아버지로부터 만돌린과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산 로렌쪼 대성당의 음악감독한데 교습을 시킨 후 파르마의 유명한 음악가 알레싼드로 롤라에게 데려갔으나 롤라는 그의 연주를 한 번 듣고는 그에게 더 이상 가르칠게 없었다.

파가니니는 훗날 유럽 전역을 돌면서 연주하게 되는데 가는 곳마다 청중들을 무아지경에 빠뜨리곤 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그의 연주 테크닉은 단순한 ‘기교’라는 말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연주를 들은 괴테는 큰 충격을 받고 ‘유성이 떨어진 것 같았다’라고 했고 슈만은 그의 연주를 듣고 나서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또한 리스트는 그를 만나고 나서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손꼽히던 프랑스의 크로이체르는 그의 연주를 듣고 ‘악마의 화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연주 테크닉을 인간의 상상을 훨씬 넘어선 영역으로 승화시켰으며 자신의 테크닉을 만년에 이르기까지 길이 보존할 수 있었던 드문 음악가였다. 그런데 그는 제자가 없었다. 즉 자신의 연주 테크닉의 비법을 아무에게도 가르치지 않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아쉽게도 그의 유파가 생성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 화가 앵그르가 1819년에 그린 파가니니.
프랑스 화가 앵그르가 1819년에 그린 파가니니.

한편 그의 시신은 고향 제노바에 묻히지 못하고 그가 파르마에 구입한 별장의 뜰에 묻혔는데 그의 묘지에는 십자가조차 하나 없었다. 그러다가 1876년에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기독교 의식에 따라 파르마의 공동묘지에 매장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다음에야 파르마의 공동묘지로 이장되었다.

제노바에 콜럼버스의 생가는 보존되어 있고 제노바 공항의 이름은 제노바의 출신의 위대한 항해자의 이탈리아 본명을 따라 ‘크리스토포로 콜롬보 공항’이다. 파가니니의 생가는 유감스럽게도 헐려 버렸지만 제노바의 음악교육기관은 파가니니의 이름이 붙어 있다.

또 제노바는 니콜로 파가니니 상(Premio Paganini)을 제정하여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를 1956년부터 열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중에는 이 콩쿠르 출신이 적지 않다. 예로, 살바토레 아카르도(이탈리아)는 1958년에, 기돈 크레머(라트비아, 당시는 소련)는 1969년에 1등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는 우리나라의 양인모가 1등상을 수상했다. 콩쿠르 우승자는 파가니니가 제노바 시에 기증한 ‘칸노네(Cannone 대포)’라는 별명이 붙은 바이올린 ‘과르네리 델 제주 1742’를 직접 연주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제노바는 올해 파가니니 탄생 240주년을 기념한다.

정태남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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